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2015년 11월 2일은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악랄하게 연쇄 살인한 '지존파' 일당 6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를 '빅뱅의 시대'라 부른다.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고 정치, 사회, 문화 등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뻗어나오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우리는 90년대가 머금고 있었던 빅뱅의 그림자가 진화된 모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90년대의 활발한 꿈틀거림 속에는 '꿈'이 있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주저앉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이어졌지만, 그렇다 해도 '코리안 드림'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욕망을 절제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세상의 승리자가 되어 행복을 거머쥘 수 있다는 꿈.

지존파의 범행은 바로 그 코리안 드림을 정면으로 비웃으며 대한민국 사회를 유린하고 모독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것이었다. 

1993년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에서 두목 김기환, 학교 후배 강동은, 교도소 동기 문상록 등을 멤버로 결성된 이들의 범행목적은 '부유층에 대한 증오'였다. 행동강령은 4개였다. (1)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2) 각자 10억씩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3) 배반자는 처형한다. (4)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빈부격차, 부자들에 대한 증오, 무전유죄 유전무죄 등을 언급하면서 스스로의 야만성을 감추려 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범행은 그저 잔인하고 무자비할 뿐이었다. 충남 논산에서 윤간 후 살해된 첫 피해자는 23세 여공으로 부유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물이었다. 이 살인에 그들은 '연습'이라는 명분을 부여했다.

두 번째 피해자는 지존파 조직을 이탈한 송봉은이었고, 세 번째 피해자는 두목 김기환의 고향선배의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이 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김기환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지만, 이후로도 지존파의 범행은 계속 이어져 잔혹한 살인과 사체소각 및 암매장, 인육을 먹는 충격적인 행위들이 계속 됐다.

   
▲ 그들은 인간의 심층심리에 침투해 정신병리학적인 상처를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지존파는 폭력조직이기 이전에 하나의 '테러조직'이었다.

총 5명을 살해한 지존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연쇄살인한 범인조직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존파라는 이름이 무거운 울림을 얻게 된 것은 그들이 저지른 범행이 단순한 살인을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사건을 접한 한국인들의 심층심리에 침투해 정신병리학적인 상처를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지존파는 폭력조직이기 이전에 하나의 '테러조직'이었다.

서울서초경찰서가 지존파 일당 6명을 검거한 것은 1994년 9월 21일의 일이었다. 1994년 10월 31일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지존파 일당 김기환,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문상록, 백병옥 6명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이 선고는 3심까지 이어져 결국 1995년 11월 2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마지막까지 두목 김기환은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냐"라고 말했다.

이후로도 한국인들은 지존파와 경쟁이라도 하듯 더 잔혹한 행위를 일삼는 연쇄살인범들을 목격하고 있다. 지존파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그저 지존파가 새로운 범죄 패러다임의 앞쪽에 서 있었을 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1995년 형장에서 꺾인 '악의 꽃'들이 21세기에까지 악취를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2015년 11월 2일은 그런 날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