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잔다르크' 이인호 교수, '좌편향 사회' 격정을 토로하다

   
▲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존경받는 역사학자인 이인호(78) 서울대 명예교수가 온누리교회 강연 동영상으로 역사인식 논란에 휩싸인 문창극 총리 지명자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이 마녀사냥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는 지난 6월 19일 'TV조선'의 시사프로그램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지금 사회 분위기는 한탄스럽고 경위 자체가 오싹하다”며 “문 후보자가 낙마해야 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 때”라는 강한 표현을 해 네티즌 사이에 화제다. 정말 존경할만한 원로다운 발언이라는 평가다.

오래 전 러시아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주변의 지인(知人)들로부터 '학계의 잔다르크'라는 별명으로 통해왔다. 학문적 소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TV조선'인터뷰에서도 그게 재확인됐을 뿐이다. "내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강연을 대하는 태도나 눈빛, 강연 준비 자세를 봤을 때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지식인들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읽어보지도 않고 남의 얘기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

   
▲ 문창극 총리후보자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20일 창성동 서울정부청사 별관앞에서 "우리는 문창극 후보자의 애국심과 국가관을 존경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를 들고 있다.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후보자의 강연 동영상을 보니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눈치 보지 않는 소신발언의 주인공 이인호

한국사회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그의 발언은 우파 인사 발언으론 이례적으로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 균형 잡힌 지식인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신선했다. 그의 소신은 좌편향된 지식사회 분위기에서 나온 극히 예외적인데, 문창극 후보의 낙마 여부와 상관없이 오래 여운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인호 교수는 문창극 사태 훨씬 이전 필자와 가슴을 연 대화를 했는데, "지금 한국사회를 흔드는 중차대한 위협은 족보 없는 좌파에서 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1년여 전 이승만, 박정희를 비판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동영상 ‘백년전쟁’문제의 위험성을 공론화했던 주인공도 그였다. 지난 해 3월 청와대 원로모임에서 그가 동영상의 역사왜곡 문제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살필 것을 당시 막 취임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언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꼴보수로 손가락질하는 이는 거의 드물다. 학계 위상이 그렇고, 깔끔한 그가 학문적 소신 외에는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거쳐 지금은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본래 그는 이상주의 성향의 학자였다. 즉 진정한 의미의 좌파와 개혁지향적 우파가 대결하고 견제하는 정치풍토야말로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 우리 지식사회가 반(反)지성적 상황의 끝을 달리고 있다.“학문의 자유, 정치적 자유에 대한 위협은 예전엔 주로 우파 쪽에서 제기됐다. 1980년대까지 그랬다. 지금 한국사회라는 공동체를 흔드는 위협은 주로 좌파에서 나온다.”

한국사회 흔드는 위협은 주로 좌파에서 나온다

인터뷰에서 한 그의 말 중 하나가 그렇다. “내 사고의 프레임은 변치 않았다. 다만 주변상황이 바뀌었을 뿐이다. 용서할 수 없는 건 시대착오적인 종북 좌파가 지금 우리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고 있고, 소모적 논쟁으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는 점이다.”는 발언도 했다.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도 날카로웠다.“386세대는 이중 삼중의 피해자이다. 자기세대가 역사를 잘못 배웠다는 뜻에서 일차 피해자인데, 그걸 자식세대에까지 넘겨주려 하고 있다. 결국은 자식 세대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란 뜻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진보-보수 구분은 다분히 허구적인 편가름이며, 그 구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친 대한민국인가, 반 대한민국인가라는 발언도 오래 음미할 만하다. 다음은 대화의 전문(全文)이다.

   
▲ 이인호 교수는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낙마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 때"라며 한국 지식사회의 좌편향과 광포함을 경계했다. 이 교수는 "지금 학교에선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을 거의 모조리 친일파에 기회주의자 매판자본가라고 가르치고 있다"면서 "철지난 계급투쟁론적 시각을 심어주기도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잠재력을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어렸을 적부터 흠모와 존경 대신 증오와 질투 같은 비열한 감정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확실한 진리가 뒷전으로 숨은 상대주의 시대

-오늘 주제는 중고교 역사교과서입니다. 책임있는 시민과 인간을 만드는데 역사교육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평소 지론도 함께 듣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전에 우리시대가 얼마나 복잡한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최근 하워드가드너라고 하는 하버드대 교수가 쓴 <진선미의 재구성(Truth, Beauty & Goodness Reframed)>란 책을 읽었는데, 우리는 진리와 참됨, 아름다움을 규명하는 게 옛날 같지 않은 시대라는 게 핵심입니다. 진짜처럼 보이지만 가짜인 게 수두룩하죠. 그걸 저자는‘truthiness’라고 말합니다.”

