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무에서 출발, 대한민국 기업생태계 이끈 ‘한강의 기적’ 주인공

“이봐, 해보기는 했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의 대표적 명언이다. 아산 정주영은 호암 이병철과 더불어 우리나라 기업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기업가다. 아무 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상인의 길에 투신하여 돈을 벌고 집념과 불굴의 끈기 하나로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집단을 일구어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과업을 획기적인 발상으로 정면돌파한 우직한 위인이기도 하다.

2015년 올해는 아산 정주영 탄생 100주년(1915년 11월 25일生)이다. 미디어펜은 이를 기리며 좌승희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의 ‘아산 정주영’ 연구논문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좌승희 교수는 KDI를 거쳐 한국경제연구원장과 경기개발연구원장을 역임한 기업경제, 경제발전 전문가다. 한국비교경제학회, 한국규제학회,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제도에 대한 통찰력을 보인 바 있다.

좌 교수는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아산의 기업경영 전략과 인생역정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한국 대기업들의 기업경영 행태를 이해하고자 했다.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기업과 기업인은 특정 경제사회의 제도적 환경의 산물이다. 좌 교수는 논문을 통해 “그 제도적 환경의 내용과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 기업이나 기업인의 경영 및 인생행로 선택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 좌승희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신제도경제학으로 보는 한국의 대기업: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 [1]*

Ⅰ. 들어가는 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제2·제3의 아산 정주영이 필요한 한국경제

1. 한국경제의 어려움과 원인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는 일인당 소득은 2만불을 넘었다고 하지만 일자리 창출이 안 되어 젊은 대졸자를 포함한 청년들의 실업이 일상다반사가 되고, 소득불평등은 심화되어 이제 아무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 묘한 경제가 되어가고 있다. 수출은 좋아 무역흑자는 쌓이고 있으나, 국내투자는 지지부진하여 내·외수가 양극화되고, 내수침체가 장기화되어 국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제는 거의 대다수 국민들을 서민층이라 느끼게 만들고 있다. 90년대 이후 시작된 성장의 둔화와 소득분배의 악화로 중산층이 엷어지면서, 소위 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개발연대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과 분배의 동반성장을 이끌어온 “수출을 통해 벌어드린 수익을 국내투자로 환원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의 선순환구조”가 90년대 이후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정부의 정책이다. 개발연대에는 정부가 ‘수출진흥정책’으로 기업들의 수출활동을 적극 지원함과 동시에, 수출을 통해 번 수익을 적극적으로 국내투자로 환원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외수와 내수의 동반성장을 이끌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경제력집중 규제(대기업 투자규제)니 균형발전(수도권 규제)이니 하여 수출제조 대기업들의 국내투자를 규제하는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이제 더 이상 수출수익을 국내투자로 환원하는 것이 경제·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다. 투자는 투자할 능력이 있는 기업이 하는 법인데도 투자할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이 투자를 해야 기업생태계가 균형되고, 그리고 투자능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지방에 투자해야 지역균형이 된다는 정치적 고려 하의 경제정책전환이 대기업 투자의 해외 탈출을 조장한 결과가 오늘날 외수와 내수의 양극화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90년대 이후 급격히 악화되어 온 노사관계에도 원인이 있는데, 이 또한 노조를 무소불위의 전투적 노조로 진화하도록 방치해온 정부의 정치적 접근에도 큰 책임이 있다. 법치를 통한 근로자의 권익 보호는 철저히 하되, 내수투자에 대한 결정적 저해 요인인 전투적 노조활동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더 필요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 1971년 정주영 회장은 황량한 바닷가에 소나무 몇 그루와 초가 몇 채가 선 초라한 백사장을 찍은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일본으로, 영국으로 배를 수주하러 돌아다녔다. 그로부터 현대중공업의 신화가 시작됐다. 사진은 현대그룹 故정주영 회장(1915~2001)./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두 번째 원인은 우리나라 대기업들 중 일부 2-3세 기업인들의 창조적·도전적 기업가정신의 결여이다. 오늘날 일부 대기업들의 놀라운 국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일부 2~3세 기업인들의 내수 투자에 대한 자세가 아마도 “정부의 재벌규제, 전투적 노조, 국민들의 반(反)대기업 정서 등 어느 하나 우리들의 투자를 반기는 데가 없고, 마땅히 수익성이 보이는 사업기회도 없으니 그저 수성이나 하던가, 아니면 해외로 가지 국내에서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동안 적어도 지난 한 세대동안 대기업 투자규제가 선진화의 길이라 설파해 온 정부나 학계 일부의 주장과 이에 물든 일반국민들의 반(反)기업 정서 속에서 자라고 순치된 한국 기업가들의 생각이 그러할 수밖에 없으리라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여건을 탓한다면 1세 창업자들의 시대는 어떠했을까? 60년대 박정희시대가 시작되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산업화에 나서고 민간 기업들에 참여를 독려했지만 사실상은 정부도 민간도 맨손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던가? 시쳇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무엇하나 흡족한 것이 있어 창업에 나서고 해외로 진출했던가? 한국적 산업혁명으로 50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가난을 극복하자는 정부의 뜻에 부응하여 “사업보국”이라는 전혀 서양적 기업 원리에는 안 맞는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한 창업세대의 도전정신과 창의적 노력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오늘날 이만한 정도나마 경제적 성과를 이룬 것이 아닌가 싶다. 다소 좌파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가 개발연대를 통해 이룬 성과를 ‘불평등과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폄하하고, 요즘도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이를 무슨 “양극화”라는 표현을 쓰면서 우리가 그동안 이룬 성과를, 특히 그동안 한국경제를 이끈 성공한 대기업들이 이룬 성과를 폄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지만, 경제는 이상(理想)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점이야 말로 한국경제의 동반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살려내려면 한국기업들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2. 한국경제 도약을 견인한 대표적 기업인으로서 아산 정주영의 선택

