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82)- “치매 막으려면 퍼터를 놓지 마라”

한 지인이 전해준 얘기다.
30년 이상 골프를 사랑해온 그는 70고개를 넘어서도 여전히 연습장을 다니고 한 달에 한두 번은 필드로 나간다. 지병이 있는데다 나이도 있어 옛날처럼 화려한 라운드를 하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80대에도 골프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분이다.

이 분이 골프 연습장 지인들과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전날 다녀온 동창회 모임에서 들은 얘기라며 털어놓았다.
친구 중에 이름 있는 병원의 신경과 의사가 있는데 동석한 동창들이 건강문제를 화제로 삼아 열을 올리다 그에게 명을 다할 때까지 아프지 않고 치매에도 안 걸리는 방법이 없는가 물었다.
의사 동창은 가당찮은 질문에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동창들의 눈이 그에게로 쏠리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70년 가까이 몸을 써먹었는데 탈이 안 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느냐. 어딘가 쑤시고 결리고 아픈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고 주의해도 유전적 요인, 식습관 등으로 질병이나 고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신경과 의사로서 친구들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치매 예방에 골프만한 운동이 없다는 사실이다.”

동창들이 의아스런 눈빛을 보내자 의사 동창은 골프가 왜 치매 예방에 좋은지 이유와 근거를 대며 장황하게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이 최후 진술을 했다.
“두 다리로 설 수만 있다면 집에서라도 퍼팅 하는 것을 절대 잊지 마라.”

지인은 의사 동창의 충고에 전폭적인 공감을 표시하며 동석한 연습장 후배들에게 걸을 수만 있다면 골프채를 놓지 말 것을 진지하게 당부했다.

   
▲ 골프는 머리를 집중적으로 쓰고 난 뒤 휴식을 취하는 스포츠로 두뇌 건강을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지팡이 짚을 힘만 있으면 골프를 즐겨라’는 서양 격언은 골프의 건강 유지와 치매 예방 효과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삽화=방민준
나로 말하면 지인의 얘기를 듣기 전에 이미 오래 전부터 골프만큼 많은 것을 분석적이고도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운동도 드물다는 믿음을 가져 왔다.
눈으로 보기엔 한가롭게 초원을 거닐며 골프채를 휘둘러 작은 볼을 날려 보내는 것이 운동이 될까 싶겠지만 사실 골프만큼 감안하고 참고하고 명심하고 집중해야 할 사항이 많은 운동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티샷을 한 번 날릴 때만 해도 그립은 제대로 잡았는지, 스탠스는 올바르게 섰는지, 티의 높이는 적당한지, 바람은 어느 쪽으로 얼마나 세게 부는지, 내 몸의 컨디션은 어떤지 등을 감안해야 한다. 최소한 다섯 개 정도의 볼트와 너트가 이가 어긋나지 않게 맞물려야 정상적인 티샷을 날릴 수 있다.
아이언샷 또는 우드 샷을 날릴 때도 감안해야 할 사항은 많다.

볼이 놓여 있는 자리나 양발을 딛는 자리가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앞으로 기울었는지 뒤로 기울었는지, 볼을 날려 보내야 할 위치는 어디가 적당한지, 꼭 피해야 할 지점은 어딘지, 어떤 장애물이 숨어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감안하고 참작해야 할 사항이 즐비하다.
멀리서 핀이 꽂혀 있는 그린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파악하고 어디로 볼을 올려놓아야 다음 퍼팅에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지, 벙커를 피하려면 어디가 안전지대인지, 바람은 어느 정도 부는지, 거리가 짧거나 길 경우 어떤 낭패를 당할 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린 주변에서의 어프로치 샷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린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기울었는지, 미스 샷이 나왔을 때 벙커나 해저드로 들어갈 위험은 없는지 등 감안해야 한다.

온갖 상상력을 총 동원해야 할 곳은 바로 그린 위에서다.
볼이 놓여 있는 지점에서 홀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내리막 혹은 오르막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왼쪽으로 꺾이는지 오른쪽으로 꺾이는지, 잔디의 길이는 얼마나 자랐는지, 역결인지 순결인지, 물기는 얼마나 머금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래도 어느 하나 미심쩍으면 캐디의 도움을 얻는다. 그러고도 자신의 판단이 옳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동반자의 퍼팅을 유심히 관찰해 반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라운드 하는 사람은 주머니에 다섯 개 이상의 볼트와 너트가 들어있는 셈이다. 샷을 할 때마다 이 볼트와 너트를 잘 맞춰야 원하는 샷을 날릴 수 있고 하나라도 빠뜨리거나 잘못 끼우며 미스 샷을 내고 만다.

물론 라운드 내내 머리를 팽팽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라운드에 걸리는 시간을 대략 4시간으로 잡을 경우 하나의 샷을 날릴 때 상황을 판단하고 준비하고 스윙을 하는 데는 길게 잡아도 1분 미만이다. 90대 타수를 치는 골퍼라면 90분이 소요된다는 얘긴데 이 시간이 머리를 집중적으로 써야 하는 시간이다. 나머지 2시간30분은 그야말로 여백이다. 한담을 나누기도 하고 주변의 수목과 야생화를 감상하고 사진도 찍으며 순수한 힐링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머리를 집중적으로 쓰고 난 뒤 휴식을 취하는 이런 반복적인 두뇌운동 사이클이야말로 두뇌의 건강을 유지하는 최상이 방법이 아니겠는가.
고수들은 ‘아무 생각 없이 클럽을 휘둘러라’고 충고하지만 골프란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운동이다. 감안하고 참작해야 할 것을 모두 숙지한 뒤에 무심하게 클럽을 휘두르라는 뜻이지 아무 생각 없이 클럽을 휘두르라는 뜻이 아니다.

나이 들어 이만큼 많은 두뇌 운동을 요구하는 스포츠가 어디 있겠는가.
‘지팡이 짚을 힘만 있으면 골프를 즐겨라’는 서양 격언은 골프의 건강 유지와 치매 예방 효과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