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화중이냐 예심중이냐 분분…제2 장성택의 길 관측도

   
▲ 김소정 기자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에서 한때 ‘2인자’로 불리던 최룡해 당 비서가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지 한달째가 되면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룡해의 신병 이상설은 지난 7일 사망한 빨치산 1세 리을설 원수의 국가장의위원회 170명 명단에서 누락되면서 시작됐다.

특히 빨치산 2세를 대표하는 최룡해가 리을설 장의위에 포함되지 못하자 그가 이미 실각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최룡해의 공식 활동은 지난 10월31일자 노동신문에 ‘주체혁명의 새 시대를 빛낼 역사적인 대회’라는 글로 제7차 노당당대회 소집을 소재로 한 글을 기고한 것이 마지막이다. 이후 최룡해의 공식활동이 감지되지 않다가 8일 북한 당국이 발표한 리을설의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이름이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24일까지도 최룡해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날 국가정보원은 최룡해가 백두산발전소 수로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방 협동농장으로 좌천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밝힌대로 최룡해가 지방 협동농장에서 혁명화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면 빠르면 수개월 내 길어도 1년정도 기간이 지나면 재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5월 종적을 감추면서 숙청설이 돌았던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이 5개월만인 10월 김정은 제1비서를 수행하면서 재등장한 것이나 지난 3월부터 안보이던 김정은의 ‘금고지기’로 불렸던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이 8개월만인 이달 리을설 장의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일도 있다.

북한에서 간부라도 농촌이나 탄광에서 혁명화교육을 받는 것은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최룡해는지난 2004년도에도 혁명화교육을 받은 전력이 있는 만큼 ‘김정은의 간부 길들이기’에 예외가 없다고 보면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고위 간부 출신이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교육을 받는다면 비교적 높은 수위의 처벌에 해당하고, 이런 경우 북한 사회라도 입소문을 타기 마련이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이날 "그동안 지방으로 추방돼 혁명화교육을 받거나 숙청된 간부들이 많지만 최룡해처럼 파악이 힘든 것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대북소식통은 “사실 최룡해는 평양에 있는 간부 중에서도 유독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라며 “지금까지도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몰라도 최룡해의 얼굴은 각 지방 농장원도 다 알 정도”라고 말했다.

   
▲ 북한에서 한때 ‘2인자’로 불리던 최룡해 당 비서가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지 한달째가 되면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룡해의 신병 이상설은 지난 7일 사망한 빨치산 1세 리을설 원수의 국가장의위원회 170명 명단에서 누락되면서 시작됐다. 최룡해는 지난 9월3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북한의 대표로 참석했다. 사진은 지난해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을 방문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사진=연합뉴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볼 때 최룡해가 북한의 어느 지역이든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면 지금까지 소문이 새어나지 않을 수 없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중국이나 남한 내 탈북자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

최룡해는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 당시 북한 청년단체 위원장으로 축전 준비를 총괄한 인물이다. 이 축전에 당시 남한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임수경 씨가 참석해 북한 전역에서 회자됐다. 게다가 이 축전이 열리기 직전에 최룡해는 모친상을 당했다. 하지만 축전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장례식조차 찾지 않았던 최룡해를 김일성이 “제일 똑똑한 간부”라고 치하한 일이 ‘김일성 회고록’에 실려있다고 한다.

최룡해가 혁명화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과 관련해서는 그가 지방 농장이 아니라 평양시내에 있는 김일성고급당학교 산하 부업농장에서 혁명화교육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최룡해 정도의 직급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전망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도 의혹은 남는다. 김일성고급당학교 산하 부업농장이라면 짧게는 1달만에도 혁명화교육이 끝나는 비교적 약한 처벌을 받는 곳이다. 그렇다면 최룡해 정도의 고위급 간부를 이 정도 처벌을 위해 굳이 혁명화교육을 시킬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아무리 김정은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북한 당국도 여론을 의식하기 마련이고, 그런 차원에서 힐난을 자초할 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김일성고급당학교 산하 부업농장이라고 하더라도 혁명화교육 중 최룡해에 대한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식통은 “북한에서도 모든 비밀은 간부들 가운데에서 발설되고 퍼지기 마련”이라며 “해임된 간부가 어느 농장에서 혁명화교육을 받고 있을 경우 목격자도 생겨나고 그래서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최룡해의 거취는 무성한 설만 낳고 있을 뿐 정보기관이라도 좀처럼 확인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소식통은 “최룡해가 이번에 실각했다면 가벼운 혁명화교육 정도의 처벌보다는 보다 엄중한 혐의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럴 경우 당 기관에 체포돼 지금 예심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지난 2013년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장에서 창광보안서 소속 경찰들에게 전격 체포되자마자 처형돼 충격을 준 일이 있다. 하지만 장성택은 이미 수개월 전에 비밀스럽게 체포돼 예심을 거치면서 모든 죄과가 드러나거나 혐의가 작성됐던 것으로 이후에 파악됐다. 이처럼 최룡해가 이달 초 체포됐고, 완전히 숙청되기 전 과정으로 예심 절차를 밟고 있을 수 있으며, 예심 절차는 앞으로 수개월 걸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럴 경우 최룡해에게 씌워질 혐의는 '불경죄' 정도로 엄중할 것이고, 그는 앞으로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지난 리영호 총참모장처럼 비밀스럽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 특히 이번에 국정원이 밝힌 최룡해에게 씌어진 혐의가 백두산발전소 붕괴사고에 대한 문책이라면 최룡해가 회생하기란 더욱 힘들다는 판단도 있다.

소식통은 “과거 최룡해가 장성택과 동시에 실각했을 때에도 최룡해의 여성편력뿐 아니라 평양시 광복거리의 부실공사 책임을 물었다”면서 “이번에 거론된 백두산발전소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최룡해에게 물었다면 최룡해는 예상보다 엄중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최룡해는 1998년 청년동맹 간부들이 대거 숙청된 ‘청년동맹 사건’ 때와 2004년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분파행위로 처벌 받을 때 연루되면서 좌천된 적이 있다. 청년동맹 사건 때 국토환경보호연구소 당 비서로 밀려났다가 5년 뒤 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곧이어 장성택 분파행위에 연루되면서 최룡해는 이전 직급에서 관할한 상하수도 부실공사 책임까지 함께 혐의를 받았다. 당시 최룡해는 2년간 혁명화교육을 받은 뒤 2006년 3월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재기했다.

또 지난 8월 양강도에 완공된 백두산발전소가 붕괴되면서 발전용량이 턱없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군열이 생긴 외벽을 막기 위해 하루에 기차 10칸 분량의 모래를 쏟아붓고 있다는 전언이 있다. 하지만 백두산발전소가 붕괴된 원인은 당초 김정은이 8월28일 청년절을 맞기 전까지 완공을 주문한 '속도전'을 지시한 탓이 크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백두산발전소 붕괴사고의 책임도 청년동맹위원장에게 묻는 것이 맞다. 근로단체 비서를 맡고 있는 최룡해에게 책임을 물었다면 의구심이 남는다”고 했다.

이런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국정원 등이 파악한대로 최룡해가 혁명화교육 중이라면 앞으로 빠르면 12월이나 늦어도 내년 5월 제7차 당대회 이전까지는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때 북한의 2인자로 불리던 최룡해가 과거 리영호나 장성택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지금부터 최룡해는 영원히 재등장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