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서 온 남자, 이성에서 온 여자 #07
   
▲ 이원우 기자

감성남 이원우
세상은 당신을 미워한다
그래서 당신은 자라난다

학창시절 도덕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성선설(性善說)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간의 세계를 무지갯빛으로 바라보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은 이론이다. 최근 흥행한 영화 ‘마션’의 원작소설 또한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는 내용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된다.

과연 그럴까? 천만에. 3D 안경을 벗고 나면 ‘마션’의 성선설은 영화와 함께 끝나 있다. 세상은 오늘도 마음이 옹졸한 소인배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자아내는 삶의 향연이 선의로 가득할 리 만무하다. 우리가 옷깃을 스치며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의 상당수는 당신이 도태되길 고대하고 있다. 슬프지만 진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분노와 미움은 인간의 삶에 어마어마한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당신이 뭔가를 창조하고 표현하는 직업을 꿈꾸고 있다면, 분노와 미움이야말로 최적의 동력임을 나는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열 받았을 때만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경우는 단언컨대 ‘없다.’

넓게 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을 창조하고 있다. 결국 분노와 미움은 그것을 잘 컨트롤하기만 한다면 인생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필수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진리를 깨닫게 된 이후로 주변의 인간쓰레기 분노 유발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열 받았을 때 가장 인간답다. 미움 받지 않는 삶이란 ‘죽음’의 다른 표현이다.

태어나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누군가에게 잔뜩 미움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다. 이 말은 일부러 미움을 받기 위해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 행복해질 이유를 찾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 인내하고 노력하며,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단을 길러 재능을 발휘한다면 어느 틈엔가 당신은 누군가(들)에게 맹렬한 미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인간은 자신보다 멋지게 살아가는 인간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 혼자 견디지 못하면 상관이 없는데 그런 인간들은 반드시 연합전선을 이뤄 패거리를 결성한다. 그렇게 자신의 패배감을 옹졸한 열등감의 하모니로 승화시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들은 뒤에서 당신을 험담하고 당신에 대한 헛소문을 만들어 낼 것이며, 억울하면 너도 이 흙탕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하자고 유혹할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왜긴 왜야 당연히 직접 겪어봤기 때문이지.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21세기를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이 적(敵)을 만들지 않기란 수영장에서 물을 묻히지 않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 일러스트/유한을 서울여대 시각디자인3

요즘 서점가에서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이 그렇게 잘 팔린다고 한다. 출간 직후부터 1년 가까운 시간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굳이 미움을 받기 위한 용기(勇氣)까지 기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자신의 삶을 강단 있게 살아갈 마음의 용기(容器)를 기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세상의 미움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자연스러운 통과의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말했다. 바람은 촛불 하나는 끄지만 모닥불은 크게 만든다고. 마음의 용기, 미움 받을 용기를 충분히 크게 만든다면 세상의 공격은 그저 성장의 동력이 되어줄 뿐이다. 오늘 하루도 잔뜩 미움 받는 삶을 사시기를!

   
▲ 정소담 칼럼니스트

이성녀 정소담
열나게 복근 운동 했는데
다음날 배가 안땡기면 어떡하니

짙은 청록색 베레모, 새까만 벨벳 코트, 빨간 애나멜 구두. 엄마는 발레학원에 갈 때마다 나를 인형처럼 꾸몄다. 다섯 살 어린 마음에 엄마가 상처받을까 한마디도 못했지만 난 그런 게 너무 너무 싫었다.

다들 쳐다봤기 때문이다. 내가 발레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재잘재잘 떠들던 여자아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어머 얘들아 쟤 좀 봐. 수군수군. 모두 똑같은 발레복으로 얼른 갈아입으면 그제야 불편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지각이라도 한 날에는 학원 문 앞에서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튀는 인간은 격렬한 미움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다섯 살 때 온몸으로 깨우쳤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인생의 비밀’을 깨달았다. 그런 수군거림은 전부, 열등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이들의 노동요에 불과하다는 걸.

나를 미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내 삶이 아주 잘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다. ‘왜 나와 똑같지 않느냐’는 손가락질은 못난이가 잘난 이에게 보내는 동경의 춤사위다. 미움 받는 것의 의미를 알고 난 뒤로는 누구로부터도 미움 받지 않는 날이 지속될 때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되곤 한다. 음 그건 마치, 열나게 복근운동을 한 다음날 배가 땡기지 않을 때 드는 죄책감 같은 것이랄까.

이런 이유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여자 개그맨들에 대해 작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창의력으로 승부하는 개그맨이라는 직업의 본질이 무색하게도 그들의 다수가 획일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허무감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예쁘지 않은 외모를 이용해 인기를 얻은 여자 개그맨들 10명 중 9명이 언젠가는 성형수술을 한다. ‘개그맨’이기보다 ‘여자’이길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므로 타인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허나 그들이 성형수술을 받기로 한 자신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못생긴 외모 때문에 받았던 상처에 대해 언급하고 나면 그 이후론 그 사람이 뭘 해도 웃기가 힘들다. 나의 웃음이 저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건 아닐까 염려하게 되는 순간 관객과 개그맨의 관계는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웃음을 위해 사는 개그맨의 근본적인 존재목적을 망각하고 그저 ‘예쁜 무엇’이 되기 위해 자신의 색을 버리는 순간 그녀들이 ‘미움 받는 일’로부터는 자유로워질 지도 모르겠다. 무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치명적인 블랙도 강렬한 레드도 그 예쁜 핑크도 전부 호불호가 갈린다. ‘마니아’를 만들만큼 매력적인 건 반드시 안티를 동반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 ‘미움 받을 용기’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사실 제목부터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미움 받는 일의 가치를 아는 이에게 ‘미움 받을 용기’란 너무나 어색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 멋진 일에 왜 용기가 필요한가. 우리가 알아야할 건 ‘미움 받을 용기’가 아니라 ‘미움 받는 기쁨’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당신도 꼭 알게 되길! /이원우 기자, 정소담 칼럼니스트 

* 이 글은 대학생신문 '바이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