한국 기업사에서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은 대단히 특이한 위치에 있다. 가문의 배경이나 자본에서 완전한 무(無)에서 출발하여 대한민국 기업생태계를 맨 선두에서 이끌어 ‘한강의 기적’을 이끌고, 한국기업 성공 노하우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그래서 재벌의 공과(功過)를 논함에 있어서는 칭송도 받지만, 그 전형으로 비난도 받는다. 그러나 아직도 “아산이 왜 그런 선택을, 때로는 성공했지만 실패도 한 그런 선택을 했을까?”하는 질문이 학문적으로 의미있게 제기되지도 않았지만 진지하게 답을 구하는 노력도 없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대기업, 혹은 재벌의 그 동안의 경제적, 혹은 경영적 선택에 대한 합리적 이해도 없이 대재벌정책이나 더 넓게는 전반적인 기업정책 기조가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어 왔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산을 모르고, 소위 ‘대한민국 재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서산 천수만 간척지 사업은 정주영공법으로 시행된 최초의 공사로 공사기간은 3년이 줄었고 약 290억원의 비용이 절감됐다./사진=아산 정주영닷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아산 정주영의 경제, 경영적 선택을 포함하는 인생역정을 경제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나아가 이를 통해 한국 대기업들의 행태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아산의 경제·경영적 선택이 놀랍게도 한국 대기업들의 일반적인 패턴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에 성공한다면 보다 일반화해서, 소위 ‘한국 재벌의 행태’를 이해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한국의 기업정책의 탈정치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한국 대기업들에 보편적으로 유사하게 정형화된 경영행태를 중심으로 해서 아산의 경우에 접근하고자 한다. 물론 예외적으로 아산 특유의 정치 참여와 대북사업의 경우도 같이 설명해 보고자 한다.

(1) 왜 아산은 경영·경제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불투명하다는 가족 경영에 집착하였는가?

(2) 아산은 왜 경제·경영학계로부터는 물론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끝없이 문어발 다각화를 추구하였는가?

(3) 대마불사 전략이 유효했는가?

(4) 왜 정경유착에 연루되었는가?

(5) 어떻게 기업인이, 그것도 내세울 학력도 별로 없고 정치적 인기도 별로 없을 대재벌 총수가 대통령에는 출마하였는가?

(6) 기업인이 왜 “사업보국”의 깃발인가? 정치적 수사인가 아니면 진정한 의미인가? 이 이념은 그러면 어디서 왔는가?

(7) 왜 맨 먼저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나?

   
▲ 지난 11월 1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한 관객이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3. 논문의 구성

본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2장은 본 논문의 분석 틀과 기업행태에 대한 몇 가지 명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기업환경과 그 행태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을 설명하고자 한다. 제3장은 경제발전에 있어서의 기업의 역할, 그리고 기업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기업이 왜 경제발전에 필수적인지 그리고 기업의 어떤 본질적 특성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구명하고자 한다. 제4장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다각화·전문화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5장에서는 아산 선택의 원인이 되는 환경적 요인으로서 아산시대의 경제정책과 경제제도의 특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제6장에서는 한국 기업가정신의 특징이 어디서 왔는지 규명하고자 한다. 제7장에서는 아산의 경제·경영적 선택과 정치적 선택의 원인들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제8장은 간략한 맺음말이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 본고는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 회장의 기업경영 전략과 인생역정을 분석함으로써 이를 통해 한국 대기업들의 기업경영 행태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기업과 기업인은 특정 경제사회의 제도적 환경의 산물이며, 따라서 그 제도적 환경의 내용과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 기업이나 기업인의 경영 및 인생행로 선택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기업이라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높은 거래비용을 수반하는 경제활동을 내부화하여 시장이 생산하지 못하는 재화를 생산해 냄으로써 경제의 영역을 확장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기업과 기업가의 경영 전략은 특정 경제·사회적 제도나 여타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른 거래비용의 증가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산의 다양한 기업경영 전략의 선택과 인생역정은 바로 아산이 급변하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제도적 환경변화가 초래하는 기업 활동에 대한 부정적 영향, 즉 ‘제도변화’에 따라 기업이 부담하게 되는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몸부림의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때때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현대나 아산의 문어발 다각화 전략이나, 소위 가족경영, 심지어 정경유착 등의 경영행태와 심지어 아산의 대통령 출마 등 아산의 인생역정마저도 그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반(反)대기업 정서에 영합한 정부의 과도한 대기업경영 간섭과 규제로 인한 재산권 위협과 그에 따른 거래비용의 증가에 직면한 기업가로서 자신과 기업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개발연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들 중의 한 사람인 아산 정주영의 역정(歷程)은 바로 한국 대기업들의 역정의 표본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주제어(key words): 신제도경제학, 제도적 환경, 거래비용, 경영전략, 재산권 위협, 다각화, 가족경영, 정경유착.

< 목차 >

Ⅰ. 들어가는 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제2·제3의 아산 정주영이 필요한 한국경제
Ⅱ. 경제제도와 기업행위의 패턴; 이론적 분석 틀
Ⅲ. 경제발전과 기업의 역할
Ⅳ. 기업 지배구조와 다각화·전문화 이론
Ⅴ. 아산시대 한국경제의 제도적·정책적 환경
Ⅵ. 한국 기업가 정신의 특질: 사업보국 이념
Ⅶ. 아산 선택의 성공과 실패, 어디서 왔는가?
Ⅷ. 결어: 박정희 시대가 아산을 만들고, 아산의 선택이 한강의 기적을 이끌다.

원고 출처: 한국제도경제학회. 『제도와 경제』 제9권 제3호(2015.11.) 13~5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