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장사·계파세력 확대 악용…국민직선 국회의원만 뽑아야
20대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선거공천제도를 놓고 불거지는 여야의 정치적 이견에 따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선거구획정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3일 전문가를 초청하여 선거구획정에 관해 논의하고 발전적 방향에 대해 토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가 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19대 국회 혁신 연속토론회 3차, “표류하는 ‘선거구획정’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전문가들은 “선거구 개편효과의 최대화 보다는 최소한의 선거구개편이라도 확실히 해야”,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인위적 할당제도이며 이는 지역주의 해소와는 달라”, “경선 참여 국민이 책임을 지는 '책임형 국민참여경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되는 가운데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한수 건국대 명예교수, 이준한 인천대 교수의 발제에 이어 홍성걸 국민대 교수와 김인영 한림대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아래 글은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국민신뢰 얻을 수 있는 선거구 획정이어야 한다

2016년 4월 13일 치러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구 획정이 진행 중이다. ‘게임의 룰’이 선거 수개월 전까지도 결정되지 않는 현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양당 합의에 근거하여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결정하였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의 수는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로 결정을 넘겼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8월 27일 회의에서까지도 국회의원 정수를 결정하지 못했다.

정치개혁특위 공직선거법소위에서 정의당이 주장하고 있는 농·어촌 지역구 대표성 약화와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 관련 논의 때문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개혁특위에서 합의가 무망(無望)한 상황이라면 여·야 대표 간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거구 획정 논의와 관련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거대 양당과 소수당 정의당의 의견들은 난무하지만 어디에도 진정 국민의 의견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의견은 빼고 정치인들에 의한,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인들의 선거구 획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국민을 배제한 정치 게임의 룰 결정은 국민의 불신을 초래할 것이다. 선거구획정 논의의 기본방향이 잘못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역구 축소는 안된다,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 권력별 비례대표가 필요하다, 오픈프라이머리를 시행하자는 정당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여러 제안과 논의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어떤 방안이든지 선거공학(political engineering)적 계산에 따른 정당 이해득실은 분명하지만 어떤 방안이 더 민주적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고 학술적 합의도 없다. 하버드의 피파 노리스(Pippa Norris)는 『선거공학: 투표 규칙과 정치적 행위』에서 “단일 최선의 선거시스템은 없다”(There is no single best electoral system.)고 주장한 바 있다. 대립관계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 주창자(adversarial and consensual democratic theorists)들은 해결할 수 없는 가치의 갈등(irresolvable value conflicts)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1)

   
▲ 이병석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국회의원 정수에 관하여 1948년 제헌국회 의원 수는 200명이었다. 1948년 당시 인구는 약 2,000만 명이었다. 2015년 인구는 약 5,150만 명으로 2.5배 늘었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훨씬 복잡해졌다. 국회의원 수가 인구수 증가에 따라 는다면 현행 300명은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이다. 하지만 국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을 ‘정치계급’을 넘어 ‘입법패권’으로 진화하여 민생은 뒷전에 두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300명의 숫자도 많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국민들이 투표한 비율만큼 정확히 의석이 배분되기 때문에 사표가 없어지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이면서 소선구제를 유지해 지역대표성도 보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선거제도”라는 독일식 비례대표든지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제도’라는 권력별 비례대표든지 관심이 크지 않다. 2) 선출방식 보다는 국회의원들이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정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선량이 되는 정치개혁만을 바라고 있다. 국민은 선거개혁을 통한 정치개혁을 바라는데 정치권은 비례대표 어떻게 나눠먹기에만 몰두하는 국민과 정치인들과 초점이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거구획정의 기준은 인구수, 지역주의 극복, 사표(死票) 방지 등 그 무엇이 아니라 국민의 의견이 중심이 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 관계자분들께 껄끄럽게 들리시겠지만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본인은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원칙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현행 국회의원 수보다 의원 수를 줄이라는 것이다. 둘째 원칙은 비례대표의 존재의 이유 또는 비례대표의 필요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첫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치권은 국민을 위한 선거구획정이 아니라 정당의 이익을 위한 선거구 획정을 아직도 논의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거대 여당 새누리당과 거대 야당 새정치연합이 300명으로 대충 흥정을 끝낸 것에 대하여 소수당 정의당이 반발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결국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정당들끼리 흥정으로 선거구획정을 마무리 하고자 하는 것이지 않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당들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강변하겠지만 국민의 의견은 -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 여론 조사로 드러난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 28∼30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느냐”고 질문에 국민 10명 가운데 6명에 가까운 57%가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또 현재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비율과 관련해서는 37%가 지역구 의원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현재 비율이 적당하다는 의견이 29%, 지역구 의원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16%였다. 4) 여러 다른 조사에서도 국회의원 정수 줄여야 한다는 국민 여론은 항상 압도적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여론조사 기관마다 약간씩 결과가 다르지만 찬성 의견이 과반을 훌쩍 넘는 경우는 많지 않는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찬성 의견이 과반을 넘고 있다.