-신조어네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각자가 자기 믿고 싶은 것만을 받아들이려는 성향이기도 하구요.
"그렇죠. 우리시대는 한때 확실했던 진리가 뒷전으로 숨어버린 포스트모던한 사회이고, 상대주의의 시대죠. 여기에 인터넷의 출현으로 아무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 생 사이에 점차 늘어나는 시험부정도 전에 없던 현상입니다. 미국사회가 허술한 것 같아도 의외로 견고한데, 요즘은 시험부정을 견제하는 주변의 분노가 옛날 같지 않답니다. 모두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인데, 한마디로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지금입니다.”

-그래도 서양은 근대의 지적 전통 200~300년이 있습니다. 뒤늦게 근대를 시작해야 했던 우리는 그런 토대가 더욱 취약합니다.
“요즘 문제가 된 역사교과서 시비도 그 일환입니다. 근현대사란 우리세대와 윗세대가 직접 겪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전문가연하는 무리들이 역사를 말하면서 허튼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자료를 가지고 말하는 법인데, 바로 우리가 주역이고 자료입니다. 백범 김구나 토지개혁 등 세부 전공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시대 전반을 겪은 게 우리 세대입니다. 지금 학교교실에서 채택되고 있는 역사교과서는 그걸 송두리째 무시한 것이죠. 사학계의 주류(主流)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라서 저는 그걸 일종의 지식의 쿠데타로 규정합니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는 일종의 지식의 쿠데타로 봐야

-이 선생님은 처음부터 전교조 등 좌파에 반대했던 분이 아니라서 외려 논리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러시아 역사 전공자로서 처음부터 저는 반공산주의의 필요성은 절감했습니다. 단 우매하고 무식하게 추진되는 반공교육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경고를 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전교조 등장 초기에 교육현장 개혁을 위해 교사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전교조 강의도 했지요. 안타깝게도 지금의 전교조는 참교육을 지향하는 순수함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확실히 정치이념 문제에서 아주 유연한 입장이었군요. 본래 지식이란 게 그렇습니다.
“저는 진정한 의미의 좌파와 개혁지향적 우파가 대결하고 견제하는 정치풍토야말로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또 막가는 공산주의를 막는 최선의 대안은 사회민주주의 실현에 있습니다. 저만 아니라 이승만 박사도 그걸 잘 아는 분이었어요. 그가 1923년 쓴 글에 ‘공산주의의 당 부당(옳고 그름)’이 있는데, 노동자 농민 등이 잘 사는 세상,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자기의 이상이라 말했습니다.

단 모두가 똑 같이 나눠갖자는 기계적 평등이나 기업가들을 적대시하는 태도로는 사회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또 공산주의 특유의 전체주의적 성향, 비밀주의 통치방식에는 반대했습니다. 러시아혁명 초창기인 그때 서구 지식인이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소련을 찬양할 무렵에 이 박사가 그런 혜안을 보였던 게 놀라울 뿐이죠.”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가히 혁명적 사건으로 규정해야

-사실 전체주의란 용어를 거의 처음 사용했던 분이 이 박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1930년대에는 그 말이 저널리즘에서도 잘 사용되지 않았거든요.
“맞습니다. 이 박사는 해방직후 한 1년 동안은 공산주의자 박헌영까지도 포용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공산주의 이념을 품자는 게 아니고, 일제하 독립의 수단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했던 이들과도 협력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예전 인터뷰를 보니‘역사적 운명’이란 표현을 쓰셨더군요.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다른 정치세력이 조금은 배제되고 희생당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는 뜻이던데요.
“그랬나요? 저는 이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혁명이라고 적극적으로 규정합니다. 사실 해방 직후 자신의 이상주의 성향 때문에 사회주의 이념을 선택했던 지식인들이 적지 않았는데, 저는 그들의 처지를 동정합니다. 역사의 줄을 잘못 섰고 끝내 희생을 당한 분들인데, 당시로는 현실사회주의의 비인간적 성격을 잘 몰랐거든요.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은 정보통제가 하도 엄청나서 자기네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조금씩 밖으로 내보냈으니까요.”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사회가 너무 왼쪽으로 기울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저도 본래 리버럴한 성향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사회에서 진보연하는 세력에 문제가 있다는 발견을 했습니다. 참을 수가 없는 겁니다.
“학문의 자유, 정치적 자유 그리고 건전한 민주사회 운용이란 우리가 숨쉬고 사는 기본조건인데, 그것에 대한 위협은 예전엔 주로 우파 쪽에서 제기됐습니다. 1980년대까지 그랬죠.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회라는 공동체를 흔드는 위협은 주로 좌파에서 나옵니다. 그게 큰 걱정이죠.”
 

