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를 끼치지 않은 '손해 위험'만으로 처벌...죄형법정주의 훼손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은 위험을 무릅쓰고 붙잡은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의 정신이다. 이처럼 당장의 득실보다는 먼 미래를 보며 위험을 감수하며 경영 판단을 하는 것이 기업인의 숙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경영인들을 ‘업무상 배임’이라는 혐의 안에 묶어버리려는 정치권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려운 계열사를 돕지 않으면 꼬리 자르기라고 비난받고, 지원을 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그룹을 살리기 위해 또는 번영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는 경영인의 의사 결정이 잠재적 범죄 행위로 취급받는 현재의 상황은 기업가들에게 가혹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 자유경제원 미디어펜 주최 <업무상 배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 전경. 왼쪽부터 김두얼 명지대 교수,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이정민 단국대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무전유죄 유전무죄'도 잘못이지만 원칙 없는 ‘유전유죄’는 더 큰 문제이다. 현재 꺼져만 가는 경제 성장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 기업가의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배임죄의 문제를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취지로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23일 <업무상 배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은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받는 기업에 대하여 “기업은 본질적으로 리스크이다. 기업은 수익을 올리기 위한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기능이 작동하는 곳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현 원장은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기업활동이 곧 배임활동이나 마찬가지일텐데, 사기나 개인의 횡령 등 나쁜 배임이 있으면서 중립적인 행위로서의 배임이 있을 것이다. 중립적인 배임 행위가 기업의 일반적인 경제행위로 읽히지 않는다면,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이 경우에 따라 위축될 수 있는 우려가 상존한다”고 논평했다.

이사회가 허수아비 혹은 거수기이기 때문에 배임죄가 피치 못한 대안이라는 의견에 대해서, 현 원장은 “이사회의 거수기화에 대한 방안으로 배임죄를 유지하자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정민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23일 자유경제원 미디어펜 공동 주최로 열린 <업무상 배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 업무상 배임죄의 모호성을 밝히고 죄형법정주의원칙 하에서 업무상 배임죄를 해석하였다. 

토론자로 나선 이정민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죄형법정주의는 국가형벌권에 대한 국민의 사법감시이다”라고 밝히며,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으로 인하여 죄형법정주의가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배임죄의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업무상 배임죄의 해석이 형법에 근거하여 판결이 내려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하며, 이어 “형법조문은 분명히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발생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 판례는 꾸준히 ‘손해발생의 위험’만 있어도 배임죄를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배임죄 판례에 대하여 “손해발생의 위험을 손해라고 해석해 온 법원의 관행은 손해의 정확한 산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편리함으로 인해 죄형법정주의는 훼손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형법은 죄형법정주의원칙상 명확성 원칙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배임죄의 죄형법정주의 훼손은 근본적으로 법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론 법학의 한계이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업무상 배임죄는 손해발생의 위험, 그에 따른 경영 판단에 대하여 모호성을 띄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손해를 끼치지 않아도 처벌을 받은 한화그룹의 판례 등이 불합리하다고 느끼게 되는 주된 이유이다”라고 주장했다.

   
▲ 이정민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23일 자유경제원 미디어펜 공동 주최로 열린 <업무상 배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 업무상 배임죄의 모호성을 밝히고 죄형법정주의원칙 하에서 업무상 배임죄를 해석하였다. 

다음은 이정민 단국대 법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1. 업무상 배임죄의 모호성에 관해서

발표문에서는 업무상 배임죄의 모호성에 대한 예시로 ① 부산저축은행사례(2009도14464), ② 한화 계열사 지원 사례(2013도5214) ③ KT 저가매각 사례를 들고 있다. 이 사례 가운데, ③은 아직 확정판결이 나온 것도 아니므로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먼저 첫 번째 사례부터 검토해 보도록 한다.