   
▲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에 앞서 주승용 최고위원의 파란색 넥타이로 바꿔매고 있고(사진 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본회의장에서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과 이윤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전달한 '농어촌 지방 선거구 의석 유지를 위한 특단의 대책요구' 서한을 보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또 다른 중요한 여론조사는 국회에 대한 불신이다.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우리 사회 주요기관에 대한 신뢰도에서 국회는 항상 최하위이다. KBS의 2014년 조사에서 국회의 신뢰도는 10점 만점에 2.24점, 사회기여도는 2.75점으로 최하위이다. 국민들이 국회관련 가장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51%의 국민이 국회의원 특권개선을 꼽았다. 한마디로 국민은 국회의원이라는 특권층이 늘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할진대 국회는 “죄인의 심정으로” 국회의원 정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5) 아산정책연구원이 2013년 6월, 2014년 7월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하여 조사한 11개 주요기관 신뢰도 조사에서도 10점 만점에 2013년은 3.32점, 2014년은 2.85점으로 매년 최하위인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국회에 대한 불신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고 이러한 불신을 해소시키는 방안은 국민들이 원하는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이뤄내 정치개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비례대표의 존재의 이유 또는 비례대표의 필요성에 대해 이제는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을 주문한다. 현재 19대 국회의원은 300명이고 그 가운데 지역구를 대표하지 않는 비례대표는 54명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본래의 취지는 전문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을 충원하여 국회의 전문성을 높이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직능을 대표하는 이들을 선발하여 국회의 국민적 대표성을 높이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도가 본래의 효과를 냈는지는 의심이다. 본래의 효과도 내지 못했고 또 부작용이 커서 이쯤해서 비례대표 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 현재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1인 2표제에 의한 정당 투표율에 근거하여 비례로 선출된다. 하지만 유권자가 자신이 직접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만든 리스트의 인사들 가운데서 선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첫째,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며, 둘째,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므로 인지성(identifiability)과 책임성(responsibility)에서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누구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성도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자신을 뽑아준 이는 정당의 실력자이므로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당의 실력자에게 잘 보이면 되는 모순을 낳게 된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운용하지만 투표자가 선호하는 정치인을 표기함으로써 국민이 공천과 당선에 모두 직접 관여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비례대표 제도와 달리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과 인지성 그리고 책임성 모두 확보되는 비례대표 제도다.

이러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한 문제는 여·야를 넘어 많은 국회의원들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비례대표 확대에 대하여 “정치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며 “비례대표가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아 왔다”고 종합적인 평가를 했다. 새정치연합의 조경태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비례대표제는 한국 정치사에서 공천장사, 계파정치의 수단이자 도구로 활용돼 온 것이 사실이다. 공천헌금을 내고 당선된 후보들이 국회에 입성한 사례는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하며, “비례대표 의원들은 자신에게 직을 준 당 지도부와 공천권을 행사한 의원들에게 소신 있는 정치행위와 발언을 하기는 어렵다...지금의 비례대표는 지역구 출마의 발판으로 악용되고 있는 등 전문성·직능 대표성 등 비례대표 고유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고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6)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자.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이나 활동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만, 대표성 그 자체로만 본다면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국회의원이 있어야만 귀화한 외국인 신부들이 대변되고, 체육계 출신 국회의원이 있어야만 체육계가 대변되는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비례대표 전문가 등용도 그렇다. IT분야 또는 의료분야, 경제분야 등에서의 전문가를 등용한다는 것인데 행정부도 아니고 입법부의 국회의원은 입법 활동에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전문성보다는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의 판단과 현명한 결정을 기대해야 한다. 최신의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면 미국 의회처럼 청문회에 불러 전문적 의견을 들으면 된다. 굳이 국회의원이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또 NGO나 시민단체 활동가의 충원으로 대표성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지만, 시민사회 단체의 경력이 국회의원이 되는 프리미엄 코스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나아가 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한 바와 같이 전문가와 직능 대표 국회의원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2분의 1이 되어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선관위가 추천한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분배 방식은 300명 국회의원에 맞춘 지극히 자의적인 발상으로 보인다. 또 독일식 제도라면 그대로 좋다고 수용하는 근거 없는 무비판적 조언이다.

