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대도무문"

[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연합뉴스에 따르면 22일 서거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유신 시절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며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등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이 시중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으며, 1995년에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가리켜, 2008년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공천을 두고 각각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하는 등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시절 군부권력을 향해 '저항'의 언어를 쏟아냈고,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물러난 이후에는 정적을 향해 특유의 돌직구 어법으로 가시가 돋친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말을 평소 자주 하곤 했다. 

   
▲ [김영삼 서거] 촌철살인 어록…권력엔 저항, 정적엔 돌직구./사진=연합뉴스

다음은 연합뉴스가 밝힌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어록이다.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1979년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자)

▲10·26 뒤 나는 대통령이 돼 꼭 4년 단임을 하고 물러나고 싶었다. 그러나 83년 단식투쟁을 통해 대통령을 하겠다는 욕심을 완전히 버렸고, 이런 생각을 버리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1985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노태우씨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군인 출신으로서 12·12 사태를 일으켰고, 일선 군부대를 빼내 쿠데타를 한 사람이다. 쿠데타 한 사람이 대권을 잡는 것은 군정의 연장이다. (1987년 관훈클럽 토론에서)

▲단식 이후 마음을 완전히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설산을 바라보니 더 비워야겠다는 아쉬움이 살아나는 것 같다. (1987년 지리산 등반 중 기자회견에서)

▲산행 도중에 많은 낙오자도 있었다. 민주화도 이와 같다. 민주화의 길은 그만큼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민주화 산행에 있어서 최종 고지의 200m 전방에 와 있는 셈이다. (1987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은 축제 속에 이뤄져야 한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지금,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서 하는 대통령 지명대회는 초상집에서 춤을 추는 격이다. (1987년 국회의사당 단식농성 중 인터뷰에서)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 (1993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다. (1993년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자금을 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새 정부에 있어 국가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하나도 윗물 맑기요, 둘도 윗물 맑기다. (1993년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에서 고위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조하면서)

▲우째 이런 일이…. (1993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해서)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 (1993년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의 조찬에서)

▲요즈음 개혁을 하다 보니 환부 하나를 찾아내 도려내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32년의 권위주의 시대가 만든 '한국병'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한다. (1993년 주요 인사 접견에서)

▲너무 급히 달려도 위험하지만 달리다가 멈추면 쓰러진다. (1993년 모범수출업체 대표들과 오찬에서 개혁의 속도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면서)

▲청와대에서 우리밀로 만든 칼국수를 먹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부터 우리밀 소비가 무려 5백배나 늘었다. (1993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초청 '칼국수 오찬'에서)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 (1993년 금융실명제에 관한 특별담화문에서)

▲아직도 골프를 열심히 치십니까. (1993년 경제5단체장 회식에서)

▲군 개혁을 단행해 문(文)은 문답게, 무(武)는 무답게, 문과 무가 각기 제자리를 찾도록 했다. (1993년 계룡대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사랑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기차를 보고도 짖는다. 그러나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1994년 '개의 해' 의미를 되새기며)

▲대통령으로서 정도를 걷고 당당하게 대도를 가겠다. (1994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 분할론'을 부인하며)

▲지지율이 90%를 넘을 때는 너무 높아서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민주국가에서는 반대도 있을 것이니,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1994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갔으며,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도 갔다. (1994년 서울대 졸업식 치사에서)

▲북한이 무모한 핵개발을 계속하며 서방의 인내를 시험한다면 반드시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1994년 민주평통 운영위원 접견에서)

▲보름 후면 남북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장래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키로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한다.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에)

▲태풍을 기다리는 것은 밤에 도둑이 들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태풍이라도 와 비가 내렸으면 한다. (1994년 극심한 가뭄에 대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 (1994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로마제국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 부패로 망했다.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에 대한 엄단을 지시하면서)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치인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

▲저의 임기 중 대통령 중임제 도입이나 정경유착의 온상이 될 내각제 채택을 위한 개헌, 또는 어떤 형태의 개헌도 단호히 반대할 것이다. (1996년 신한국당 전당대회 치사에서)

▲북한이 국지전을 일으키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 (1996년 여야 및 국회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1997년 차남 현철씨의 한보사태 이권개입 의혹에 대해)

▲최 의원 나요, 나…빨리 일어나야지.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 불명인 최형우 의원을 문병하면서)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갈 때도 생각해야 한다. (1997년 LA다저스 박찬호 선수 가족 초청 오찬에서)

▲국민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1999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회동에서)

▲금융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잘 파악하고 있었다. 노동법과 한국은행법, 기아자동차 처리를 방해한 김대중 정권에 책임이 있다. (1999년 기자간담회에서)

