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중인 국가는 전지전능한 신 아니다...구조대는 재난전문가들, 사기꺾어선 안돼

   
▲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선실내 대기 피상적 매뉴얼, 더 큰 희생 불러

지난 4월 16일 아침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연안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수학여행을 가던 전도양양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 다수가 사망 실종돼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졌다.

사건 경위가 알려지면서, 선장 등 선원들이 승객들의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신들의 탈출에만 급급했음이 드러났다. 세월호 선장 등의 이러한 행태는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구명복을 입은 채 선실에 있을 경우엔 물이 들어차면서 둥둥 떠서 오히려 선실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더 위험해짐에도 불구하고, 구명동의를 착용한 채 선실에서 대기토록 한 피상적 매뉴얼에 따른 잘못된 방송이 더 큰 희생으로 이어진 것 같다.

해양경찰이 민간 어선들과 함께 구조를 시작했음에도 선실 안에 진입해서 구조를 하지 못했던 것은 진한 아쉬움의 대상이 되었다. 당장은 잠수사가 없어서 선실 내 진입을 할 수 없었던 사정이었기에, 구명동의를 입은 구조대로서는 밖으로 나온 사람들만 구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잠수사들이 도착했을 때조차도 거센 물살과 20cm밖에 안되는 어두운 시야 때문에 배의 내부로 이어지는 구명줄(guide line)을 설치하는 데만도 여러 날이 걸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 했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선실 내 잔존 공기가 있는 에어포켓의 존재가능성이라는 ‘마지막 잎새’가 많은 사람들에게 혹시나 하는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보름이 지난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 가능성조차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초기 대응에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고, 사후에라도 더 잘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고 나름 수긍이 가는 대목들도 있긴 하지만, 현장을 잘 모르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필자로서는 세찬 물살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열심히 했던 구조대를 믿고, 그들의 헌신적인 노고에 대해서 오히려 감사와 격려를 보내는 이상을 할 수 없다.

구조 책임을 떠맡고 있는 국가를 신과 동격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현장 상황을 무시하고 온갖 구조대에 대해 온갖 억측을 지어내며 험담을 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미터 수영장에서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태평양에서도 헤엄을 칠 수 있다”는 정도의 수준에서 바다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근거로 맹골수도 현장의 거센 물결 등 어려움을 무시하며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이빙 벨로 실제 아무런 실종자 수색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현장 구조대와 지휘자들을 매도했던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신’도 하지 못하는 일을 ‘국가’라면 당연히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며 다 구조하지 못했던 것을 질타하는 것은, 안타까워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그 마음에는 이해가 가나,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따지면 일종의 국가 신격화로서 잘못된 요구이다.

   
▲ 세월호 실종자에 대한 구조작업은 신도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국가를 신으로 간주해 구조하지못한 것에 대해 질타하고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국가재난 전문가들과 잠수사들을 폄훼하고, 무조건 잠수하라고 강요하는것도 이들을 또다른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구조작업에 관한 지휘권은 현장 해경에 주고, 그들을 신뢰하고 지원하는 게 좋다.  국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국민들은 안전을 중시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째, 국가는 신이 아니다. 국가의 구체적 모습은 구조에 임하는 현장에서는 자녀와 가족이 있는 개인이 공무원의 자격을 가지고 하는 것일 뿐이다. 국가는 단순히 우리가 세금을 내서 공무원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공동 대응기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게다가 현장 지휘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따라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도 아닌데, 대통령에게 구조대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구조 명령이라도 내리라고 강박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일상적인’ 구조매뉴얼이 될 수 없다.

국가구조대는 국민보다 더 전문가, 사기꺾어선 안돼

둘째로, 국가의 구조대는 우리 일반 국민들보다 더 전문가이고, 더 잘 숙달되어 있으며, 구조의 실행 가능성 여부도 더 잘 알 수 있고, 무엇보다 사명감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그들이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 외에, 급한 마음에 구명복만 입고 선실로 들어가는 것을 하지 못하게 제지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지휘일 수 있다. 현장 지휘자가 무작정 선내진입보다 우선 구명줄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면 그것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낫다.

우리는 그간 건물 화재시 위험천만인 상태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구조하러 들어갔다가 도리어 화를 입었던 사명감에 넘치는 소방관들의 경우도 많이 보지 않았는가? 오히려 구조 매뉴얼에 건물 붕괴의 위험이 있을 경우, 눈물을 머금고 일선 소방관들을 철수시키는 경우가 나을 수도 있다. 그 판단은 물론 우리가 할 수 없고 현장의 소방대장의 몫이다. 해양경찰의 경우라고 소방대원들보다 그런 사명감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매도하거나, 그렇게 해서 그들의 사기를 꺾어서는 안된다.

지휘전권 해양경찰에 주고, 신뢰하고 지원하는 것이 낫다

오히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비전문가로서 사사건건 간섭하기보다는 지휘 전권을 담당 해양경찰에게 주고 그들에게 신뢰를 보내고 지원에 전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오사마 빈라덴을 처치할 때, 작전 책임 지휘자가 테이블 중앙에 앉고 대통령이 옆에 쪼그려 앉아 상황을 파악하고 작전 책임 지휘자를 지원하는 장면이 우리를 한없이 감동시켰듯이...

