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줄· 등 수두룩…명작이더라도 연령·대상 고려해야

   
▲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
청소년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안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학교폭력에 의하거나 왕따를 당해 자살하는 청소년의 수가 꾸준히 증가했고 교육계는 이를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학교폭력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예방 대책은 학생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실을 기록하여 입시에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전교조를 비롯한 좌파들은 가해 학생 인권을 부르짖으며 반대하기도 했지만 학교폭력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정책의 효과는 매우 컸다. 학교 폭력은 크게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자살하는 학생이 줄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 그 원인을 알고 제대로 대책을 세우면 청소년 자살을 줄일 수 있다. 그것이 곧 실효성 있는 교육이고 정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예처럼 청소년들의 성적비관 자살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일차적이며 직접적인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학교폭력에 의한 자살과 성적비관 자살은 그 원인과 진단만큼이나 대책이 다를 것임으로 좀 더 심리학적이고 다각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할지 모른다. 예방 대책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세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성적 비관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 그 원인인 성적 경쟁을 없애자며 시험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이는 원인 파악을 제대로 못한 것이며 따라서 실효성이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쩌면 그러한 진단과 논의가 결과적으로 더 큰 문제를 안고 청소년에게 다가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즉 성적경쟁이 자살을 부르니 경쟁은 당연히 나쁘고 시험도 나쁘니 아예 시험을 없애버리자는 주장은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는 동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시험은 곧 학교폭력이라는 암시를 받는 셈이고 그러한 폭력에 의한 자살은 면죄부를 받는 당연한 행위이며 기성세대에 대한 항의일 수 있다. 학생들에게 경쟁에 의한 시험이 학교폭력이나 왕따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어쩌면 자살을 선택하게 하는 한 원인일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죽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적비관 자살이란 위의 예처럼 직접적인 원인뿐만 아닌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원인을 추적하고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죽음이란 것이 즉흥적으로 선택해서 실행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깊이 문제에 천착한다면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생명 경시현상의 한 표면이다. 물론 학교폭력이나 왕따 또한 생명의 경외와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역사교과서에는 성공한 기업가보다는 분신자살을 선택한 전태일을 강조하고, 사회교과서는 준법정신보다는 시민불복종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방치하고 방관하는 현재의 교육정책으로서는 청소년 자살을 막을 방법이 없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누가 국가의 미래인 청소년의 정신에 삶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경외 대신 절망과 암울과 비관을 심어주었는가 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가장 건강한 삶과 감성 그리고 바른 심리적 정서적 정체성을 심어줄 학교의 문학교과서는 청소년기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침으로 죽음을 조장하는 문학 작품은 마땅히 교과서에 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 최인훈의 작품 <광장>은 많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주인공이 자살을 선택한다. 또 다른 작품인 이청준 작가의 <줄>에서도 父子 예술가의 자살이 나오고, 동일 작가가 쓴 <매잡이>라는 작품에서도 실패한 장인은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식음을 전폐하고 스스로 죽는 길을 선택한 匠人, 이를 취재하는 기자도 자살을 한다는 것이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속 문학 작품의 내용이다. 황순원 작가의 <독짓는 늙은이>라는 작품 역시 등장인물이 자살한다.

학생들이 배우는 문학 교과서 속에는 자살에 관한 내용도 많지만 아주 끔찍한 살인 장면도 서슴없이 나온다. 죽지 못해 숨을 껄떡이는 아들을 비 오는 산비탈에 묻어 버린 비정한 아버지가 나오는 소설 <밤길>, 아버지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먼저 생각하는 딸의 모습을 현대 지식인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복덕방>이라는 소설도 청소년용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문학작품이 문학작품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인 독자뿐만 아닌 어떤 매체를 선택할 것인가도 고려되어야 한다. 불후의 명작도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없거나 소화할 수 없는 연령 혹은 전체의 맥락을 알 수 없는 교과서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불량 작품이거나 삼류소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나 포기한 학생이 성적비관으로 자살을 선택할 리 없다.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 비관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열심히 한 공부가 위와 같은 내용들이었다면, 과연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 문학교과서 속 죽음을 조장하는 작품들 때문인지 판단해야 한다.

청소년의 무의식은 맑고 깨끗하여 그들이 배우고 읽었던 학습과 내용들이 어떤 행동에 대하여 항상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비단 이러한 문제는 문학교과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교과서에는 성공한 기업가보다는 분신자살을 선택한 전태일을 강조하고, 사회교과서는 준법정신보다는 시민불복종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방치하고 방관하는 현재의 교육정책으로서는 청소년 자살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제 청소년이 보는 교과서 속에서 자살이 포함된 문학작품을 걷어 내야 한다. 문학 작품에는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다. 비극에는 자살만큼 확실한 소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 작품으로서 자살을 다루려거든 인간 삶의 소중함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자살을 가볍게 취급하는 작품이나 설령 자살을 문학의 한 면으로서 제대로 다루더라도 교과서에 상재 빈도를 높이거나 시험과 관련하여 특정 부분을 잘못 강조하게 된다면 문학교과서 본연의 교육적 목적은 차치하고라도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 및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과정평가원 같은 전문 기관은 그동안 방치해왔던 각 교과서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의 지적감수성을 고양하는 문학 교과서 속 작품들을 긴급히 점검하고 청소년들이 자살이 아닌 꿈과 희망을 갖는 문학 작품을 배우도록 즉각 조치해야 한다.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