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유임 어물쩡 비판 자초, 축구협 24명 대의원만의 밀실 조직 곤란

   
▲ 곽경수 전 청와대 춘추관장, 언론학박사
2014년은 대한민국 역사상 ‘책임’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거론된 해로 기억될 듯싶다.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은 사건 수습과정에서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논란을 불러 일으키더니 브라질 월드컵 참패와 관련해서도 7월 3일 축구협회의 기자회견을 보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지나갈 전망이다.

홍명보 감독 유임 논란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대표팀 수장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홍명보 감독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홍명보 감독을 계속 신뢰하고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홍명보 감독의 임기가 남았고, 월드컵 준비 기간이 짧았다는 점, 후임 감독으로 마땅한 대안이 없는 점 등도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유임결정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찬성쪽은 홍감독을 유임시켜 한국축구의 안정을 되찾고 월드컵 실패를 바탕으로 발전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반대측은 홍 감독이 대표 선수 선발 과정에서 논란이 일었을 때 '결과로 말하겠다'고 했다며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또 일부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도중 전격 경질된 차범근 감독이나 2011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 중 경질된 조광래 감독과의 형평성을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홍명보 감독 유임논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모든 논란의 초점이 감독에게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과연 월드컵 참패는 오로지 감독이 책임질 문제인가? 감독을 선임한 주체는 축구협회인데 축구협회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 왜 아무도 축구협회의 책임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것인가?

이탈리아 감독·회장 동반사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참가국들도 대부분 감독에게 책임을 물었다. 일본은 자케로니 감독을 경질하였고, 포르투갈의 벤투 감독도 이미 사퇴했으며, 러시아의 카펠로 감독과 잉글랜드의 호지슨 감독도 사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처럼 감독과 축구협회장이 함께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 프란델리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과 아베테 이탈리아 축구협회장은 16강 진출에 실패하자 사퇴의사를 밝혔다. 프란델리 감독은 유로 2012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고 준우승을 했지만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하자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아베테 회장 또한 "지난 대회에 이어 이탈리아가 또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월드컵 전에 결심했었다"며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 브라질 월드컵에서 참패한 국가대표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을 유임시키기로 결정해서 더욱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정치권도 선거에서 심판받으면 물러나는데, 축구협회는 브라질 대참사에대해 책임지는 인사가 전무하다. 모든 책임은 월드컵준비를 소홀히 한 축구협회에 있다. 정몽규 회장 등 집행부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축구협회는 24인의 대의원만의 밀실야합행정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홍명보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로 참패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감독보다는 협회가 책임져야
그럼 한국에서는 누가 월드컵 참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까. 나는 감독보다는 축구협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월드컵이란 전세계 210개 FIFA 회원국의 각 축구협회가 4년 동안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회다. 이를 위해 각국 축구협회는 가장 알맞은 감독을 선임하고, 그 감독이 선수들을 훈련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한 국가의 축구대표팀 실력은 감독 한사람의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기보다는 그 나라 축구협회의 수준에 비례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월드컵 실패는 감독의 실패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협회의 실패로 귀결된다고 보는 것이 옳으며 이 때 감독의 책임은 협회 책임의 일부로 귀속될 뿐이다. 감독은 협회가 월드컵을 대비해 준비하는 여러 요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월드컵 준비의 모든 것이 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참패에 대해 붉은악마는 성명을 내고 “지금 중요한 것은 홍명보 감독의 유임이 아니라 잘못된 일의 원인을 파악하고 반성한 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는 것”이라면서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책임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이것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해결점을 찾는데 있어 약간 비켜나간 느낌이다. 결국 기술위원회도 축구협회의 하부조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가 적합한지는 모르지만 정당의 예를 들어보자.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등 우리나라의 주요 정당은 4년 간격의 총선이나 5년 간격의 대통령 선거 등 주요 선거를 위해 모든 당력을 집중한다. 선거를 위한 공약을 개발하고, 조직을 관리하며, 당의 이미지를 좋게 유지하기 위한 일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모든 유권자에게 문호를 연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들을 선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며 선거일을 기다린다.

