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본질 덮어…정명훈 도덕성·박원순 공정성은 여전히 숙제

   
▲ 이원우 기자

예술의 뒤안길에 냉엄한 현실이 버티고 있는 경우는 많다. 한때 빙판만 봐도 짜증이 났다던 ‘요정’ 김연아의 푸념을 우리는 한번쯤 들어본 일이 있다. 변변한 연습공간이 없어 불편을 겪었다는 후일담도 이제 와서야 추억이지만 당시엔 악몽이었을 것이다. 예술은 4차원일지 몰라도 현실은 언제나 3차원이다.

권위와 형식미의 결정체, 클래식 음악의 세계는 어떨까. 서울시향 얘길 좀 해보려고 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과 나이가 동갑인 악단이다(1948년 창립 시 명칭은 서울교향악단). 한국전쟁을 겪는가 하면 해군 소속으로 옮겨간 적이 있고, 세종문화회관 소속이던 시절에는 파업사태를 겪는 역사를 남겼다.

혈세로 유지되는 서울시향의 ‘예술’

희미하던 서울시향의 존재감은 몇몇 인물들의 등장으로 비로소 뚜렷해졌다. 그 중 한 남자가 정명훈이다. 2005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된 정명훈은 어느 순간 서울시향의 ‘얼굴’이 됐다.

그의 취임 이후 500명 수준의 유료 관객 숫자는 300% 이상 폭증했다. 2006년 1월부터는 예술감독 직함으로 활약 중이다. 2013년의 유료관객 비율은 무려 92%였다.

정명훈은 얼마나 훌륭한 예술가일까. 지휘법 또한 하나의 예술 영역인 만큼 ‘정답’은 없다. 정명훈의 음악 해석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그렇다 해도 그가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틀즈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최고의 록그룹이라는 건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정명훈보다 늦게 서울시향의 ‘연관 검색어’로 합류한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201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로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한 그는 서울시향의 인사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공식적으로 서울시향은 독립된 재단법인이지만 서울시의 출연금(出捐金)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2014년 서울시향의 예산은 173억 원. 이 중에서 서울시는 108억 원을 지원했다(62.4%). 서울시향이 ‘혈세’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금액에서 나온다. 서울시향은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서울시는 시향에 대한 출연금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서울시향의 CEO에 해당하는 ‘대표’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누구도 맡으려고 하지 않았던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해 박 시장과 정 감독은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투입된 ‘구원투수’가 이 글의 주인공 박현정이다. 그녀는 정 감독과 박 시장이 동시에 욕심을 냈던 드문 후보자였다. 세계적인 예술가와 영리한 정치가 모두가 이때까지만 해도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마어마한 파국일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박현정은 서울시향 대표이사로 2013년 2월 1일 취임했다. 원래의 임기는 2016년 1월 31일까지였다.

박현정이 ‘마녀가 된 이유’

이 시점에서 박현정의 ‘스펙’을 한 번 톺아보자. 1962년 1월28일생. 학력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하버드대학 사회학과 석‧박사다. 경력도 화려하다. 삼성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 삼성화재 고객관리(CRM) 파트장, 삼성생명 경영기획그룹장‧마케팅전략그룹장(전무), 여성 리더십 연구원 대표, 한국교육개발원 前 선임연구원 등이다.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부친은 동력자원부 故 박봉환 장관, 외삼촌은 ‘경제민주화’의 김종인 前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박현정 전 대표가 여론의 질타를 이다지도 심하게 받은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이와 같은 ‘화려한 스펙’을 꼽는다면 비약일까. 대중들은 언제나 반전(反轉)에 반응한다. 경력이 일천한 사람보다야 화려한 사람이 패악을 저지른 쪽이 뉴스거리가 되는 게 당연하다. 을(乙)이 갑(甲)을 이기는 건 정의의 실현이지만 그 반대는 악습이고 적폐이며 처단의 대상이라는 것이 2014년 을미년의 한국 정서인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박현정 대표는 여론에게 ‘지나칠 정도로 적절한’ 먹잇감을 던져주고 말았다. 이른바 ‘막말·성추행 파문’이다.

사태가 불거진 정확한 날짜는 2014년 12월2일이다.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언론에 호소문을 공개하며 박 대표의 성희롱, 폭언 등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박 대표 취임 이후 직원들의 인권은 처참하게 유린당해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녹취록도 나왔다.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월급에서 까겠다. 장기라도 팔아야지” “미니스커트 입고 네 다리로라도 나가서 음반 팔면 좋겠다” “술집마담 하면 잘할 것 같다” 등의 발언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남양유업 막말파문, 포스코 라면 상무 등을 기억하는 여론은 순식간에 악화됐다.

박현정 대표의 대응이 느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연 것은 바로 다음날인 3일 오전 10시였다. 하지만 이때 이미 모든 여론은 박현정에게 철저히 적대적이었다.

