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민중사관에 오싹…계급·갈등론 내재화된 교육 현실 우려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 뿐?

“제가 지금 밀어부치고 있는 키워드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입니다. 이 동영상을 보고 계실 분들이 강력한 힘을 가진 부르조아 계급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입니다. 하지만 사회 구조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 뿐입니다.”

국정화 반대 거리 시위에 나온 김포 통진고등학교 여학생 전 모양의 말이다. 처음에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필자가 1999년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함께 했던 연극동아리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부르조아’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를 근 18년 만에 다시 접했다.

전 모양은 본인 SNS를 통해 장문의 사과문을 올렸다. 전 모양은 “적절하지 못한 단어로 불편하셨을 같은 고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그 외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린다”면서 “온라인 사회문화 강의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 다음 말이다. 전 모양은 “(배운 바에 따르면) 갈등론의 출발점인 사회에는 대립하는 두 계급이 존재한다. 그래서 (국정교과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각 계급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과할 필요 없어…이제야 알았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우선 프롤레타리아 혁명, 부르조아 계급을 말했던 전 모양 본인의 언사는 사과할 게재가 아니다. 7년 전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 광우병 시위를 벌였던 당시 중고등학생처럼 먼 훗날 시간이 지난 뒤 부끄러워할 정도의 약과다. 자신의 치기가 무지몽매한지를 알면 고치면 된다. 전 모양은 젊은 시절 민중민주주의, 일명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지 못해 나이가 40대 50대가 되어서도 강남좌파식 부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386세대 어른들 보다 백배 낫다.

지금은 공산주의 전체주의의 광풍이 휩쓸었던 100년 전 20세기 초입도 아니고,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귀결된 1990년대도 아니다. 1987년 체제 이후 28년이 지난 2015년의 대한민국이다. 필자도 고교 시절 전 모양이 배웠던 사회문화 과목을 배웠지만 프롤레타리아 부르조아라는 단어는 내신시험에서 외웠는지 조차 가물가물하다.

   
▲ 계급론에 빠진 한 여고생의 존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는 크다.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인해 시작된 역사전쟁이 전체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상전 뿐 아니라 집단 대 개인, 갈등 대 리더십, 노예 대 극복 등이라는 미시적 대립을 드러내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전 모양이 자신의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 부르조아 단어 사용에 대한 책임을 ‘온라인 사회문화 강의’로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온라인 사회문화 강의 때문’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개인의 학습태도가 삐딱하다는 지적으로 그치겠지만, 만약 전 모양에게 계급론-갈등론을 내재화시킨 교사들이 뒤에 있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전 모양의 일갈로 온 국민이 목도하게 되었다. 작금의 국사학계 실태, 민중사관이 미친 여파를 말이다. 민중사관은 계급사관이요, 사회체제가 진보의 끝에 다다르면 자본주의는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시각으로 가득 찬 망령사관이다. 여기에 자유와 독립, 개인은 전무하다. 오로지 집단과 계급, 갈등과 노예만이 있을 뿐이다.

최근 유행어가 된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등은 한국을 부끄럽게 보고 계급이라는 틀로 역사와 인간을 규정짓는 자학 용어다. 전 모양이 오해한 계급론-갈등론의 연장선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부모를 따라 노예로 태어나는 조선시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사농공상 등 반상의 차별이 있고 온 백성의 40%가 노예나 다름없던 노비로 평생 살아간 조선이 아니다.

1948년 건국 이래로 산업화 민주화를 통해 세계에 손꼽히는 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이다. 6.25라는 참화를 겪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던 나라였지만 수백만 개인과 가장이 스스로와 가족을 위해 ‘잘 살아보자’라는 일념 하나로 가꾸어온 자랑스런 나라다. 삼성 현대 등 전 세계에 내노라 하는 기업가정신이 꽃피워진 나라며 중국을 포함한 제 3세계 개도국의 표본 사례가 된 나라다. 우남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조치’라는 현상을 계급 틀, 사회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한 여고생의 존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는 크다.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인해 시작된 역사전쟁이 전체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상전 뿐 아니라 집단 대 개인, 갈등 대 리더십, 노예 대 극복 등이라는 미시적 대립을 드러내고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1980년대 주사파 386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별을 고할 때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전 모양은 젊은 시절 민중민주주의, 일명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지 못해 나이가 40대 50대가 되어서도 강남좌파식 부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386세대 어른들 보다 백배 낫다./사진=미디어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