셋째로,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다 동원하라거나 (서산간척지 물막이공사 때처럼) 유조선이라도 빠뜨려서 물살을 잡으라는 것도, 그 간절한 마음에 대한 이해를 함에도 불구하고, 물막이 댐이 있을 리 없는 넓은 바다 현장에는 맞지 않다. 대통령이 해결사도 아니고, 또 그러한 지원 및 대기 인력이 부족해서 희생자를 구조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모든 것 동원하고, 유조선도  빠뜨려 물살 잡으라는 요구도 맞지 않아

이미 수많은 함정들과 헬기들과 잠수사들이 현장에 있었다. 아무리 많은 대기인력이 있어도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곤 인근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 과도한 배와 헬기가 출동하여 상호충돌로 2차 사고가 날 경우를 우려하여 이를 제한하는 통제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대형 크레인이 와 있었던 것도, 실은 인양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 당장은 없는 상태여서 무작정 비싼 용선료를 주고 마냥 대기토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선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잠수사를 엄선해서 투입하려는 해양경찰에 대해, 이를 특정 업체와 결탁된 배타적인 것으로 음해하는 것도 구조대의 사기를 꺾는 짓일 뿐이다.

그런데도 작금 일부 세력들은 이런 모든 사정을 무시하고, 책임을 실제 사건을 일으킨 선장 및 그 배후에 있는 선사에게 지탄을 향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에게로 또 국정담당자에게로 옮기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한술 더 떠 헌법 제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를 이 경우에 적용하여 구조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가를 헌법 위반인 것처럼 질책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도 하지 못하는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이러한 행태들에서 국가에 대한 잘못된 신격화 의식이 배경에 깔려 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특정업체 유착설 등의 음해는 구조대 사기 꺾는 짓

이러한 국가의 신격화를 벗어나서, 국가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해야, 각자가 노력해야 할 영역이 보이고, 정부가가 해야 할 일도 보일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국가의 책임은 구조 측면에서보다는 오히려 예방 측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고 관련 선박 업무에 종사한 관계 공무원, 준 공무원, 위탁업체들의 경우가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선박의 개조 및 증축 과정에서 ‘조건부 승인’을 해준 한국 선급과 선박안전기술공단 등이 수사를 받을 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또한 평형수 검사 및 화물 초과적재 등을 감시감독하는 안전관리자가 제도적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정 규모의 배 이상에서는 이 안전관리자가 여객선에 반드시 승선하도록 하여 유사시 최고 안전 책임자로서 승객들의 안전한 대피를 책임져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예방 측면에 집중, 국민은 안전을 중시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본질적으로는 안전 문제는 현장에서 실행되지 않고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 선장과 안전관리자를 비롯해서 각자가 안전문제의 훈련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전매뉴얼이 사후에 책임을 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 안전매뉴얼은 단순 비치용이 아니라 평소 훈련이 이루어지는 교본이 되어야 한다. 승객들에게 최소한 구명동의 입기 그리고 구명보트 있는 곳으로 가기와 같은 대피 훈련을 최소한 한 차례 이상은 하도록 하여야 한다.

실제로는 간단하지만 지금 하지 않고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고를 예방하는 것과 사고를 상정해서 안전하게 대피하는 것 모두를 다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9.11 무역센터 빌딩 테러 때 모건스탠리 직원 2687명 거의 전원을 구해냈지만 스스로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시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가 사망했던 모건스탠리의 안전책임자 릭 레스콜라(Rick Rescorla)는 평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이 재난으로 충격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뇌를 움직이는 최상의 방법은 훈련뿐이다. 똑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뿐...” “땀을 흘리는 대피훈련을 많이 해야 피를 적게 흘린다.”고...

   
▲ 세월호 참사 구조작업과정에서 혹세무민하고, 정부및 해경, 해군의 구조작업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간인 잠수사 이종인씨가 다이빙 벨을 통해 실종자들을 구조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은 아무런 역할도 못한채 철수했다. 유가족들에게 또 한번의 상처를 주고, 정부의 구조노력에 대한 불신만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관피아 해피아 척결, 얼핏 보기에는 정답 같지만...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 관피아(관료 마피아) 해피아(해수부 마피아)를 척결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다. 관피아 해피아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얼핏 보기에 그럴 듯 해보여도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기가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관피아 해피아가 왜 생길까? 그것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규제 감독 기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 규제기관에 대한 로비 창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훈련된 실력 있는 고급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공무원이 이런 저런 인사상의 필요 때문에 중도 퇴직하는 경우에, 결국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로 가게 되어 있다. 이것을 막으려고 하면 퇴직하기 전에 공직자 전관예우에 걸리지 않을 경력세탁 과정을 거친다.

내보내는 쪽에서도 사정을 잘 알고, 자신의 미래의 일일 수도 있기 때문에 퇴직 대상자의 경력세탁에 적극 협조한다. 결국 하수구가 더럽다고 하수구를 없앨 수 없듯이, 자연스런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후처리 과정이 위생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듯이, 전관예우를 할 필요가 없도록 규제개혁을 철저히 하고, 민간 기구로의 자리 바꿈이 부정한 청탁의 결과가 안 되도록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물의 인과관계 이치에 순응하는 개혁이 아니면, 그 개혁은 도덕적 훈계로서는 비록 시원한 것일지 몰라도 성공할 수는 없다./박종운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