형법은 죄형법정주의원칙상 명확성 원칙이 보장되어야 한다. 발표문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당연히 하여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면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판결문의 문구는 자칫 불명확해 보일 수 있다. 만일 이것이 불명확하다면 사법부의 자의가 개입된 형벌권의 행사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본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는 판례 해석의 불명확성이지 죄형법정주의원칙에서 말하는 법조문의 불명확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혹자에 따라서는 배임죄(형법 제355조) 또는 업무상 배임죄 (형법 제356조)의 구성요건(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성립)에 관해 불명확성을 지적하는 학자가 있다. 특히 ‘임무위배행위’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형법은 어느 정도의 탄력성 이 경우 불명확성(?)이 있어야 빠르고 복잡하게 변해가고 있는 사회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형법은 입법적 흠결을 보이거나 형평성을 상실하기 쉽다. 형법의 탄력성을 완전히 배제한 형법은 명확할 수는 있어도 충분히 정당할 수는 없다.1)

그리고 임무위배행위는 내부통제시스템, 컴플라이언스에 의해 가이드라인이 대개는 정해져 있다. 특히 이사회 승인이나 결의사항과 주주총회 승인이나 결의사항으로 상법상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자가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고 의사결정을 하였다면 임무위배행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당연히 하여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고,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한 것”이다. 첫 번째 사례는 이러한 임무위배행위가 인정되는 사례이다.

2. 죄형법정주의원칙 하의 업무상 배임죄 해석

그렇다고 법원의 배임죄 또는 업무상 배임죄해석이 죄형법정주의원칙에 위배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업무상 배임죄의 해석이 우리 형법에 근거하여 판결이 내려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형법조문은 분명히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발생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 판례는 꾸준히 ‘손해발생의 위험’만 있어도 다음과 같이 배임죄를 인정하고 있다.

“배임죄는 현실적인 재산상 손해액이 확정될 필요없이 재산상 권리의 실행을 불가능하게 할 염려있는 상태 또는 손해발생의 위험이 있으면 성립되는 위험범”이라고 한다.2)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류전철 교수3)는 이에 대해 재산상 손해발생의 위험을 재산손해의 범주에서 이해하는 판례의 입장과 이를 추종하는 학계의 현실은 우리 형법해석학이 독일 형법학에 의존하는 결과물로서 드러나는 한계이며, 법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론 법학의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독일에는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어 우리 형법상 배임미수에 해당하는 상황을 무죄로 해야 하는 불합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손해발생의 위험을 손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두 번째 계열사 지원사례에서 판례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손해발생의 위험을 손해발생으로 인정해 배임죄를 인정하였다는데 있다. 실제 한화그룹 사례는 계열사인 한유통, 웰롭, 부평판지에 제공된 지급보증이 공소제기 전에 별다른 문제없이 만기가 도래하여 지급보증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판례는 법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원칙을 고수하도록 변경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문에 충실하게 법익의 침해를 따져봐야 한다. 이는 입증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검사는 손해를 입증하여야 한다. 이를 거증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거증책임이란 어떤 사실의 존부가 증명되지 아니한 경우에 당사자 일방의 불이익의 부담4) 또는 법적 지위이다.5)

무죄의 추정은 형사소송의 기본원칙이며,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검사가 원칙적으로 거증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6) 그런데 대부분 실무에서 검사는 별 어려움 없이 사실관계만 적당히 늘어놓고 입증을 마치게 된다. 법관도 마찬가지이다. 배임죄를 위험범으로 보게 되면, 손해액과 이득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하지 않고 위험액수를 추정하고 이것을 배임죄 기수로 인정한다. 즉 손해발생의 위험을 손해라고 해석해 온 법원의 관행은 손해의 정확한 산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편리함으로 인해 죄형법정주의는 훼손되고 있다.7)

만일 손해발생의 위험이 손해발생으로 보아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배임죄 규정에 “손해발생의 위험”이 구성요건으로 포함되는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형벌권에 대한 국민의 사법감시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1) 이상돈, 형법강의, 법문사, 2010, 30면 참조.
2) 대법원 1983.3.8.선고 82도2873 판결; 대법원 2003.10.30. 선고 2003도4382 판결; 대법원 2006.4.27. 선고 2004도1130판결; 대법원 2010.12.23.선고 2009도8851판결.
3) 류전철, 배임죄에서 재산상의 손해발생의 위험, 법학논총 제30집 제1호, 전남대학교 법학연구소, 2010, 124면 참조.
4) 백형구, 형사소송에 있어서의 거증책임, 고시계, 2001/11, 104면 참조.
5) 정웅석, 거증책임, 고시연구, 2001/10, 105면 참조.
6) 백형구, 형사소송에 있어서의 거증책임, 고시계, 2001/11, 107면 참조.
7) 동지의 견해로 허일태, 배임죄에서의 행위주체와 손해의 개념, 비교형사법연구 제6권 제2호, 2004, 155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