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광기어린 이지매…반재벌정서에 본질 흐려져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모든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대한항공을 타본 적이 있는지. 국내 저가노선 말고 장거리 국제노선으로.

땅콩리턴 사건, 정확히는 일등석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두고 벌어진 에피소드로 인해 온 대한민국이 들끓고 있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월권이자 특권, 소위 ‘갑질’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소식을 접한 모든 사람들은 땅콩리턴 사건에 열을 내고 있다. 사무장의  지상파 방송 인터뷰 이후 이는 더욱 거세졌다. 대형마트에서 마카다미아가 매진되기도 했으며, 온갖 패러디물이 양산되고 있다.

의아한 것은 열을 올리고 있는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 중 조현아 부사장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조현아 부사장의 월권행위로 인해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은 대한항공 해당 항공기의 사무장과 승무원, 승객이다.

이에 더해 항공기 이륙 지연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피해 입었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공항 관제탑의 직원들과 뒤이어 이륙을 기다리던 항공기 정도이다. 이번 땅콩리턴 에피소드에서 대한항공 항공기의 기장에게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 보는 것은 생각이 짧다. 해당 항공기의 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 기장이다.

   
▲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은 재벌상속녀였다. 기업 임원이지만 항공기의 승객이기도 했다. 조현아 씨의 부적절한 처신, 무개념에 가까운 언행은 해당 조치가 불법이냐 합법이냐를 떠나서 국민들 다수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상황을 보면 대한항공이 마치 국영기업이거나 청와대처럼 느껴진다. 기업의 오너 임원과 직원 사이 벌어진 일개 사건에 모든 언론이 주목하고 온 나라가 들썩이며 전 세계에 널리 퍼진다. 조현아 부사장의 처신은 부하직원에 대한 개인적인 무례 혹은 무개념에 가깝다. 그런데 이를 두고 기업 총수인 사람이 딸을 잘못 키운 못난 아비라는 말까지 꺼내며 대국민 사과를 한다.

대한항공이 수천억을 쏟아부으며 역점을 두어 추진했던 부동산개발 사업은 이 사건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피해 당사자라는 사무장은 검찰에 출두하여 사실관계를 소상히 밝히기보다는, 공중파언론에 먼저 출연하여 자신이 입은 부당한 조치에 관해 대중여론에게 호소한다. 한 언론에서는 조현아 부사장과 함께 일등석에 탔던 또 다른 젊은 여성 탑승객에 대한 소개 기사를 낸다. 여론재판의 막이 올랐다. 다들 제정신인가.

주위를 둘러보자. 사회 언저리의 뉴스들을 살펴보자.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과 자살, 강도와 사기가 빈번하다. 도로에는 무개념 운전자와 음주운전자가 횡행하고, 야밤에는 파출소 경찰서 할 것 없이 난동꾼과 술주정뱅이로 가득하다. 교회 성직자가 아동성애자로 밝혀지기도 하고, 도박판과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승려들도 버젓이 잘 살아간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칼부림이 일어난다. 자기 아이를 죽이는 부모, 부모에게 패륜행위를 저지르는 자녀들 소식이 여기저기 들린다. 국내 소식 뿐 아니다. 성매매를 위해 해외에 나가 일하는 여자들의 숫자는 단연 세계 최고이다. 호주나 일본, 캐나다와 미국 등지에서 현지 경찰 및 언론들이 주목하는 이슈가 한인여성들의 성매매 단속이다.

   
▲ 2014년 올해의 가장 엽기적인 사회 이슈는 세월호였다.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인해 수학여행을 갔던 한 학년의 학생들 대다수가 사망해 국민들의 연민을 더욱 자아냈다. 팬티바람 세월호 선장과 김현 국회의원, 세월호 유가족과 김영오씨는 사고 이후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일어났던 엽기적인 일은 더 많다. 팬티바람 세월호 선장은 배가 침몰하는 가운데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탈출했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가지고도 유가족들과 함께 대리기사를 폭행한 뒤, 거짓말로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양육비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자식들을 돌보지 못했던 아비는 유가족 대표처럼 행세하면서 국회와 청와대, 언론과 국민들 앞에 당당히 나섰다.

조현아라는 재벌상속녀가 엽기적이라면, 우리는 그보다 더 엽기적인 수십명의 사람들을 국회에 모셔두고 있다. 전기톱과 공중부양, 최루탄이 난무하던 동물국회는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서로 챙겨주는 훈훈한 미담(?)과 예산쪽지가 흘러넘치는 식물국회다.

한번 가정을 해보자.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재벌 상속녀가 아니라 월급쟁이 일반인 임원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일방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사람들은 ‘약자는 무조건 옳고 배려 받아야 하며 강자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곤 한다. 강자는 무조건 탐욕스럽고 무조건 틀렸으며 약자보다 절대 우선권을 가질 수 없는 존재라고도 생각한다.

언더도그마는 약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연민을 뜻한다. 강자는 악하고 약자는 선하다는 선입견을 말한다. 언더도그마를 표방하는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대중에게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미생’이다. 출퇴근 길 힘겹게 통근하는 직장인들 대다수가 드라마 미생을 챙겨본다.

미생을 보면서 사람들은 희로애락을 느끼고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한다. 미생은 기업을 악으로 보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을 관계, 상사와 부하직원, 사수와 부사수, 강자와 약자 간의 에피소드를 그린다. 공허함과 주변인의 정서가 배어있다.

   
▲ 드라마 미생. 시청자들은 미생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을 통해 약자이자 주변인으로서의 감정을 공유하고 이를 공감한다. 미생은 현재 가장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보면 알게 된다. 강자보다 더 더러운 약자가 수두룩하고 누구보다도 탐욕스러운 약자 또한 지천에 깔려 있다. 자신이 노력을 하지 않은 건 모르쇠로 일관하고 그저 나라 탓, 사회 탓만 하는 약자들도 눈에 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절대선과 절대악, 갑과 을, 부자와 가난한 자, 재벌과 미생으로 단순히 구분 지을 수 없는 곳이다. 모두가 갑이면서 모두가 을이 될 수 있다. 갑과 을의 관계는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광기어린 이지메는 재벌을 향한 ‘배 아픔의 발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재벌상속녀인 조현아가 잘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더 이상의 마녀사냥, 여론재판은 이 사건에 열을 내는 사람들의 수준을 반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진 자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그만 가졌으면 한다. 6개월 전 유력정치인의 미성년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개하다"라고 했던 그말이.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