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자율주행 기술 도입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한국 시장이 새로운 경쟁 국면에 들어섰다. 글로벌 완성차들이 고도화된 주행보조 기능을 잇달아 국내에 적용하거나 예고한 가운데, 현행 규제와 데이터 체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기술 고도화와 안전 의무 사이에서 제도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1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전동화 확대 흐름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완성차들은 레벨3 기반 자율주행 기능을 각국 주요 시장에 단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규제 완화와 데이터 활용을 전제로 상용화 속도를 높이는 만큼, 국내 산업 경쟁력도 제도 정비 여부에 따라 갈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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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컬레이드IQ 외관./사진=캐딜락 제공 |
◆ 글로벌 자율주행 기능, 국내 적용 확대…경쟁 초입 진입
테슬라는 최근 한국 시장에 FSD Supervised 기능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하며 주행 영상까지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국내 도로 환경에서 차선 변경과 교차로 통과, 속도 조절 등이 운전자 개입 없이 이뤄지는 모습이 담겼다. 테슬라코리아는 2019년부터 FSD 도입을 준비해왔으며, 최근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FSD 감독형, 다음 목적지: 한국, 곧 출시"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다만 중국산 모델 Y와 모델 3가 국내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들 차량에 대한 FSD 적용은 미국산 차량보다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차량은 유럽 안전기준이 적용돼 있어, 한국의 자동차 안전기준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운전자의 방향지시등 수동 작동 없이도 차로변경을 지원하는 국제기준 'DCAS'가 발효됐으며, 국내 도입을 위한 제도 연구를 준비하는 단계다.
GM도 한국에 고도화된 운전보조 기능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GM은 지난 10월 업계 최초로 상용화된 핸즈프리 운전자 보조 시스템 '슈퍼크루즈' 한국 출시를 공식 발표했다. 한국은 북미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슈퍼크루즈가 도입되는 시장으로, 국내 시장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핸즈프리 기술이다.
GM은 슈퍼크루즈 도입 범위를 한국 주요 고속도로 및 간선도로 중심으로 넓히겠다고 밝히며 맵 구축과 지역 서버 기반 업데이트 체계까지 마련했다. 한국 도로 환경에 최적화된 2만3000km 규모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기능 안정성과 적용 범위를 동시에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슈퍼크루즈는 에스컬레이드 IQ에 최초로 적용됐다.
이처럼 글로벌 브랜드들이 실제 기능 적용 가능 구간을 확대하고 업데이트 체계를 구축하면서 한국 시장의 기술 경쟁이 한층 격화하고 있다. 기존의 단순 ADAS 경쟁을 넘어 부분 자율주행 단계에서의 서비스 우위 확보가 주요 관전 포인트로 부상했다.
국내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의 서비스 범위가 넓어질수록 소비자 기대치는 높아지고, 시장의 기준선 역시 빠르게 상향되기 때문이다. 업계는 한국이 더 이상 자율주행 기술의 '도입 단계'가 아니라 '확대와 경쟁 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제네시스 G90과 기아 EV9에 HDP를 적용하려 했으나 무기한 연기했다. 야간 자율주행 성능 향상 및 고속도로 주행 속도 증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지연이 계속되면서 자율주행 분야에서 현대차그룹이 경쟁사에 비해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기술 도입 속도와 제도 간의 간극…상용화 발목 우려도
글로벌 완성차들은 고도화된 자율주행 기능을 속속 상용화하며 실증 규모를 확대하고 있지만, 한국은 지도·데이터·인증 체계 등 핵심 인프라 정비가 더딘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자율주행 기능이 여전히 운전자의 조작 개입이 필요한 보조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점도 기술 격차 우려를 키우고 있다.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에 따르면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미국 대비 89.2%에 그치며, 글로벌 상위 10개 기술 기업 가운데 중국 5곳, 미국 2곳, 독일 3곳이 포함된 반면 현대차그룹은 11위권으로 분류돼 있다.
정밀지도 구축은 고속도로와 일반국도를 중심으로 일정 수준 진행됐으나, 갱신 주기가 들쭉날쭉해 실시간 도로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해외 기업들이 수천만㎞ 실도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고, 중국이 도시 단위 대규모 실증을 빠르게 확장하는 것과 대비된다는 분석이다.
인증 기준 역시 현장 요구에 뒤처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 조건부 자율주행 기능은 국제 기준과 국내 기준 간 간극이 존재해 실제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글로벌 완성차들이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것과 달리 국내는 규제 환경과 실증 제약으로 데이터 축적·검증 속도가 느린 구조다.
다만 정부도 제도 보완 작업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12월 세계 최초로 레벨3 안전기준을 제정한 데 이어 2022년 개정을 통해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한 법적 기반을 확충했다. 최근 발표한 'K-모빌리티 글로벌 선도전략'에서는 2028년 자율주행차 본격 양산을 목표로 △자율주행 데이터 공유·활용 가이드라인 마련 △임시운행 제한구역 완화 △AI 학습영상 비식별 처리 의무 완화 △시범운행 지구 확대 등을 2026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규제 샌드박스 확대, 지도·데이터 개방, 국제 인증 기준과의 정합성 확보 등 제도 전반의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 기술은 비교적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진화한다"며 "한국이 생산 강국이라도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뒤처지면 미래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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