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학자·전교조, 친미주의자·기독교인·지식인 싸잡아 비판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논란을 한동안 덮었다. 그러나 눈은 잠시 땅을 덮을 뿐, 녹고 나면 지면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김 전 대통령 기사가 사라지고 나면 한동안은 민노총의 폭력시위 이슈가 또 지면을 장식하겠지만 적절한 이슈가 필요할 때 역사교과서 문제는 다시 거론될 것이다.

그래도 다들 잠시 추모의 시간을 갖는 동안에도 끈질기게 유관순 열사를 다룬 정부의 홍보 광고를 문제 삼은 칼럼이 한 전문지에 실렸다. 이전에도 좌파 언론의 끈질긴 공격 대상이 됐던 홍보 광고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알려진 이 광고는 조롱의 대상까지 됐다.

이미지 광고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점이 결국 반박의 빌미를 제공했고 결국 정부는 좌파 언론의 비판에 눈치를 보고 광고를 다시 만들었다.

   
▲ 일본 북한 교과서에도 실린 유관순, 한국에서는 누락됐다. 사진은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중 유관순 서대문 수형카드 원본이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서 검색 확인 가능하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
그런데 사실 그럴 일이 아니었다. 정부의 인식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 대응이었다. 교과서기술과 교육과정의 차이도 모르는 비판에 겁을 먹고,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변화의 과정도 모르는 엉터리 비판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정부 공무원들에게는 유관순 열사를 지키는 일보다 민원과 항의에 시달리지 않는 일이 중요한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좌파에서 이 광고를 끈질기게 비판한 것은 취약한 팩트 때문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요즘 역사교과서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감성’적으로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의 실태를 처음 알았을 때 느꼈던 충격을 잘 대변하고 있는 광고였다.

처음 역사교과서 실태를 접했던 당시 필자에게 남침이냐 북침이냐 같은 설문조사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친일을 비난하고 민족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특정 독립운동에 대한 기술의 비중을 교과서에서 대폭 줄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교과서에서 지운 것은 실력양성, 외교, 시민운동을 이끈 서구 학문을 배운 지식인들의 독립운동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유관순 열사다.

특정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술을 줄인 이유는 그들의 사관에 있다. 유관순 열사는 미국 제국주의 영향력 아래 있는 감리교단이 설립한 이화학당을 다닌 미제의 앞잡이다. 또 노동자나 농민으로 대변되는 노동계급이 아닌 엘리트 지식인이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기독교인이었고, 폭력무장 투쟁이 아닌 평화적인 시민운동을 했다. 민중사관에서 볼 때는 기술되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가는 진심이 드러나니 그들은 이런 표현을 쓴다. 민중사관에 심취한 정치세력과 집필자들이 이들을 배제하는 이유는 그들의 기술에 따르면 ‘친일’이다. “친일파가 유관순을 발굴해 이화학당 출신의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김모 교수의 발언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궁색한 변명이다. 친일파가 발굴을 했든 어쨌든 대한독립을 위해 그 정도 희생을 했다면 기려야 마땅한 일인데, 그러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친일파가 발굴해서 싫은 것이 아니라 싫기 때문에 친일파가 발굴했다는 딱지를 찾아서 붙인 격이다. 그들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데 마땅히 비난할 말이 없을 때 들고 나오는 전가의 보도 ‘친일파’를 휘두르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민족의 영웅들을 ‘민중사관’이라는 비뚤어진 사관에 의거해 배척한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좌파 언론들이 비판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기사를 쏟아내기는 했지만 사실 출처는 모두 하나다. 전교조의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자료다. 궁색하게 전교조에서 나와 별도의 모임이 됐다느니 한국교총 회원도 속해 있다느니 변명하지만, 집 나와서 수혈 좀 받았다고 유전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전교조에서 받아온 자료로 만든 기사들을 보면 무지한 건지 사기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관이다. 그런데도 국정화를 그래서 해야 한다고 기치를 높이던 정부와 여당도 그 궤변을 반박하지도 못하고 꼬리를 내리니 국정화를 지지하지 않는 필자라도 꽃다운 나이에 모진 나라를 위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가족이 몰살당했던 유관순 열사를 위해 하나하나 짚어보겠다.

