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정치화 '이상과 현실' 직시해야…종교탄압은 어불성설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한밤중에 불쑥 들이닥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처리 문제로 조계사가 당혹스런 처지에 처했다. 한 위원장이 신변보호 요청뿐만 아니라 조계종 화쟁(和諍)위원회에 현 시국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 역할까지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지난 2010년 종단 안팎의 갈등과 분쟁을 중재·해결하고 소통과 화합 활동을 펼치기 위해 출범한 기구다. 화쟁(和諍)은 신라 원효대사에서 비롯된 불교 사상으로 다양한 종파와 이론적 대립을 소통을 통해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처럼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대립과 다툼을 화해시킨다는 취지로 출범할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자승 스님은 "분쟁과 갈등을 슬기롭게 풀고, 조화롭게 상생을 모색하면서 이해 당사자들이 치유에 이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출범 이후 화쟁위는 조계종 내부의 사안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의 갈등과 분쟁의 해결에도 나서고 있어, 4대강 사업,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사태, 제주 강정마을 문제, 2013년 철도노조 파업 등 사회 현안에 개입해 왔다. 이번 사태의 경우 우선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를 은닉하고 정부 당국과 중재에 나설 자격이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화쟁위가 종단의 기구이지만 자율적이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라며 중재 문제에 관한 위원회의 결정이 조계종 전체 의견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한상균 노조위원장의 문제는 이 사회의 대립이나 다툼의 문제가 아니고 구속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를 공권력을 통해 체포하려는 것이므로 화쟁위원회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만일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이번 사태를 대립이나 다툼으로 판단한다면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의 판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계사는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수배자를 법의 심판에 넘기지 않고 종교 단체에서 직접 중재에 나서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하는 여론과 반성과 자숙은커녕 종교시설을 투쟁의 거점으로 이용하려는 한 위원장의 의도에 동조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조계종 화쟁위가 위원장인 도법 스님의 뜻에 좌지우지된다는 점과 도법 스님이 2014년 1월 '이석기(통합진보당) 무죄 석방 10만인 탄원’과 2014년 11월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하는 '민주수호 통합진보당 강제해산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이 일고 있다.

   
▲ 19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피신한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 총연합 등 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조계사 측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즉각 추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한 위원장의 피신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경찰은 왜 한 위원장을 연행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경찰이 조계사에 공권력을 투입해서 수배자를 체포하는 것이 불법인가? 경찰이 종교행사나 집회를 저지하기 위해 종교시설에 쳐들어간다면 종교탄압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나, 종교문제와는 무관한 사건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를 체포하기 위해 법집행 기관이 종교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사찰이나 종교단체가 무슨 권한으로 막는 것인가? 종교시설이 법위에 군림하는 ‘신성불가침’의 성지이거나 ‘치외법권’ 지역인가?

필자는 법률가가 아니라 법적으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경찰이 종교시설에 들어가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를 연행하는 것은 불법도 아니고 종교를 무시하거나 탄압하는 행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2000년 명동성당이 한국통신 노조원들의 퇴거를 명한 사례도 있고, 김대중 정부시절인 2002년에는 조계사가 경찰진입을 허용한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한상균 위원장 처리 문제도 정부당국이 민주법치 절차에 따라 순리적으로 해결하도록 협조하는 것이 조계사가 순리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 아닌가?

조계사 정문 앞에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연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피신처를 제공한 조계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엄마부대봉사단 등 7개 보수 학부모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광화문광장을 더럽히는 폭도들 그냥 둘 수 없다"며 "국민들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는 한상균을 보호하고 있는 조계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계종 화쟁위의 방침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스님은 "(한 위원장 체포를 위해) 경찰을 투입하는 것은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다"라면서도 "한 위원장이 계속 시간을 끌면서 조계사에 있는다면 불교계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최후의 수단으로 경찰을 투입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7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폭력시위에 가담했다가 중태에 빠진 백남기씨를 찾아 위로하면서 “생존권 수호 차원에서 일하고 시위를 한 일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할 수 있는지……”라며 경찰을 비판했다. 가톨릭농민회 회원인 백씨와 안면이 있는 사이인 김 대주교는 “어쩌면 이번 일도 생명경시 사상의 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며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무자비하게 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경찰의 생명경시 의식 수준을 비난했다.

그렇다면 김 대주교는 폭력시위를 벌이다 부상한 시위대의 생명만 소중하고 불법시위를 막다 시위대가 휘두른 흉기에 다친 경찰들의 생명은 경시해도 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시위꾼들의 무법천지 폭력시위는 생명경시가 아니고 경찰의 물대포는 생명경시라는 얘기인가?

고위 성직자나 스님처럼 절대적인 믿음과 권위의 세계 속에서 살아온 종교인들이 현실 사회의 모순과 고뇌를 바로 읽지 못하고 종교적 이상(理想)으로 세상사를 심판하려는 것 아닌지 염려스럽다. 그러면서도 각종 이념적, 정치적 시위에 앞장서는 종교인들의 행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