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통합과 화합’이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현대사의 큰 산 김영삼 전 대통령이 88세의 일기로 지난 22일 새벽 서거했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타고난 승부사의 기질로, 용인술의 대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숱한 정치적 고비와 함께 상도동계로 지칭되는 ‘정치인의 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갔지만 ‘그의 사람들’은 여전히 정치를 움직이는 커다란 축으로 남아 있다.

변호사 노무현을 정치에 입문 시켰고,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에 맞선 카드로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영입했다. 이회창, 서청원, 이인제, 김문수, 이재오, 김수한, 박관용, 이병석, 홍준표, 안상수, 정의화, 김무성, 손학규, 정병국, 이성헌, 김영춘 등 가는 길은 다르거나 엇갈렸지만 모두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음덕을 본 사람들이다. ‘좌형우 우동영’으로 알려진 최형우와 김동영, ‘YS의 분신’으로 불렸던 김덕룡까지 그의 주변의 ‘인의 장막’이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생전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그의 말이 증명 하듯 용병술에서도 단연 돋보인 ‘정치 9단’이었다./사진=연합뉴스 TV 캡쳐.
생전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그의 말이 증명 하듯 용병술에서도 단연 돋보인 ‘정치 9단’이었다. 88세를 일기로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전·현직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정치인은 없다.

질곡의 현대사 파고의 한 가운데 있던 그가 떠나면서 생존한 전직 대통령의 근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생존한 3명의 대통령 역시 질긴 고리로 연결돼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와 '12·12'와 '5·18'에 대한 책임으로 수의를 입는 신세가 됐던 악연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4세, 노태우 전 대통령은 83세, 이명박 전 대통령은 74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 집필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계기로 병원출입이 잦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외부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과 노태우 전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지 않은 채 조화와 조문을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분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 믿는다"며 "명복을 빌며, 손명순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에게 위로를 보낸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모교인 대구공고를 찾는 등 건강한 모습이다. 지난해 8월에는 투병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 자택을 10년만에 찾아 ‘병문안’을 다녀오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빈소를 방문하지 못했다며 조화와 함께 애도를 표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0년째 외부활동을 하지 못한 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자택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의사소통과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김옥숙 여사의 간호를 받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교병원을 찾아 “오늘 퇴원 못하고 돌아가셔서 이 나라의 마지막 남은 민주화의 상징이 떠나셨다”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같이 이뤘다고 자랑했었는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유일한 마지막 인물, 큰 축이 사라졌다”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3김 시대’로 불렸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89)는 22일 휠체어를 탄 채 빈소를 방문했다. 침통한 표정의 김 전 총리는 “신념의 지도자로서 국민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분”이라며 “더 살아 있으면 좋았는데 애석하기 짝이 없다”며 비통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