▲멸망한 유신정권의 망령을 지금 김대중 정권에서 다시 본다. 독재자 김대중씨가 벌인 내각제 사기극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김대중씨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김대중씨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김대중씨의 정치적 임기는 올해 말로 끝난다. (1999년 성명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정부패의 원조다. 18년 동안 부정부패를 통해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조성했다. 지난 75년 5월 영수회담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오래할 생각 없다"며 눈물을 비치는 등 인정마저 악용해 사람을 농락했다. (1999년 회고록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은 헛된 욕심과 좁은 시야에 갇혀 민주화를 지연시켰다. (1999년 회고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정희에게 탐욕스런 권력욕만 배웠다. (1999년 회고록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항시 정보정치를 통해 나에 대한 견제에만 골몰했다. 전두환의 후신이라는 출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1999년 회고록에서)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는 사람이 많은데, 날씨는 참으로 정직하다 (2000년 2월24일 민국당 김윤환 의원이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뒤 상도동으로 찾아오자)

▲전직 대통령이긴 하지만 정치적 문제가 있으면 분명한 입장을 얘기하는 것이 옳다. (2000년 조순 의원과의 만찬 회동에서)

▲김대중씨는 재임 2년 동안 독재와 갖가지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다. 이제는 하야해야 한다. (2000년 상도동 자택 오찬에서)

▲23일간 단식한 사람인데 점심 한끼 굶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2000년 특강을 위한 고려대 방문을 학생들이 가로막자 승용차에서 기다리겠다면서)

▲퇴임후 3년간 갖가지 정치보복을 당했다. 또다시 정치보복을 하고 있는데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2001년 검찰의 안기부 자금 수사에 대해)

▲만약 그때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했다면 언론의 존립 자체에 대단히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2001년 도쿄 특파원 간담회에서 재임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

▲실명전환하지 않은 뭉칫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DJ 비자금이) 나왔다. 비자금이 폭로됐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겁을 먹었다. 법대로 했으면 잡아넣을 수도 있었다. 당에서 폭로했을 때 이 자료를 더이상 터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기부장을 추궁했더니 안기부에서 한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 나중에 배재욱 사정비서관이 한 일을 알고 노발대발했었다. 그래서 수사를 중지시켰다. (2001년 2차 회고록에서)

▲그(김정일)는 서울에 오지 못할 것이며, 만약 온다면 그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특히 김정일이 서울에 오려는 것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다. (2001년 칠읍산 산행에서)

▲현 정권에서 벌이는 언론말살 사태야말로 독재자 김대중씨가 음모하고 있는 재집권 쿠데타의 서막이다. (2001년 상도동 자택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하며)

▲아버지와 딸은 다르다. (2001년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를 평가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의혹에 대해)

▲이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이적행위로 국민을 핵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김대중씨는 마땅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며, 사법처리돼야 한다. (2003년 현대상선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해 단식 중단을 종용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가가 되는 것을 끝까지 싫어했으며, 장래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각오도 학습기간도 없었다. (2003년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에도 없는 일로 독재자나 하는 것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실시 계획에 대해)

▲사필귀정.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에 대해)

▲북한은 인권이 없는 나라다. 김정일을 제거하지 않으면 북한에 자유를 가져올 수 없다. (2004년 북한인권운동가 노르베르트 폴러첸씨를 면담한 자리에서)

▲일본이 상당히 우경화되고 교만해졌다. (2005년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의 예방을 받으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 이 나라는 친북좌익 세력이 큰소리치는 정체불명의 이상한 나라가 됐다. 다 죽어가는 김정일 독재정권을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지금까지 연명시킨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저지른 역사적 죄악이다. (2006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주도로 결성된 민주주의이념연구회 창립대회에서)

▲버르장머리 고쳐줘야 한다. (2008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가 엉망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회가 그대로 있었다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2008년 군내 사조직 '하나회' 숙청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로켓 발사는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이뤄진 천문학적인 대북 지원 때문이다. (2009년 부산극동포럼 특강에서)

▲요 근래 일어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러 행태로 볼 때 머지않은 장래에 형무소에 가게 될 것이라 믿는 국민이 전부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현금을 빌린 사실을 시인한 것과 관련해)

▲그렇게 (화해했다고) 봐도 좋다. 이제 그럴 때가 온 것도 아니냐.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문병한 뒤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쉽고도 안타깝다.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고 생각한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모두가 숨죽이고 있던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장한 각오로 무섭게 투쟁했다. (2009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화합 만찬에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언급하면서)

▲(신한국당을) 탈당한 뒤 '이회창씨는 절대 대통령 안 시키겠다'고 각오했다. 제가 탈당한 뒤 이회창씨는 표가 안 나와 30만표 차이로 간단하게 떨어졌다. (2010년 친이계 의원들의 초청간담회에서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탈당 요구를 회고하면서)

▲(남북) 화해란 햇볕정책과 같이 일방적인 양보와 뒷거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2010년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 포럼에서)

▲사자가 토끼를 한 마리 잡아도 최선을 다한다. 사자가 간단히 하면 토끼를 못먹는다. (2011년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면담한 자리에서)

▲믿음이 없으면 나라도 개인도 설 수 없다. (2012년 새해 휘호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제시하면서)

▲이번 대선에서는 애국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합당을 결정한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