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케팅 전략 세워 골동품·고미술 시장 명소로 키워야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답십리는 왕십리를 지나서 한참 더 벗어나서야 가 닿을 수 있다. ‘내 고향 정주 곽산도 차가고 배가는 곳이라오’라 했던 소월 시처럼 거기 답십리도 버스 서고 지하철도 다니는 제법 요충지이지만 우리 사회, 우리 미디어와 문화콘텐츠에선 오랜 무관심 변두리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 발걸음 끊긴 채 날로 좀 쓸고 있는 빈 집만 같다.

그렇게 쇠잔했던 답십리 고미술상가가 서울시와 동대문구 뒷받침으로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았다. 통제도 없는 주차장에 내려서 요모조모 둘러보니 첫인상이 딱 세운상가 이미지였다. 80년대까지 전자제품이나 비디오테이프 등속 어둠의 자식들 총 본산이었던 종로 세운상가 판박이로 읽히는 건물구조, 상가들 배치, 진열대가 눈에 익으면서도 매우 낯설게 다가왔다. 지금은 2015년인데 아직까지 미동도 없이 변치 않은 80년대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적잖이 퀴퀴했다.

그 시절 세운상가처럼 답십리 고미술상가도 삼희아파트 2, 3, 5, 6동의 1층과 송화, 우송빌딩 1층에 벌집처럼 모여 있다. 80년대가 물려준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 층에 여느 꽃집처럼, 잡화점처럼 길게 각 잡고 나열해 있는 공업도시 산업단지 풍경이다. 이런 비문화 반예술적 구조는 30여 년 전 83년께 서울 도심권에서 문화난민으로 밀려났던 아픈 이야기에 기인한다. 인사동, 아현동, 광희동, 이태원 등지에서 다채로운 골동품 시장을 지켜왔던 상인들이 당시 급등한 임대료에 못 버티고 외곽이나 다름없었던 답십리 아파트 상가에 모였던 탓이다.

   
▲ 5호선 답십리역 인근에 위치한 고미술상가는 마치 소규모 '전통박물관'이라 할 만 점포가 140여 곳이 들어서 있다. 인사동 일대가 고가품의 고미술품을 주로 파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오래된 가구와 생활 공예품을 주로 팔고 있으며 골동품 값은 5000원에서 5만원까지 천차만별로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다. /사진=연합뉴스
골동품 시장 상인들이 답십리 새 둥지에 깃들어 자연발생적 문화 클러스터를 조성한 것은 다행이었으나 사대문에서도 한참 벗어난 그곳 답십리에서 손님을 끌고 골동품 고미술을 마케팅활동을 해나가기에는 너무 버거웠다고 한다. “80년대 초쯤 이른바 최상급 문화재들은 죄다 공급이 끊겼어요. 이후 10년 정도 만에 그 다음 상급 물품들도 시장에서 거의 다 소진되었지요. 현재는 하급 범주 안에서 가끔 반반한 물품들을 찾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더 이상 매력적인 고미술 문화재나 골동품들이 시장에 유입되지 않고 있다는 답십리 터줏대감의 설명이다. 국보급, 보물급부터 그 다음 진품명품들을 우선 대기업 재단이나 거물급 수집가들이 이미 70~80년대 싹쓸이해버린 탓이라는 진단도 있다. 엄청나게 많은 우리 문화재와 골동품이 일본, 미국 등 해외로 반출된 흑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지금 답십리 고미술 상가 절반 이상을 중국산, 인도산, 동남아산 골동품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산으로 명맥을 지켜온 2동 상가마저도 북한산 한복이며 자수 물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관광객 구미에 맞춘 국적불명 기념품들로 도배한 인사동 거리 현기증이 자꾸 겹치고 만다.

혼란스럽다. 불현듯 영국이 뽐내는 이름난 골동품 시장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이 떠오른다. 어떤 이는 굳이 일부러 영국까지 가서 토요일 새벽 5시부터 노팅힐 포토벨로를 누비며 골동품 사냥에 탐닉한다. 비용으로 치면 2만원, 10파운드짜리 망원경 하나 사러 200~300만원 여행 경비를 선뜻 내는 셈이다. 물론 여행 자체 투자지만 이렇게 밖으로 새는 내부 안방 수요를 답십리가 대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결론이다.

다행히도 서울시와 동대문구가 나서 답십리 고미술문화관을 올 봄 개장했다. 문화의 달 가을을 맞아서는 특별전시회와 경매 행사를 하며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주 조금씩 답십리 답사기를 싣는 신문, 블로그, SNS 들도 늘고 있다.

머잖아 제대로 불붙인다면 서울 답십리도 노팅힐 향내가 나는 골동품 고미술 시장 명소로 키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답십리 문지방이 닳도록 뻔질나게 다니며 발품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문화융성 같은 국책 사업도 이런 낮고 낡은 현장에서부터 북을 두드려야 한다. 한옥 한 칸도 없는 답십리 주상복합아파트 풍경으로는 고가구 한 점 운치를 보일 길 없으니 정부가 나서 도와야 옳다.

   
▲ 서울 답십리 고미술회 설립기념 전시회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인터넷 모바일 경매시장도 운영하게끔 150여 상가 상인들도 몸을 던져야 한다. 컴퓨팅과 문화마케팅 기법들은 인근 대학이나 기업들과 손잡길 권한다. ‘추사 김정희, 흥선 대원군 작품 등 25만점 있소’라고 말만 하지 말고 일목요연하게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또 청계천, 성북천을 따라 황학동 풍물시장, 간송미술관, 동대문 DDP 까지 동선을 공유하는 진짜배기 문화창조융합벨트, 광역 클러스터도 꾸며나가면 좋겠다. 셔틀버스나, 자전거, 마차들도 들여와 장터를 북적이게 해야 하겠다.

런던 노팅힐 골동품 시장처럼 사람들이 기억을 되살리고 내 손에 로망을 거머쥐고자 하는 욕구가 끌어 오르는 난장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답십리 고미술상가도 문화마케팅 전략을 세워 웅크렸던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면 도깨비감투 같이 신비로운 느낌으로 솟구칠 수 있다.

답십리 가보자. 실컷 구경하고 쇼핑하는 탐색 기간이 지나면 이윽고 내 물건 내놓고 진귀한 가치 매겨 유통도 시켜보는 문화공급, 문화산업 차원으로 확대하는 마술쇼를 그려 본다.
그래봤자 한 1,000년 역사를 배경으로 삼는 런던 노팅힐하고 켜켜이 5,000년 역사를 품은 서울 답십리를 맞바꿀 순 없지 않은가?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