   
▲ 정의화 국회의장이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또 새정치연합의 혁신위원회가 주장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의원수의 증원만 가져올 뿐이지 지역주의 투표를 극복하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도리어 실제로는 지역주의를 인정하고 고착화시키며 지역주의 투표를 강화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왜냐하면 선거 승리와 집권을 위해 지역에 근거한 자신의 당에 확실한 100% 몰표 지지를 호소할 때 또 그것이 현실화 될 때 지역주의 투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학계에서도 이미 비례대표 투표가 르완다나 보스니아, 이스라엘과 같이 인종적, 종교적 갈등이 뿌리 깊은 분열된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을 포괄하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러한 분열(cleavage)을 약화시키기보다 강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 왔다. 7) 과거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제도의 도입이 결코 이론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권력별 비례대표제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진정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제안이다.

그리고 현재 선거제도에서의 사표(死票, wasted vote)를 없앤다는 주장은 국민의 의사 표시 방식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8) 예를 들어 지역주민이 상대방 후보에게 49% 지지 투표를 했다면 51%의 지지로 당선된 의원으로 하여금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49% 유권자의 뜻을 겸허히 새기고 그들의 마음에 드는 정책을 개발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투표 결과이다. 즉, 당선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쓸모없는 사표가 발생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100% 지지에 의한 당선만이 좋은 선거이고 사표를 만들지 않은 좋은 민주주의라는 말인가? 백번 양보하여 100% 모두 표가 쓰이는 것이 중요할 지라도 그것이 정당 추천의 권역별 비례대표일 이유는 없다. 지금의 권역별 비례대표라면 지역에서 권력자에 줄을 잘 댄 인물이 비례대표로 리스트에 올려 질 터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당의 권력자에 의해 선발되는 정당 권력자를 위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일 뿐이다.

현행 정당 추천에 의한 전국구 비례대표든 권역별 비례대표든 비례대표의 핵심적 문제점은 비례대표 의원들이 보이고 있는 이념적 편향성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비례대표 초선들이 특히 좌파 이념으로 편향이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반(反)시장(市場) 지향적 투표성향을 보인다는 것은 이미 자유경제원의 연구에 의하여 밝혀진 바 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국민들로 하여금 비례대표는 이석기 전의원으로 끝내야 한다는 의견을 형성하게 했고, 나아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 방식의 존재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에 의하지 않은 비례대표를 늘리기보다는 그 인원으로 상원(上院)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현재의 단원제만으로도 국회의 입법독재 현상이 지나치게 심하고 입법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상원은 지역비례로 뽑아 지역을 대표하게 하고, 하원은 인구비례로 뽑아 국가적 사안에 보다 더 집중하게 하자는 방안이다. 상원이 지역을 대표하게 되므로 권역별 비례대표가 목적하는 지역주의 극복에도 적합하다.

독일이나 미국처럼 순수이 지역의 시각에서 법안을 심사하게 하며 상원과 하원에서 두 번 법안을 심사하여 법안의 완성도를 높이고 포퓰리즘 입법을 저지하는 효과도 예상할 수 있다. 하원(下院)이 국가적 시각에서 지역 합리성보다는 국가 차원의 정책합리성에 근거하여 법안과 정책을 다룬다면 충실한 법안 심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선진국이든 경제선진국이든 선진국 가운데 양원제가 아닌 나라는 없다. 3억 1천 600만 명의 미국 인구로 상원이 100명이니, 5천 100만 명의 우리나라 인구 정도면 54명이나 그 이하로도 충분하다. 민주주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양원제가 필요하지만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므로 추후 공론화해도 되겠다.

