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85)- 천국에서 골프를…

한 젊은이가 신부님께 진지하게 물었다.
“천국에도 골프장이 있나요?”
“글쎄 내 하나님께 여쭤보지. 내일 미사가 끝나면 따로 만나세.”
다음날 다시 신부님을 찾은 젊은이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알아보셨죠? 그래 뭐라고 하시던가요?”
“좋고 나쁜 두 가지 뉴스가 있네.”
“그래 좋은 소식은요?”
“정말 천국에도 황홀하게 아름다운 골프장이 있다는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만면에 희색을 띈 젊은이가 지나가듯 묻는다.
“그래 나쁜 소식이란 대체 뭐죠?”
잠시 뜸을 들이던 신부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일 아침 9시에 그대 티오프 타임이 잡혀 있다는군.”

해리와 스텔라는 평생 검소하고 인자하게 살아온 80대 노부부로 골프가 유일한 취미였다.
때가 되어 지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육신을 떠나 천국으로 향했는데, 여느 때와 같이 이들을 자상하게 맞는 피터 성자가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게. 수고들 했네. 이젠 이곳에서 영원히 휴식하며 사시게나.”하며 문을 열곤 황홀하고 멋진 골프장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보여주었다.
“자 이게 모두 당신들 거요.”
“해리, 당장 나갑시다. 괜찮죠.”하며 스텔라는 피터 성자를 바라보았다.
끄떡이며 웃는 성자를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천국의 골프를 시작했다.
5번 홀 페어웨이에서 공을 한참 들여다보던 해리가 이제껏 한 번도 못 보던 벌건 얼굴로 잔뜩 열 받은 목소리로 스텔라를 손짓해 불렀다.
“당신 말대로 술, 담배 끊고 채식에다 운동이다 법석을 떨어 좋은 게 대체 뭐요? 괜한 헛수고에 40년 이상 질질 끌다 이제야 겨우 여길 오게 되다니 원, 쯧쯧…. 진작 40년 전에 여기 올 걸 그랬잖아!”

   
▲ 고 고우영 화백의 골프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골프 약속을 하고 나면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약속을 되새기며 흥분했고 그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자 눈이 충혈되기 일쑤였다. 천국에서도 골프를 칠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 고 화백이 아닐까 싶다. /삽화=방민준
주변에서 정말 골프가 없으면 못살 것 같은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바둑이나 당구, 포커를 처음 배울 때 잠자리에 들어서도 천장에 그려지는 바둑판이나 당구공, 카드가 눈에 선해 잠을 못 이루듯 골프에 빠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잠을 청하려 누웠지만 천장에 그려지는 그린 위에서의 퍼팅으로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 해지는 고통을 겪는다. 어떤 사람은 골프경력 20년이 지났는데도 지난 번 라운드를 반추하며 18번 홀을 홀 아웃 하고나서야 잠에 든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골프 사랑으로 말하면 고 고우영 화백을 따를 사람이 있을까 싶다.
고 선배와 골프 인연을 맺은 뒤 그로부터 전해들은 골프와 얽힌 일화는 그가 얼마나 지독한 골프광이었는가를 말해준다.
필자가 그의 골프 사랑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 짐작할 것이다.
그는 40이 넘어서도 골프의 골자도 몰랐다. 사냥, 스킨스쿠버, 낚시, 등산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했지만 골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골프 문외한들이 그렇듯, 그도 골프가 무슨 운동이 될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를 아끼는 한 지인이 그에게 골프를 할 것을 권했다. 그러면서 골프의 장점과 매력을 들려주었다.
고 화백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3개월이 지나 그 지인이 고 화백을 만났다.
“그래 요즘 골프 재미가 어때요?”
그러자 고 화백은 쑥스러운 얼굴을 하며 도저히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시작도 안했다고 말했다.

간곡한 당부에도 고 화백이 골프를 시작할 기미가 없음을 확인한 그 지인은 즉시 골프채와 가방과 신발 등 일습을 준비해 그의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3개월 후 같이 라운드 하는 겁니다!”
별수 없이 골프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고 화백은 집에 돌아와 골프백을 열어보았다.
“무슨 채가 이렇게 많아!”
골프를 하는데 열 서너 개의 클럽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그는 아들 등 가족에게 클럽 몇 개씩을 나눠주며 함께 골프를 배우자고 말했다. 그 정도로 골프의 문외한이었다.

“방형, 근데 말이죠. 골프를 배우고 나서는 골프 외는 아무것도 뵈지 않대요. 참 이상하지요. 일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냥이나 스킨 스쿠버, 낚시 등을 하느라 정신없었는데 골프를 하고 나선 모든 게 멀어지대요.”

그와 함께 라운드 해보면 그의 골프사랑은 보통의 세속적인 골퍼와는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스윙을 갖고 있었다. 젊지 않은 나이에 골프를 배웠음에도 교과서보다 더 부드럽고 우아한 스윙을 자랑했고 구질 역시 깔끔했다.
그의 골프 에티켓은 정말 동반자들의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였다. 동반자를 철저하게 배려함은 물론 앞뒤 팀과 마주칠 때도 절대 방해가 되지 않게 행동했다. 일테면 앞 팀이 티잉 그라운드에서 티샷 준비를 하고 있으면 50미터 후방에서 기다리는 등 남에게 방해가 되거나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의 골프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골프 약속을 하고 나면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약속을 되새기며 흥분했고 그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자 눈이 충혈되기 일쑤였다.
천국에서도 골프를 칠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 고 화백이 아닐까 싶다.
“방형! 우리 너무 오랫동안 붙지 않았지요. 칼 그만 갈고 올라와요.”

정말 천국에서 고 화백과 골프를 할 수 있다면 내일 아침 티오프 한다고 해도 응하고 싶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