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7.08.16 06:32 수
> 칼럼
YS·DJ 유훈 실천? 이념·갈등의 정치 반성이 먼저다
외환위기·교과서 좌경화·민노총 과격화 모두 양김이 뿌린 씨앗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승인 2015-12-03 10:08:30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스토리

   
▲ 우태영 언론인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했던 구 정치인들이 11월 30일 공동으로 송년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단체의 주요 구성원들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YS를 지지하던 상도동계와 DJ를 지지하던 동교동계 정객들이 함께 모인다는 점에서 새삼 화제가 된 듯 하다. 

민추협은 YS 와 DJ 모두 정치활동이 허용되고, 각각 측근 및 비서들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던 5공화국 말기에 두 사람의 정치활동이 허용되면서 신문지상(그 때는 지하철에서 다들 신문을 읽었다)에서 민추협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그 대신 ‘동교동’, ‘상도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모두 유력한 대권 후보가 되면서 몇 차례 인터뷰를 할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대략 30년 전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두 사람은 생김새나 매너, 그리고 대화 내용에서 참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YS는 미남이자 동안. 얼굴에서 하얀 빛이 나는 듯 했다. 사실 YS가 유신시절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가 잘 생긴 얼굴이 아니었을까 한다. 귀공자 풍의 얼굴에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귀를 덮은 장발, 그리고 날씬한 몸매에 간혹 청바지 차림으로 인터뷰 하는 신문사진을 보고 반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유신 말기에 청년들의 반체제 문화를 상징하던 통기타...청년문화론...등과 감각적으로 쉽게 이어지는 인물은 단연 YS였다. 그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상징하는 듯 했다.

행동거지에도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거의 없었다. 항상 미소짓는 얼굴. 모든 질문에 그는 낙관적으로 답했다. 무엇을 물어보아도 결국은 민주주의하면 다 해결된다는 듯한 민주주의 일원론이라고나 할까? 민주화만 되면 대한민국에서 모든 걱정거리는 사라지리라는 희망찬 낙관이었다.

   
▲ 지난 1998년 1월6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에서 첫 주례회동을 갖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반면에 DJ는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부터 YS와 사뭇 달랐다. 몸집도 YS에 비하면 다소 컸다. 생김새는 YS 못지 않은 미남이었고 얼굴에서 역시 광채가 나는 듯 했다. 행동거지는 YS처럼 경쾌하지 않고 매우 신중하였다. 마치 망명 정객을 보는 듯한 비감한 분위기랄까? 인터뷰에 대한 답변도 YS에 비하면 논리적이고 다변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다시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측근들에게는 YS에 비하면 매우 엄하게 대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동교동 응접실에는 자신이 표지 인물로 나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표지가 놓여 있었다. 제목은 “폭풍같은 귀국(Stormy Homecoming).”
당시 필리핀에서 베니뇨 아퀴노 상원의원이 귀국하다 공항에서 암살당해 국제적인 공분을 샀다. 이 사건은 필리핀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DJ의 귀국은 필리핀 민주화 운동을 의식한 사건이기도 하였다.

당시 DJ 측근들이 자주하던 말 중의 하나가 “한국에는 DJ와 YS 두 인물이 있지만 비행기 타면 DJ 한 사람만 보인다” 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YS가 지명도가 높지만 국제적으로는 DJ가 더 많이 알려졌다는 말이다. 양김씨가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하면 당연히 DJ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도동 사람들은 단일화 후보가 YS로 정해질 것이라는 점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해보지 않은 것 같다.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양김이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하리라고 낙관했다. 그러면 노태우 후보 정도는 가볍게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당시에 필자는 과거 DJ의 측근이었던 김상현 전 의원과 가끔 만나 정치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단일화가 안된다고 일찌감치 내다 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 과거에도 한 쪽이 당권을 차지하면 상대편에게는 단 한 개의 당직도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의 야당인 새민련에게까지 맥맥히 이어져 오는 듯 하다.) 그리고 누구든 출마를 포기하면 그날로 지지자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정치자금도 한 푼도 들어오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즉 정치인생이 종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설마...했는데, 결국 양 김씨는 모두 대통령에 출마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하며 낙선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노태우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직을 각각 차지하였다. 반대자들로부터는 다들 대통령병 환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권력에 강하게 집착하였던 사람들인지라 원하던 자리를 차지한만큼 개인적으로는 원도 한도 다 풀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권위주의 통치를 겪으며 민주화를 열망하던 많은 국민들의 원도 한도 다 풀렸을까?