새누리당이 주장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국민경선’이라고 용어를 바꿈)는 유권자가 공직에 출마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권리인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주의 원칙에 가깝다. 특히 국민이 자유로이 공직 출마자를 선택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따라서 정당이 가진 공천권을 국민에 돌려준다는 오픈프라이머리를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관련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빅딜할 사안은 아니다. 또 오픈프라이머리에 국민적 관심이 적으면 조직이 좌우하는 선거가 될 것이고, 조직선거는 결국 ‘돈 선거’가 되는 단점이 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돈 예비 경선’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세련된 관리가 필요한 제도이다. 따라서 이준한 교수가 제안하는 책임형 국민참여경선에 동의하지만, 오픈프라이머리는 실시에 필요한 기간이 적어도 1년 이상이 필요한 만큼 시기적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아울러 정당이 자신들이 공천하는 인사를 뽑는 정당의 제도이므로 채택에서 각 정당의 의견과 사정에 따라 결정할 것이지 타 당에 강요할 사안은 아니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비례대표제를 선택하고 있는 나라는 6개 국가 밖에 되지 않는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는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가 직능대표를 뽑지 않았다고 뒤쳐진 것도 아니다. 나아가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 보다는 의원내각제와 상관성을 갖는 제도이다. 대통령제 하에서의 비례대표제 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여·야가 300명 국회의원 정수 동결에 합의했지만 진정 국민의 의사와 국회에 대한 신뢰 회복을 염두에 둔 선거구 획정 방안은 간단하다. 현행 비례대표는 국민의 직접선택에 의한 선출이 아니며, 공천 장사에 이용되거나 계파 세력 확대에 사용되는 등 원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진행되었으므로 폐지하고 국민 직선에 의한 지역구 국회의원만 뽑는 것이 올바르다.

현행 54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모두 없애고 국회의원 정수를 250명으로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내놓을 만한 변변한 성과 하나 없는 제19대 국회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업적이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중요시 하는 진정한 정치개혁이 될 것이다. 정치권은 선거구 획정의 정당 이익 챙기기와 정치개혁 후퇴의 과정을 국민은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9)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1) Pippa Norris, Electoral Engineering: Voting Rules and Political Behavio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65.

2) 손호철, “독일식이 해답이다,” 한국일보, 2005년 4월 19일.

3) 이하 부분은 김인영, “자유 선택을 가로막는 비례대표 폐지로 국회의원 정수 줄여야,”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자유경제 에세이, 2015년 8월 21일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4) 심원섭, “국회의원 정수 조정 여론조사… 축소 57% > 증원 7%,” CNB뉴스, 2015년 7월 31일. http://m.cnbnews.com/m/m_article.html?no=300761 (접속일: 2015년 8월 30일).

5) “국민들이 바라본 국회, ‘신뢰도·기여도’ 점수는?”, KBS 뉴스, 2014년 10월 6일. “국회는 죄인의 심정으로”라는 발언은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의 발언임.

6) 한기호, “새민련 ‘비례 증원, 지역구 축소’라지만 여론과 ‘먼 거리’,” 미디어 펜, 2015년 8월 18일.

7) Pippa Norris, Electoral Engineering: Voting Rules and Political Behavio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65. George Tsebelis, “Elite interaction and constitution building in consociational democracies,” Journal of Theoretical Politics 2(1), 1990, pp.5-29.

8) wasted vote는 ‘사표(死票)’라는 자극적인 번역보다는 ‘당선에 사용되지 않은 표’라는 뜻의 ‘불용표(不用票)’로 번역하는 것도 좋겠다.

9)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의원 수가 적으므로 국회의원 수가 400명은 되어야 한다는 모 야당의원의 발언에 대하여 국민은 “제 정신인가”라는 반응을 인터넷 상에서 보였다. 대다수 국민은 부패하지도 않고, 권력을 남용하지도 않을, 국가를 위해정치를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적은 수의 국회의원을 원하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