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한기호 기자]여야가 선거구 획정 합의에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국회의원 정수 확대로 절충점을 찾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 지도부는 내년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을 하루 앞둔 12일 협상 사흘째를 맞았지만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야의 논의 과정에서 현 300석인 의원 정수를 1~7석 늘리는 방안이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 정수 증원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축소 주장을 내세워 첨예하게 맞서왔다. 하지만 접점을 찾기 어렵자 의원 정수를 한자릿 수 내에서 늘리는 방안까지 논의 대상에 오른 상황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몇 개의 경우를 갖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의원정수 확대 언급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누가 먼저 얘기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우의 수를 갖고 이야기한 것”이라면서 “마치 새누리당이 먼저 이야기한 것처럼 말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선을 그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이날 정오쯤 여야 간 회동 직후 ‘이날 회동에서도 의원 정수 확대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논의도 지금 하고 있다”며 부정하지 않았다.

이날 정오쯤 여야 양당 대표,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는 국회 의원식당에서 이른바 ‘4+4’ 회동을 갖고 선거구 획정에 관한 주요 쟁점을 놓고 1시간30분 정도 협상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들은 오후 본회의가 끝나고 다시 만나 협상을 재개했지만 양측의 의견 차이가 상당해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 지도부는 내년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을 하루 앞둔 12일 협상 사흘째를 맞았지만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300석인 의원 정수를 1~7석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사진=연합뉴스

여야가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을 논의하는 이유는 헌법재판소의 ‘인구 편차 2대1’ 결정을 따르기 위해서다. 현재 ‘3대1’ 편차가 불합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인구 수 격차가 큰 농어촌 지역을 통폐합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현 의원석인 300석을 유지하면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선 인구 하한선에 미달하는 농어촌 지역구끼리 묶는 방안이 있다. 이럴 경우 농어촌 지역구 26곳이 통폐합 대상이다. 하지만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이날 국회 양당 대표실을 점거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당은 전체 지역구 수 증가가 불가피한 만큼 농어촌 지역구 감소를 최소화면서 비례대표 의석 수를 줄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비례대표 축소에 절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회에서는 연일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농어촌 지방 선거구를 꼭 현재 상태로 유지시켜달라”며 농성을 이어왔고, 급기야 전날부터는 양당 대표실을 점거하고 이틀째 농성 중인 상황이다.

농어촌 지역구를 통폐합하지 않으면서 헌재의 ‘인구 편차 축소’ 결정을 따르려면 지역 선거구가 확대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의원 정수도 확대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여당은 비례대표 수를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야당이 강력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번번이 합의가 무산되어온 것이다.

즉, 현행대로 국회의원 정수 300석을 유지하면서 헌재 결정에 따르려면 농어촌 지역구 감소를 하거나 또는 비례대표 감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야당이 비례대표 수 축소 반대를 고집하며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헌재의 결정대로 하려면 지역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의원 정수를 고정하고 비례대표 수를 줄이자는 입장인 반면, 새정치연합은 의원 정수를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비례대표 수는 축소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비례대표제는 의원들 사이에서도 폐지 주장이 나올 만큼 당초 전문성을 살리자는 취지가 무색해진 지 오래이다. 오히려 비례대표제가 계파정치의 온상으로 전락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 비주류인 조경태 의원은 이날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은 정치권을 신뢰하지 않아 의원 정수를 줄이라고 하는데 정당은 나눠먹기식 논의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진정한 정치개혁은 의원 정수를 줄이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비례대표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그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조 의원이 지적한 대로 야당이 비례대표제를 고수하는 목적은 계파정치에 필요한 의석 수 확보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번에도 문재인 대표의 '독주계파 함몰' 증세를 확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비례대표 축소를 막기 위해 야당이 주장해오던 의원 정수 확대 방안을 여당이 수용할 가능성이 전해지면서 자칫 김무성 대표의 협상력도 도마 위에 오를 상황이다. 만약 국회가 선거구 획정안 처리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결국 의원 정수 확대라는 결과를 내놓는다면 국회는 스스로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것을 자인하는 것으로 ‘싸늘한 여론’이라는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