   
▲ 서울중등교장평생동지회가 지난 16일 광화문 청계광장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울중등교장평생동지회 회원들은 정부의 중학교 역사 과목,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의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사진=미디어펜
이들이 먼저 지적하는 것은 박정희 정권 때 국정교과서에도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술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중간제목에서도 이 부분을 유독 강조했다. 국정교과서는 유신교과서라는 인식에 기초한주장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는 박정희 정권 때가 아니라 그 이후 김대중, 노무현정부때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돼 왔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기에는 유관순 열사가 등장했다.

이 부분을 변명하려 이들은 2002년부터는 다시 유관순 열사가 빠졌다며 국정 시절에도 유관순이 없었다는 주장을 강화한다. (이들은 유독 이 순간에만 당시에도 국정 교과서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마치 당시부터 검정체제가 도입된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항상 말하는 논리대로라면 김대중 정권의 과오다. 국정체제는 정권의 입맛대로 교과서를 만드는 체제라고 하던 그들이 아닌가. 그리고 실상도 그러할 것이다.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좌파세력이 대거 공교육 정책에 자리를 차지했던 정권이기 때문이다. ‘검정체제’가 아니라 ‘좌파세력’이 민중사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유관순 열사를 들어내는 일을 자행한 것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중학교 교과서에서 검정체제가 되면서 기술이 늘었다는 얘기를 한다. 중학교 교과서에 기술이 늘었냐 줄었냐가 논지가 아닌데 논지를 일탈한다. 왜냐하면 고교 교과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변명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술이 다시 늘었다지만 이는 유관순 열사가 빠진 사실에 대한 지적이 확산되면서 교육부 수정요구를 한 결과일 뿐이다. 그 와중에도 절대로 유관순 열사를 넣지 않은 교과서도 한 곳 있다.

그러면서 이들이 들이대는 논리가 초등, 중학, 고교 교과서의 집필기준이 달라서 고교 교과서에 유관순 열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인물사 중심이지만 고교는 3·1 운동 전체의 전개과정을 파악하는 단계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는 교육과정에 대한 언론의 무지 혹은 알면서도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세력의 비양심에 기인한 주장이다. 전체적인 역사 교육과정의 접근법이 다른 것은 맞다. 그러나 교육과정이라는 것은 전체적으로 배워야 할 큰 틀의 내용을 제시하는 것일 뿐 무슨 내용을 기술하라고 일일이 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고교 교육과정에서 3·1운동의 전개과정을 기술하라고 하지 유관순 열사에 대해 기술하라고 하지는 않는 것이 교육과정이다. 이들이 또 주장하는 ‘고교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 역시 대부분의 경우에 특정 인물의 기술 여부를 일일이 거론하지는 않는다.

교육과정에 대한 이들의 주장이 허위인 것을 밝히는 데는 많은 논쟁이 필요하지 않다. 간단한 질문 하나면 된다. 한 번 물어보자. 그렇게 인물사 중심이 아니라서 유관순 열사를 기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왜 김일성은 별도로 박스를 만들어서 다뤘는가? 그렇게 들이대는 ‘고교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김일성을 기술하라는 말은 있어서 기술한 것인가? 그러면 결국 인정할 것이다. 기술하라는 말이 없어도 상황을 설명하는데 필요하면 기술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나라 무장독립운동을 설명하는데 김일성의 부풀려진 업적을 써주는 것이 3·1운동을 설명하는데 유관순 열사를 기술하는 것보다 적절한 것인가?

물론 지금의 교육부가 무능해서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술을 일일이 넣도록 못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관순 열사를 민중사관에 의해 자의적으로 뺀 전교조와 좌파 학자들의 과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관순 열사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제의 앞잡이들, 공산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인들, 노동계급이 아닌 지식인들, 무장투쟁을 하지 않은 시민운동가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해방 이후 독립국 대한민국이 성립할 수 있는 바탕을 쌓은 독립운동세력의 업적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노동계급의 투쟁에 비하면 대한민국이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공산주의 사상인 참교육(眞敎育)을 그대로 수혈해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지우려는 이들이야말로 친일파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렇게 만든 교과서가 친일교과서요, 김일성 독재까지 미화하니 그야말로 친일독재교과서가 따로 없다. ‘친일독재교과서 반대’ 지지한다. /박남규 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