이렇게 몇 년을 준비하며 기다린 선거에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실패하면 선거를 준비한 주요 당직자들은 미련 없이 사임한다. 당직자 사퇴만으로 안된다고 판단하면 당명도 바꾸고 다른 당과 통합도 하고 외부인사도 수혈하면서 당의 체질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런 다음 새로운 당직자들이 다음 선거를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집단가운데 하나인 정당도 이렇게 결과에 대해 깨끗하게 책임을 지는데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조별예선 1무2패라는 대참사 수준의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월드컵 실패에 대한 기자회견도 회장이 직접하는 것이 아니라 부회장이 대신할 정도로 상황인식이나 책임의식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의 폐쇄성이 근본 문제
대한축구협회가 이렇게 책임의식이 결여된 데는 축구협회 구성의 폐쇄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2013년 1월 치러진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승리한 정몽규회장 책임하에 치러졌다. 당시 선거에는 모두 4명의 후보가 등록했으며 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대의원은 16명의 시·도 축구협회장과 8명의 축구협회 산하 연맹 회장 등 24명이 전부다. 따라서 대의원 24명 가운데 13명의 지지만 받으면 회장에 선출돼 한국축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선거 과정에 축구지도자나 선수 등 축구인들은 물론 붉은 악마를 비롯해 축구를 아끼는 많은 국민들은 전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선거운동도 밀실에서 1대1로 만나 내편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이 과정에 어떤 밀약이 오고갔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차마 선거라고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이렇기에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35년 동안 단지 4명의 회장만을 배출했을 뿐이다.

이런 선거과정을 통해 선출된 회장과 그 집행부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지는 말 안 해도 뻔하다. 이들에게 있어 최우선 순위는 대한민국의 축구발전을 위한 정책보다는 24명의 대의원들을 위한 정책일 것이다. 그렇기에 월드컵 실패와 같은 사태가 벌어져도 국민이나 전체 축구인에 대한 책임보다는 24명 대의원의 질책만 피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뿐일 것이다.

그렇기에 월드컵 실패후 처음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 축구협회를 대표하는 회장은 보이지도 않고 축구인 출신의 부회장이 나와 ‘우리는 같은 축구인 아닌가’ 라는 투의 호소하는 듯한 발언을 일삼는 오만을 보이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의 폐쇄성 때문에 기인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낙후된 축구 행정과 인사 문제, 그리고 직원 비리가 계속해서 언론에 오르내렸다. 2011년 조광래 감독은 제대로 된 절차도 지켜지지 않은 채 경질돼 말썽을 빚었고, 잔여 연봉 지급문제로 축구협회와 법정 다툼까지 하여야 했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2010년 말 FC서울 감독으로 취임한 뒤 4개월 만에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자 곧바로 축구협회로 들어가 기술위원장에 임명돼 논란을 빚다. 2012년에는 횡령과 절도를 저지른 회계담당 직원을 권고사직하면서 축구협회가 위로금으로 1억5천만원을 지급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축구협회 노조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협회의 해명과 함께 실무 책임자인 김진국 전무 등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축구협회 집행부 사퇴하고 새출발해야
축구협회에 이런 말썽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 것은 결국 사건발생 때 마다 제대로 책임지는 자세를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월드컵을 비롯해 위에서 언급했던 사안에 대해 축구협회는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 한번 없었고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제는 축구협회가 책임질 차례다. 회장을 비롯한 축구협회 집행부는 권한과 함께 책임을 지는 자리다. 축구협회는 24명의 대의원만을 위해 일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축구의 발전을 책임져달라는 국민의 열망이 담겨있는 자리다. 이러한 국민들의 열망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으면 책임지고 사퇴하고 집행부를 다시 꾸려 멀리는 4년 뒤 러시아 월드컵을, 가까이는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새로운 집행부를 꾸릴 때는 24명 대의원들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감독은 물론, 선수, 심판, 축구동호회원, 붉은 악마응원단, 프로축구단 팬클럽 등 축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국민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축구인과 축구를 아끼는 국민들의 입장과 견해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축구협회가 민주화되고 그런 협회가 되어야 국민앞에 책임지는 협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곽경수 전청와대춘추관장,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강사(언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