골수 사회주의 청산 후 아시아사진전 화제, 삼성 현대차 더 많은 생산적 정책펴야

   
▲ 현진권 한국재정학회 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한 때 골수 사회주의자였던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장안에 화제다. 사진전 내용도 시인이 한때 울부짖었던 고통받는 우리 민중이 아닌 아시아 오지마을의 빈민이다. 한 일간지의 인터뷰 기사에서 시인이 한 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은 없다.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시인을 통해 시대가 변했음을 느꼈고, 우리 정치인은 시인을 통해 배워야 한다.

우리 사회가 분열된 근본적인 원인에는 가난을 보는 시각이 다른 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를 부자와 가난한 자로 구분하고, 양극화로 포장하면, 사회는 대립적이며 투쟁적이 된다. 정치인들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부자에 착취적 정책을 개발하고, 가난한 자에 복지정책을 펴려 한다. 그게 한때 시인이 갈망했던 가난한 노동자들이 해방되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많은 정치인들의 사고는 1980년대 시인이 가졌던 인식이다. 경제민주화로 포장한 많은 정책들의 기본구조는 착취적 부자정책과 배려하는 가난정책이다. 이런 정책은 현재의 우리 사회를 더 분열시키고, 미래의 우리 사회를 경제적으로 망하게 한다. 어려운 경제이론도 필요없고,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망했는지 보면, 쉽게 이해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인은 시인이 한때 가졌던 대립과 투쟁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인은 말했다.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은 없다고. 시골집 옷장에도 안입는 옷이 쌓여 있는 우리 사회는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한다. 우리 정치인은 시인의 시각을 배워야 한다. 이런 인식 하에선 절대 경제민주화란 용어로 포장한 착취적 정책을 펴지 않는다. 가난이 없는 사회에서 바람직한 방향은 생산적 정책이다. 지금 정치인이 경쟁적으로 떠벌리는, 양극화, 경제민주화, 갑을관계 등의 용어가 필요없는 세상이 된다. 얼마나 생산적이며 통합적인 사회가 되겠는가.

사회 구성원들은 각자 주어진 재능과 환경에 따라 마음껏 경제활동하게 하면 된다. 부자는 더 부자되고, 누구에게나 부자가 될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가 된다. 대기업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가 침해되고, 대기업 총수이기 때문에 감옥에 가야하는 정책은 없을 것이다. 우리도 빌게이츠와 같은 거부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 또한 사회의 질시대상인 삼성과 현대차같은 기업이 더 많이 생겨나는 세상이 되야 한다. 부자와 대기업이 더 많아지는 사회는 생산적인 사회이며, 우리가 나가야 할 세상이다.

우리의 정치인은 가난에 집착하고, 정책도 가난을 중심으로 개발한다. 그게 우리 정치인이 사는 방법이다. 가난이 없다면, ‘상대적 가난’이란 개념을 억지로 개발해서, 우리 사회를 두가지 계층으로 억지로 찥어놓는다.

   
▲ 80~90년대 급진 사회주의자였던 박노해시인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아시아오지의 가난한 사람들을 소재로 한 사진전을 열고 있어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립과 투쟁의 프레임을 극복한 박시인은 이번 사진전과 관련,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은 없다. 오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박노해시인이 80년대식 계급투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삶과 세상을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착취적 정책과 무조건 가난한 사람에 대한 시혜적 정책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삼성과 현대차가 더 많이 나오도록 생산적인 정책개발을 해야 한다. 박노해시인이 아시아오지 사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인은 아시아 오지의 진정한 가난한 자에게로 과거의 열정을 옮겼다. 그리고 차분하게 그들의 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 정치인도 이제 시각을 세상 밖으로 돌려야 한다. 한국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자랑스러운 나라인지, 이를 가능하게 한 경제적 제도를 소중히 여기고, 좀더 발전할수 있는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

가난문제는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이 애기했듯이, 가난이 없는 우리 사회에선 정치권의 역할도 한정되야 한다. 다양한 이념적 고뇌를 겪은 시인의 한마디가 가난팔이 정치인에게 뭔가를 주었으면 한다. ‘노동의 새벽’으로 한 시대의 아픔을 토로한 시인의 말이 ‘정치의 새벽’을 새롭게 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