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언론-조중동의 과도한 ‘민주화 타령’을 경계한다

   
▲ 조우석 주필
고성장 꿈도 못꾸고 2~3% 저성장 추락도 김영삼 탓

우린 지금 한 시대를 떠나보내고 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 국가장(國家葬)이 내일 26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에서 엄수되는데, 그걸 계기로 양김 시대와 고별하는 셈이다. 문제는 고별이란 게 어떤 방식과 내용인가가 중요한데, 털어놓지만 나는 며칠 새 두 번 놀랐다.

첫째는 신문-방송에서 YS를 추모하는 물결이 생각보다는 높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민주화의 거목(巨木)”이란 요란한 칭송과 무관하게 제대로 된 성찰은 극히 드물었다는 점이다. 이 모두가 이 나라의 부박한 언론풍토와, 정치역량의 한계를 함께 반영한다는 게 지금 나의 판단이다.

실은 저번 글에서 나는 김대중이나 노무현 사망 때와 같은 추모물결은 이번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예상과 조금 달랐다. 좌파 언론은 YS를 ‘민주투사’로 칭송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가 남긴 유언이라는 통합-화합을 들먹이며 “내 목소리를 들으라”는 식의 으름장을 놓는 여유까지 보였다.

희한한 것은 조중동을 포함한 주류 매체들인데, 이들은 좌파의‘YS 끌어안기’전략에 밀리면서 외려 저들에게 아부를 했다. 그러하니 역사 속의 YS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다. 그 전형이 조중동 등 주류언론이다.

‘군부=악’이고 ‘민간=선’이라는 잘못된 도식

조선일보의 경우 사망 다음 날 1면 기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독재-기득권의 벽에 부딪쳐 가며 정면 승부를 펼쳐온 우파 민주화 진영의 중심축”이라고 칭송했다. 1960~70년대 개발연대를 “독재-기득권의 벽”이라고 함부로 규정하는 건 숫제 단순무식의 경우다. 독재 아닌 권위주의 체제라고 하는 게 정확한 용어가 아닐까?

또 굳이 기득권이란 말을 써서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며 경제민주화를 옹호하는 듯한데, 이것도 골빈 좌파 따라하기에 불과하다. 더 가관은 그 날짜 사설인데, ‘민주화 타령’이 거의 전부다. 민주화는 1987년 6.29 선언으로 전환점을 마련했지만, YS 당선으로 사실상 완결됐다는 식의 단선적 인식에서 저들은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예외가 ‘미래한국’이다. 김용삼 편집장이 쓴 글 ‘김영삼이 역사의 법정에 서야 하는 이유’란 글은 혹독했다. 요지는 “무뇌아에 가까운 경제상식으로 외환위기를 자초한 것, 노태우·전두환을 감옥에 넣어 존경받는 퇴임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게 만든 죄값”을 YS가 치러야한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목소리가 거의 극소수란 점이다. 이 나라 언론이 YS는 물론이고 그가 집착했고, 갇혀 살았던 이른바 87년 체제의 빛과 그늘을 균형있게 보지 못한 채 몽땅 선악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 꼴이다. 그러니‘군부=악’이고 ‘민간=선’이라는 도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은 YS가 내세웠던 민주화-문민화란 구호 자체가 문제였다. 민주화란 명목 아래 취해진 정치-경제-사회 개혁프로그램의 거의 전부가 올바른 게 없었다. 저들은 좌경화된 세력에게 섣부르게 민주화라는 포장을 씌워줬는데, 그게 지금 이념갈등의 최대 진원지가 아니던가? 결정적으로 5.18 특별법을 통해 ‘광주’를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둔갑시킨 사람도 김영삼이다. 

   
▲ YS가 내세웠던 민주화-문민화란 구호 자체가 문제였다. 민주화란 명목 아래 취해진 정치-경제-사회 개혁프로그램의 거의 전부가 올바른 게 없었다. 저들은 좌경화된 세력에게 섣부르게 민주화라는 포장을 씌워줬는데, 그게 지금 이념갈등의 최대 진원지가 아니던가? 결정적으로 5.18 특별법을 통해 ‘광주’를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둔갑시킨 사람도 김영삼이다. /사진=YTN 캡쳐
그런 게 한둘이 아니다. 이른바 민족사의 정통성 확립이란 명목 아래 4.19를 혁명으로, 6.10항쟁을 명예혁명으로 높여 부르게 하고, 5.16을 군사정변으로 바꿔 부르길 제안하기도 했다. YS시절 시민사회가 괄목할만하게 성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용은 껍데기뿐이다.

YS는 시민단체의 협력을 얻어 국정을 수행한 첫 번째 대통령인데, 금융시명제도 경실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참여연대도 그 시절에 발족했지만, 내용은 어이없었다. 일테면 김정남을 청와대 교문수석으로 임명하여 교과서에 민중사관을 집어넣는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저성장에 빈부양극화도 결국은 YS탓

한완상을 통일부총리로 임명하여 대북 퍼주기를 개시했고,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는 미국을 막아 대한민국을 북핵의 볼모로 잡히게 만들었던 것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결정적으로 YS의 트레이드마크인 권위주의 청산과 탈 군사문화화 자체가 나라를 거덜 낸 단초였음을 나는 지적하려 한다.

지난 번 글에서 YS가 ‘한국사회 해체의 첫 단추’를 뀄다고 지적했지만, 경제부문에서 그게 썩 잘 드러난다. 당신에게 물어보자. 1960~80년대 8% 고성장을 거듭하던 한국경제가 왜 지금 3% 저성장에 목매야 할까? 그게 왜 잘못 뚜껑이 열린 민주화 탓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YS는 93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앞으로는 가진 자가 고통 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게 87년 헌법에 올라간 ‘평등주의라는 함정’과 맞물려서 막강한 부정적인 영향을 발휘했다. 개정된 헌법은 경제 균형발전, 소득 적정분배, 경제민주화를 명문화(119조 2항)했다. 공정거래법에 등장하던 경제력 남용규제 문제가 헌법으로 격상되며 재벌규제가 정부 경제정책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걸 선진화의 길이자, 개혁이라고 1980년대 말 당시 우리는 굳게 믿었다. 권위주의 정부에 질렸던 탓이지만, 그래서 경제민주화야말로 박정희와 신군부의 독재-관치경제-재벌경영과 굿바이한 뒤 찾아온 새로운 시대정신이라며 그때 우리는 환호했다.

이후 우리 모두는 너무 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YS 시절에 자살골까지 넣은 셈이다. 그 결과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몰락까지 겪었다면, 그리고 혹독한 저성장의 고통 속에 빈부양극화로 큰 고생을 무려 20년 가까이 반복하고 있다면, 한 번쯤 정신 차린 채 역사의 진실을 알아챌 때가 아닐까?

즉 올바른 섣부른 민주화 타령 대신 민주화의 명암을 살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쉬운 얘기다. YS를 민주투사로 칭송하는 건 결코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의 공과를 잘 새기는 것만이 YS와, 그의 시대와 제대로 작별을 고하는 길이다. 지금 우리는 YS의 공과를 제대로 이해해야할 시점이다. /조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