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기는 성장․분배 양립하던 시기, 현재는 저성장․고령화로 여건 악화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아시아금융학회와 공동으로 16일 여의도 FKI TOWER 컨퍼런스센터 에메랄드룸에서 『피케티 《21세기 자본론》과 한국 경제』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배상근 한경연 부원장의 개회사와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21세기 자본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21세기 자본론》과 한국의 소득 분배 ▲《21세기 자본론》과 한국의 조세 정책 등 3개 세션으로 나누어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피케티 《21세기 자본론》과 한국 경제』 세미나 전경 

배상근 한경연 부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경제성장은 기본적으로 기업가의 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한 채, 단순히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율의 누진소득세와 자본세를 부과하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배 부원장은 “이렇게 되면 피케티가 의도하는 것과는 반대로 기업가의 투자환경이 악화되어 투자가 위축되고 그 결과 고용과 분배구조가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피케티 《21세기 자본론》과 한국 경제』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는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뉴노멀이라고 하는 장기저성장 또는 장기정체기에 진입하면서 고용과 소득분배가 악화돼 사회적 분노와 폭력 확산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개선안으로 오 회장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그 결과 소득분배가 개선되는 투자활성화로 파이를 키우는 정책이 중요한데 고소득층과 자본가에게 몰수적 고율세금을 부과하면 소득분배가 개선된다는 식의 1:99의 논리로 대중 감정을 자극하는 피케티의 주장은 좌우대립의 진영논리와 혹세무민을 부추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피케티 《21세기 자본론》과 한국 경제』 세미나에서 환영사에 이어 발제하고 있는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두 번째 세션 “《21세기 자본론》과 한국의 소득 분배”의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소득불평등 1933년-2012년: 소득세자료에 의한 접근>이라는 발제를 통해 “피케티처럼 상위 1% 소득집중도를 추정해 본 결과 해방 전에는 높은 수준이었던 소득집중도가 해방 후 급락하여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안정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다만 1990년대 중엽 이후 다시 급상승하는 U자형의 양상을 보였고, 현재에는 소득불평등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영미형과 이전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유럽·일본형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해방 후 고도성장기의 소득분배의 개선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과 그로 인한 높은 고용 증가 지속으로 성장 효과가 저변으로 널리 확산되면서 성장과 분배가 양립하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엽 이후 한국경제가 저성장 단계로 들어서면서 소득불평등이 다시 급속히 확대되었는데, 김 교수는 그 요인으로 “고용증가 둔화,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 시스템 변화와 성과주의 보수체계 확산, 소득세 과세체계의 누진성 후퇴가 원인이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제 복지지출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미 들어섰다”고 전제하며, 이어 “그러나 저성장이 불가피하고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인해 여건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고 전망했다.

다음은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발제요약문이다.

두 가지 과제를 다룬다. 첫째 과제는 T. Piketty 등의 방법에 따라 우리나라 소득세 자료를 이용하여 해방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기에 걸쳐 상위 1% (또는 0.1%, 10% 등)의 소득집중도(top income shares)를 추정하는 것이다.

결과에 따르면 해방 전에는 높은 수준이었던 소득집중도가 해방 후 급락하여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안정되었다가 1990년대 중엽 이후 다시 급상승하는 U자형의 양상을 보였다. 다른 선진국도 1970년대까지는 대체로 유사한 추이를 보였지만, 그 이후에는 소득불평등이 크게 확대되어 간 영미형과 이전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유럽·일본형으로 분화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중엽 이후 소득집중도가 급상승하여 현재는 양자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과제는 소득집중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요인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먼저 해방 전에 비해 해방 후는 불평등도가 크게 떨어졌는데, 식민지 체제가 청산됨으로써 고소득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인이 철수하였고 농지개혁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도 이 시기에 불평등도가 크게 떨어져 유사한 양상을 보였지만, 전시 하에서 인플레에 의한 자본소득의 격감과 근로소득 내부의 격차 축소에 기인한 것이며, 그 배후에서 작용한 요인은 우리나라와 달랐다.

해방 후 이러한 체제전환을 전제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이 이루어졌고, 이례적으로 높은 고용 증가의 지속으로 인해 성장 효과가 저변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고도성장기는 성장과 분배가 양립하고 있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엽 이후 한국경제가 저성장 단계로 들어서면서 소득불평등이 다시 급속히 확대되었는데, 그 요인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들었다. 즉 이 시기에 중국 등 저임금 국가와의 교역이 확대되고 숙련 편향적 기술변화로 인해 고용증가가 크게 둔화되었는데, 그로 인해 성장의 효과가 점차 저변으로 파급되기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 시스템이 변화되면서 성과주의 보수체계가 확산되었다는 점, 그리고 지난 30년간에 걸쳐 소득세 과세체계의 누진성이 후퇴하였다는 점도 최상층으로 소득의 집중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제 성장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분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복지지출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미 들어섰다. 그렇지만 앞으로 저성장이 불가피하고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인해 그를 위한 여건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소득불평등의 장기추이는 다음과 같다. 해방 전을 포함하여 장기간에 걸쳐 U자형의 양상을 보인다. 해방 전은 민족 및 계급 간 이질성이 높은 격차 사회였지만, 해방 후에는 이질적 체제의 해소를 전제로 고도성장기에는 성장과 분배가 양립했다.

1990년대 중엽 이후 다시 소득불평등이 빠르게 심화하였으며, 그 양상이 유럽 일본형에 가까운 수준에서 영미형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차후의 성장 둔화,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이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전망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종래의 각종 가계조사를 재검토하며, 여기에는 상층뿐만 아니라 중하층까지 포함해야 한다. 통계청의 지니계수 등은 소득불평등의 수준과 추이를 상당히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새로운 자료와 방법에 의해 소득불평등의 장기추이와 국제비교가 가능하다. 여기에 소득세 자료와 가계조사의 보완적 활용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