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때 “가진 자가 고통 받는 시대” 발언이 사회분열 가져와

‘역사 바로 세우기’도 지금 중고교 교과서 전쟁의 씨앗

   
▲ 조우석 주필
22일 새벽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두고 현대한국정치사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이다. 민주화 투쟁의 맨 앞줄에 서있던 이른바 선명야당 정치인의 이미지에서 권위주의 세력과 손 잡던 기민한 변신, 그리고 끝내 대통령의 꿈을 이룬 과정까지가 그러하다.

문민정부를 탄생시켰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몰락까지 실로 드라마틱한 88년 삶이었다. 여가 됐든 야가 됐든 YS를 보는 시선은 착잡한데, 군부세력 청산, 금융실명제 등 1987년 민주화 이후 포석도 그의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요즘 같은 세월엔 나오기 힘든 거목(巨木)이란 말도 들리는데, 그럼에도 김대중이나 노무현 사망 당시와 같은 ‘거국적 추모 물결’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매체 환경 자체가 구조적으로 좌편향이 심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지금의 언론 구조 속에서 YS란 그리 매력적인 정치인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YS는 여러 모로 중요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음미해봐야 할 대상이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9선을 지냈던 화려한 경력부터 그러하다. 35년 야당생활을 투쟁으로 일관해왔던 것도 YS가 아니면 누가 하랴?

YS는 ‘한국사회 해체’의 첫 단추를 뀄던 사람

박정희 정부 말기인 79년에 야당 총재가 된 그는 “박 대통령은 불행한 대통령이 되지말기를 바란다”고 경고했고 이어지는 싸움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발언을 남겼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가 그것이다. 필자인 나는 그 발언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군대 제대 말년에 들었던 그 발언은 당시의 소박한 민주화 여망을 반영하던 신선한 언어였다. 그게 그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마산의 ‘부마(釜馬)항쟁’을 촉발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까지 이어지게 됐으니 현대정치사의 큰 굴곡은 많은 게 YS에서 시작됐다.

23일간의 단식 사건도 잊을 수 없다. 83년 5월 18일 그는 광주 3주기를 맞아 ‘민주화 5개항’과 야당인사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는데, 이걸 계기로 당시까지 지리멸렬하던 민주화 세력이 결집할 수 있었다. 이듬해 민추협의 발족, 85년 2ㆍ12총선에서의 신민당 돌풍 그리고 87년 직선제 개헌의 성공….

좋다. 그런 풍운아 YS는 현재의 내게 썩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지 않다는 걸 지금부터 털어놓으려 한다. 다소 조심스러운 발언이겠지만, 현대사의 유산을 망가뜨리는‘한국사회 해체’의 첫 단추를 뀄던 불행한 정치인이라고 나는 규정하려 한다. 기억하실 것이다.

   
▲ 22일 새벽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두고 현대한국정치사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이다. 민주화 투쟁의 맨 앞줄에 서있던 이른바 선명야당 정치인의 이미지에서 권위주의 세력과 손 잡던 기민한 변신, 그리고 끝내 대통령의 꿈을 이룬 과정까지가 그러하다./사진=YTN 캡쳐
YS는 93년 8월 대통령 긴급명령 방식으로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했는데, 충격적인 발언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앞으로는 가진 자가 고통 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 발언이 훗날 무시무시한 반기업정서와 역사허무주의의 첫 총성에 해당한다는 걸 가늠했던 사람은 당시에 별로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YS 식의 개혁조치에 찬성하는 쪽이 대세였다. 군부독재에 대한 부정적 기억 그리고 역사를 긴 시야에서 볼 줄 모르는 조급한 태도 때문이었다. 문제의 김영삼 발언은 1960~70년대 성공의 기억을 송두리째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았고, 소모적이고 공격적 형태의 사회비판의식으로 무럭무럭 자라나지 않았던가?

그래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칼로 두부모 가르는 듯하는 그 발언이야말로 해방 이후 역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발언 중 가장 거칠고 선동적 레토릭의 하나였다. 그게 YS 한계에 대한 지적만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그 말에 박수를 보내고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 당시의 국민모두였다. 또 이후에도 그런 정서를 스스로 내면화했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자진해서 ‘성공의 덫’에 걸려든 모양새였다. 취임 초기 YS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밀어붙였는데, 그것도 똑 같은 맥락이었다.

YS와 노무현 발언은 완벽하게 닮은꼴

그런 섣부른 캠페인은 끝내 현대사의 빛과 그늘을 균형있게 보려는 노력이 없이 그냥 두들겨 패고 갈아엎자는 식의 역사 허무주의로 이어졌다. 그런 부정적 인식의 정점에 해당하는 게 노무현의 꼭 10년 뒤인 2003년 취임사 발언이었다는 것도 기억해둬야 한다.

노무현의 악명 높은 발언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한다.”가 그것이다. 이 발언은 YS의 발언과 완벽하게 한 묶음이다.

유감천만이지만‘역사 바로 세우기’는 노무현 같은 좌파 정치인의 입에서 비슷한 메아리를 얻어냈고, 그게 끝내 지금의 역사 교과서 파동으로 번졌다고 나는 판단한다. 안타깝다. 사회적 분노와 증오의 심리는 현실정치는 물론 너와 나의 마음속에서 맹렬하게 작동 중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물려받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허물고 다시 세우겠다며 제2건국을 내세웠다. 다른 쪽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자 파는 그 이전이야말로 잃어버린 50년이었다고 맞받았다.

이 정도의 인식 균열, 모든 걸 동원해서 상대방을 부정하는 논란이란 ‘인식의 내전’ 차원으로 발전한다. 역사란 결국 한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을 공유하는가의 문제인데, 여기에서 벌써 삐걱댄다. 현대사에 관한 한 우리는 서로 엇갈리는 두 기억이 존재하고 있다.

1948년 건국 이후 국가 만들기 과정은 극적으로 성공했으나 기억 공동체의 형성은 심한 불협화음을 빚어내는 모습이 지금인데, 어느 나라 현대사를 막론하고 거의 유례없는 상황이다. 22일 새벽 서거한 YS의 삶이란 그걸 바로 잡기 위한 성찰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재삼 밝히지만 이 작업을 철저하게 진행하고 교훈을 얻어내야 지금의 우리가 산다. /조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