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책임을 지는 이가 없는 KBS 방송의 공정성과 공영성, 해답은 KBS 수신료에 대한 시청자 클레임 제도와 KBS 시청자 위원회의 권한 강화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만 외칠 것이 아니라, '수신료 독립'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KBS의 현주소를 묻는다 :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길’ 토론회에서 이 같이 밝히며 “수신료에 대한 '시청자 주권'이 혀용된다면 KBS는 보다 더 팩트에 충실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애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KBS의 현주소를 묻는다 :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길’ 토론회 전경 

한 편집위원은 이날 “전파가 유한한 자원의 위치를 잃은 디지털 시대에 현행 방송법은 KBS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이로 인해 정부가 KBS방송에 관여할 수 없음으로써 KBS방송의 공정성과 공영성은 책임을 지는 이가 없다”고 밝혔다.

한 편집위원은 “이에 따라 사회 갈등을 통합하고 여론을 수렴한다는 공영방송의 기능이, 문창극 총리후보 및 백선엽 장군에 대한 논란 등 정치와 이념노선에 따라 국론분열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한 편집위원은 이어 “KBS가 공영방송임에도 무엇이 방송의 공영성인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가 부재함과 동시에, KBS내부에 방송 노조와 경영진간에 정치적 대립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KBS 내부의 통제 기능이 상실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편집위원은 “KBS 수신료에 대한 시청자 주권적 관점에서 KBS 수신료에 시청자 클레임이 가능한 제도를 만들며, KBS 시청자 위원회의 권한과 위상을 방송법 개정을 통해 한층 강화함으로써, KBS의 실질적인 독립과 시청자를 위한 방송을 함께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23일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KBS의 현주소를 묻는다 :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길’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다음은 한 편집위원의 패널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수신료'라는 기이한 이름을 가진 제도가 있다. 이 제도가 기이한 이유는 TV 수상기를 보유한 세대는 무조건 월정액을 내야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한 수신료는 한때 '시청료'라고 불렸다.

아날로그 전파는 유한하기 때문에 그 이용이 공공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영방송의 논거가 됐고 그러한 재원의 명목으로 시청료가 징수됐다.

하지만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전파는 유한한 자원의 위치를 잃었다. 아날로그 전파 대역을 수 없이 많이 쪼갤 수 있는 디지털 방식은 수많은 채널들을 생성해 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KBS 시청료는 어느 순간엔가 '수신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수신료란 무엇인가?

영국의 BBC, 일본의 NHK는 수신료를 '공영방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가'로 본다. 그렇기에 수신료는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이 된다. 당연히 공영방송의 컨텐츠 수준이 낮거나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공영방송의 수요자인 시청자는 요금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시청자 주권'이라고 한다.

반면에 우리 방송법은 수신료를 'TV 수상기에 대한 특별 부담금'으로 해석한다.

누구나 TV 수상기를 갖고 있으면 방송을 수신하기에 수신료를 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수신료를 전기료에 합산해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 방송법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 소송에서 2008년 헌법재판관들이 청구소를 기각하며 해석한 것이다.

헌재의 이러한 판단은 법조계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TV 수상기가 방송을 수신하기에 그 부담금으로 수신료를 내야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특별 소비세에 해당한다. 자동차가 주행하기에 주행세를 내야 한다는 개념과 같다. 그렇다면 TV에 세톱박스가 설치되어 KBS 방송을 많이 보는 시청자가 수신료를 더 많이 내야한다는 비례와 형평의 원리가 등장해야 맞다.

무엇보다 헌재의 해석대로 수신료를 공영방송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TV 수상기를 보유한 까닭에 부담금으로 내야한다면 시청자는 공영방송의 서비스에 대한 저항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수신료가 얼마가 되든 우리는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제공하는 방송을 불평하지 말고 봐야 한다. 그런 논리는 파쇼국가에서는 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KBS 채널을 보는 만큼 수신료를 내든지, 아니면 국가가 KBS의 방송 퀄리티를 보증하고 책임지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방송법은 KBS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KBS방송에 관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KBS방송의 공정성과 공영성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까.

KBS는 지난 2012년 1월, 북한 인민군가를 비롯 수 많은 북한 군가를 작곡했던 재중 교포 정률성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내 보수 진영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당시 제작 책임자였던 PD는 그러한 비난에 대해 '기득권 친미주의자들'이라는 반론을 펼쳐 국론을 아예 절단냈다. 사회 갈등을 통합하고 여론을 수렴한다는 공영방송의 기능이 정치와 이념노선에 의해 국론분열을 가져왔던 사건이었다.

정 반대의 경우도 있다.

KBS가 백선엽 장군에 대한 다큐를 내보냈을 때, 진보진영은 KBS가 친일 매국노를 미화했다며 수신료 거부운동을 펼쳤다. 이에 보수진영은 정반대로 6.25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들어 KBS를 두둔하는 반대논리를 펼쳤다.

최근 편파 왜곡으로 논란이 됐던 KBS의 문창극 보도 역시 도대체 무엇이 공영방송의 책임과 역할이냐는 문제를 불러 일으키며 좌-우 진영간에 한치 양보없는 공방전이 일어 났다. 공영방송 KBS는 그렇게 대한민국 정치, 그 한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KBS가 공영방송임에도 무엇이 방송의 공영성인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가 부재함과 동시에, KBS내부에 방송 노조와 경영진간에 정치적 대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청자들에게는 공영방송 이전에 자신들의 정치적 가치를 지지해 주는 '우리 방송'이 더 중요한 것이고, KBS 내부에서는 공영방송보다 자신들의 권력과 헤게모니가 더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문제는 KBS가 내부적으로 자기 통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한다는 공영방송이 기실 내부적으로는 노사간에 권력투쟁을 위한 정치방송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시청자는 어디에 있는가?

다시 수신료 문제로 돌아가 보자.

헌법 재판소의 시대착오적인 해석 '수신료='TV수상기 특별 부담금'은 KBS의 공영성과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KBS입장에서 시청자는 수신료를 의무적으로 내야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만일 수신료가 시청자들의 공영방송 서비스에 대한 대가라면, KBS 제작자들과 노조, 그리고 경영진과 임원들은 지금 보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방송과 보도를 신중하게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러한 수신료에 대한 '시청자 주권'이 혀용된다면 KBS는 보다 더 팩트에 충실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애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KBS 수신료에 시청자 클레임이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KBS 시청자 위원회의 권한과 위상이 방송법 개정을 통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KBS는 그것이 싫다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만 외칠 것이 아니라, '수신료 독립'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