언론과 여론은 이미 사안에 대한 판단을 끝마친 상태였던 것이다. 하루 사이 결론은 ‘박현정=나쁜 사람’으로 확정돼 있었다. 기자회견장에서 터진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조차 박현정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녀는 연신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촬영을 조금만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녀를 단죄하는 현장의 공기는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다.

누구도 듣지 않았던 이야기

기자회견장에서부터 지금까지 ‘막말’에 대한 박현정의 입장은 일관된다. “언행에 실수가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인권조사관 또한 폭언과 성희롱 사실이 있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당연한 수긍인지도 모르지만 박현정은 “직원들에게 대놓고 욕한 적은 결코 없다”고 주장한다.

여성신문과의 1월7일자 인터뷰에 따르면 공개된 녹취 파일 속 고성과 욕설은 서울시향 직원들이 아니라 정명훈 감독의 소속사인 유럽 에이전시의 무례한 행태를 지적했던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박현정의 주장이다. 그녀가 서울시향 직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언행에도 거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판단된다. 한국 사회에선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리더로서 결격 사유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녀는 결국 논란 27일 만인 작년 12월29일 자진 사퇴했다. 어차피 다음날인 30일에는 서울시향 이사회를 통해 박현정 대표 해임안이 상정될 예정이었다.

   
▲ 작년 12월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진행된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박현정 대표가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사진=뉴시스

결국 일련의 사태는 ‘막말 논란 → 원인 제공자 사퇴’라는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수습됐다. 대중들은 더 이상 이 사태를 기억할 동기를 잃어버렸다. 이내 ‘새로운 마녀’ 조현아가 등장하기도 했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다. 설령 박현정 前대표가 막말을 일삼는 불친절한 리더였다고 해서 그녀가 던진 화두마저 묻혀버리는 건 부당한 일인지 모른다. 박 前대표가 서울시향에 대해 남긴 말들에는 ‘방만한 공기업’을 연상케 하는 상당히 중요한 지적 사항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옮긴지 3개월이 됐는데 서류 정리를 못 해서 옆에 박스를 쌓아 놓고 있었다든지, 지난 9년간 공연 곡목을 정리한 리스트가 없었다든지, 감사를 받기 위해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서류상 데이터가 매번 틀렸다는 등의 문제가 충분히 ‘있을 법하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이것은 이치에 합당한 일일까?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지만 ‘나쁜 사람이 언급한 나쁜 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게 맞는 걸까?

‘예술’을 다루는 서울시향 업무의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그들이 혈세를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에도 일말의 타당성은 있겠지만 문제는 ‘그 한계가 어디까지냐’다.

서울시민들은 서울시향의 ‘예술적 분위기’를 어디까지(얼마까지) 용인해줄 수 있을까. 박현정의 막말에 지나치게 몰입한 서울시민들은 결국 이 계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잃어버렸다.

‘박원순 라인’으로 오판 … 논의 타이밍을 놓쳐

마지막으로 이 사안에 대한 일부 여론의 실망스러운 대응에 대해 지적하고 글을 맺겠다. 처음 박현정 논란이 불거졌을 때, 박원순 서울시장에 비판적인 이들이 ‘박현정=박원순 라인’이라는 기계적인 공식에 입각해 무분별한 박현정 때리기에 동참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이 싫으니까 박현정도 싫다는 식이었다.

박현정은 취임 전까지만 해도 정명훈과도 박원순과도 접점이 없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지금도 박현정 前대표는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음악성에 걸맞은 도덕성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정한 판단자로서의 균형 있는 리더십이 아쉽다”고 말하고 있다(여성신문 인터뷰). 둘 모두에게 ‘팽’ 당했다고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막말이라는 원죄는 그녀의 모든 행적과 의도를 부정할 만큼 큰 것이었을까. 길 가다 넘어져도 박근혜 책임이라 우기는 게 한국 좌파들의 고질병이라면, 우파 또한 박원순 시장에 대해 비슷한 함정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박현정 이후 서울시향 대표 자리는 다시 공석이 됐다. 적임자를 찾기 위한 지루한 여정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박현정을 경악하게 했던 서울시향 사무실의 문서 박스들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 9년간의 공연 곡목을 정리한 리스트는 지금쯤 나와 있을까. 감사를 받기 위해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서류상 데이터에는 이제 오류가 없을까. 무엇보다 세금 집행의 효율성은 제고될 수 있을까.

일련의 논란은 ‘숭고한 예술’과 ‘고단한 현실’의 경계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박현정은 서울시향에게 무엇이었을까. 또 서울시향은 박현정에게 무엇이었을까. 트러블메이커는 갔지만 현실의 문제들은 그대로 남았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 본 칼럼은 굿소사이어티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