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와 경쟁·애증 관계…양김 차례대로 대통령 만드는데 역할

[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대통령 하면 뭐하나. 다 거품같은 거지. 미운사람 죽는 걸 확인하고 편안히 숨 거두는 사람이 승자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2월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의 장례식에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조문객들에게 '우스갯소리'라면서 한 말이다.

JP의 이 '주장'대로라면 지난 2009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22일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김 전 총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큰 축이었던 '3김(金) 시대'의 주인공 가운데 '진정한 승자'가 된 셈이다.

충청권을 지역 기반으로 한 JP는 영남의 YS, 호남의 DJ와 함께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보기 드문 경쟁과 애증의 인연을 이어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군사정변과 민주공화당(공화당) 창당을 주도했던 김 전 총리는 특히 이날 영면한 김 전 대통령과는 정적 관계이면서도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였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979년 김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제명안 의결 때로, 당시 공화당 상임고문이었던 김 전 총리는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 [김영삼 서거] "대통령하면 뭐해"…'3김' 최후 생존자 김종필./사진=MBN뉴스 영상캡처

실제로 김 전 총리는 이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에서 유족 대표인 차남 현철씨를 만나 당시 일화를 소개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조(김 전 대통령)를 퍽 괴롭혔다"면서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릴 수 있었으면 해서 옆에 와서 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박 전 대통령에게) 한 번 했더니 조용히 웃으십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유신정권이 붕괴한 뒤 신군부 체제에서 김 전 총리는 YS·DJ와 함께 '3김'으로 상징되는 야권을 형성했다. 특히 1987년 대선에서 두 사람과 나란히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그는 결국 대권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대권 창출의 결정적인 역할을 잇따라 맡았다.

1990년 1월 신민주공화당 총재 자격으로 노태우 당시 대통령,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청와대에서 만나 `3당 합당'을 선언했고, 이후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자유당(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당선으로 문민정부의 역사적인 탄생에 '1등 공신'이 됐다.

3년만에 민자당에서 탈당한 김 전 총재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하고 1996년 총선에서 무려 50석을 얻는 기염을 토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또 이듬해 벌어진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이른바 'DJP연합'을 형성해 국민의 정부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난 김 전 총리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탄핵 역풍을 이겨내지 못한 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참패하자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계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