   
▲ 2014년 5월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30주년 기념식 심포지엄에서 상도동계·동교동계 인사들이 함께 앉아 토론회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YS는 ‘문민정부’, DJ는 ‘국민의 정부’라고 각각 스스로를 규정했지만 정치이념을 두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DJ가 더 좌파적이라고 하고 당시 재야 좌파로부터 비판적 지지를 얻어내긴 했지만, YS도 취임사에서 민족을 최상위에 놓은 사람이다. 비전향 장기수를 조건없이 북송한 사람도 YS이다. 김일성이 죽지만 않았으면 YS와 정상회담을 했을 것이다. 소급법을 만들어 두 전직대통령을 구속한 것이나 지방자치를 무차별로 확대한 것이나 모두 양 김의 동의로 이루어진 것이다.

잘 나가던 대한민국이 외환위기를 맞아 경제주권을 상실하고 중산층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도 양 김씨의 합작이다. YS의 경제개혁안을 DJ가 무력화시켰다고 하지만 그처럼 중요한 사태가 몰아쳐 올 것을 알았다면 읍소를 하든 국민투표를 하든 통과시켰어야 하지 않았을까?

젊은 피를 수혈한다고 하면서 국회나 행정부에 좌파들을 무분별하게 침투시킨 것도 두 사람의 공로(?)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교과서 좌경화 사태나 민노총 과격화 사태 등 모두 양 김씨 체제에서 열매를 거두기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두 김씨가 국민에게 안긴 가장 커다란 좌절은 뭐니뭐니 해도 민주화를 가장한 노골적인 지역주의의 만연이 아닐까 한다.

유신시대와 5공시절 많은 국민들에게 민주화란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여 양 김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었다. 두 김씨가 거의 초인적인 지위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국민들의 간절한 민주화 열망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두 사람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정말 많은 댓가를 치루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의 구호처럼 그야말로 “싸우면서 일했다.”

하지만 국민들과 대한민국은 적지않은 손상을 입었다. 좌우로 갈라지고, 지역으로 갈라지고, 빈부로 갈라지고, 노소로 갈라지고, 남녀로 갈라지는 등 갈등이란 갈등은 모두 노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도동과 동교동의 구 정객들이 30년만에 모여 DJ, YS의 유훈 실천 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유훈이라는 말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통치’라는 말이 연상돼 거부감부터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실제로 무슨 유훈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칠푼이’라고 했다는 YS가 통합 화합하라고 했다는데 진짜 유훈인지는 잘 모르겠다. DJ는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SNS를 통해 “(안되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언제 어디서나 무차별적으로 집요하고 끈질기게 저항하라는 뜻이다.

이제는 노인이 된 상도동과 동교동의 정객들의 모임을 TV뉴스를 통해 보았다. 아주 짧은 뉴스였다. 뉴스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YS, DJ가 연이어 대통령이 되고 저 분들이 장관, 국회의원이 되어 세도를 누리는 동안 대한민국의 마음이 조각조각 갈라졌다는 사실, 대한민국의 경제는 하염없이 주저앉았다는 사실, 지금도 청년들이나 장년들이나 노년들이나 국민들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과연 저들이 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저들이 유훈이라는 말을 내놓기 전에 지난 시대 자신들 주군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먼저 털어놓아야 대한민국의 미래로 가는 문이 제대로 열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태영 언론인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팝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첫 내한 공연은 아쉬움만 남았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온라인 쇼핑몰 대표 이희은이 악플러들에게 칼을 빼들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84 , 603(운니동, 가든타워)  |  회사직통번호 : 02)6241-7700  |  팩스 : 02)6241-7708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 00574 | 등록일.발행일 2008.5.8   |  발행인 : 이의춘 | 편집인·편집국장 : 민병오 |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사성
Copyright © 2013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