-요즘 선생님이 목소리를 내시는 건 그 때문이군요.
“내 사고의 프레임은 변치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상황이 바뀌었을 뿐이죠. 정말 용서할 수 없는 건 그 시대착오적인 종북 좌파가 지금 우리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고 있고, 소모적 논쟁으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는 점입니다.”(인터뷰 직후 작별인사를 하기 전 그가 한숨을 쉬듯 이렇게 토로했다.“(교과서 논쟁이 있던) 지난 보름을 거의 공포 속에서 살았어요. 지금 분위기는 지적(知的) 자유를 정치적 힘으로 압살하려는 공격이거든요.”

확실히 지금의 학계는 누가 봐도 위기다.

-우리사회에서 보수라고 하면 가스통 할배 운운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거 아주 잘못된 겁니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친대한민국인가, 반 대한민국인가입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각종 사회비리를 포함해 많은 문제가 있지요. 하지만 우리만한 성공을 거둔 국가는 2차대전 이후 독립한 140개국 중 우리가 유일합니다. 북한이 선택했던 공산주의는 이미 파산선고가 내려졌고요.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통일을 빌미로 테두리와 기본이념을 무너뜨리려는 게 문제죠.”

-그럼 참된 진보는 어떤 겁니까?”
“제가 좋아하는 역사학자가 에릭홉스봄인데, 그런 분이 진짜 진보적 학자입니다. 얼마 전 돌아간 그는 영국 공산당원이었고, 노동하는 대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보았지만, 자신의 학문적 주장에 추호의 거짓이나 허위가 없었습니다. 누구처럼 이념을 앞세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진 않았던 것이죠.”
 

-386세대에게 해주실 말씀은 어떤 겁니까?
“386세대는 이중 삼중의 피해자라고 저는 말하고 싶어요. 자기세대가 역사를 잘못 배웠다는 뜻에서 일차 피해자인데, 그게 잘못인 줄도 모른 채 다시 자식세대에까지 넘겨주려 하고 있으며, 결국은 자식 세대로부터 외면 당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죠. 현재는 그들이 문화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역사교육을 거의 독점하고 있잖습니까?”

   
▲ 이인호 교수는 "한국사회라는 공동체를 흔드는 위협은 주로 좌파에서 나온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386세대는 이중 삼중의 피해자로 봤다. 자기세대가 역사를 잘못 배웠다는 뜻에서 일차 피해자이고,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른 채 다시 자식세대에까지 넘겨주려 하고 있으며, 결국은 자식 세대로부터 외면 당할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역사란 사람되는 걸 배우는 길데, 지금은 완전 거꾸로

-혹독한 지적입니다.
“거기에는 이념분쟁을 넘어서는 아주 심각한 잘못이 있어요. 역사교육이란 게 뭡니까? 연표나 외우자는 게 아니잖아요? 역사란 결국 사람되는 걸 배우자는 거 아닙니까? 훌륭한 인물, 걸출한 인간은 이렇게 성장하는구나를 알고 따라하며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가를 배우는 겁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을 거의 모조리 친일파에 기회주의자 매판자본가라고 가르칩니다.

철지난 계급투쟁론적 시각을 심어주기도 하는데, 이게 바로 인간의 잠재력을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흠모와 존경 대신 증오와 질투 같은 비열한 감정을 부채질하기 때문이죠.”
 

-어쨌거나 걸핏하면 친일파 비판이 일어납니다.
“우리역사를 친일 대 반일의 프레임에 맞추는 것 자체가 허구일 수 있습니다. 우파는 친일이라서 나쁘고 좌파는 반일이라서 정통성이 있다는 건 허위입니다. 역사인물 평가에도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큰 것을 성취한 인물은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학교가 가르쳐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1960년대 극렬한 학생운동이 있었는데, 그 뒤에 이 현상을 분석하고 대처하기 위한 보고서가 나옵니다. 대학사회를 풍미하는 지각없음 (mindless)이 만성적 소요의 깊은 원인이고 따라서 그에 대한 처방은 결국은 인문교육의 강화라는 것입니다.”
 

과거 대학에 재직 중일 때 이 교수는 강의실에서 지식인과 역사의식을 논하고 인텔리겐치아와 혁명을 소개해왔다. 1980년대 학생 데모가 치열했을 때도 그러했다. 학생들의 지적, 사회적 관심을 강의실을 통해 충족될 수 있도록 좌파 역사학자 에릭홉스봄 교수와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스튜어트휴즈 교수를 초청했던 것도 그였다. 그게 당시 냉전시대 상황에서 지적 균형을 찾으려는 몸짓이었는데, 문제는 상황이 너무도 바뀐 지금이다.

철지난 좌파 사상이 한국사회의 문화권력으로 들어섰고, 중고교 교과서까지 점령한 지 오래다. 그게 우리 사회의 정신적• 이념적 위기의 현주소인데, 이에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명쾌한 지적을 한 이인호 교수의 경고음은 오래 기억될 만하다.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