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2015년 12월 4일은 독일 출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사망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나 아렌트 필생의 역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 하나만으로도 기억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같은 반인륜적 재앙은 광신자나 싸이코패스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력에 순응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 없음에 의해 잉태되고 자행됐다는 의미로 나온 표현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였다. (중략)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中)

실제로 히틀러는 쿠데타가 아니라 선출에 의해 권력을 잡았다. 이제 와선 거악(巨惡)의 상징이 된 나치의 전체주의는 아주 느린 속도로 마각을 드러냈으며,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일에 거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히틀러 정권에 대한 외부의 비난은 지나친 것으로 보였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1933년 베를린에 부임한 미국 대사 윌리엄 도드의 딸인 마사가 당시 일기장에 적은 내용을 보자.

"나는 언론이 독일을 심하게 비방한다고 느꼈으며, 독일인들의 따뜻함과 친절함, 나무향기와 꽃향기가 그윽한 부드러운 여름밤, 길거리의 평온함을 그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1933년 7월 13일 마사의 일기)

   
▲ '전체주의'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였다. /사진='전체주의의 기원' 표지

1906년 독일 린덴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한나 아렌트는 쾨니히스베르크와 베를린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한 것은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그 유명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였다. 둘의 관계는 결국 혼외 연인으로까지 이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아렌트는 나치에 협력했던 하이데거를 위해 전후 청문회에서 증언을 해주기도 했다.

악인의 이마에 ‘악인’이라는 표시가 적혀 있는 것은 결코 아님을 간파한 것은 한나 아렌트의 커다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는 말을 대중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반체제 마르크스주의자 빅토르 세르주(Victor Serge)였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이라는 책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정반대 이념처럼 보이는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전체주의’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있음을 간파했다.

전체주의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는 것은 대중들의 무사유다. 숙고하지 않는 다수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주어진 권력을 방치할 때 대중은 우중(愚衆)으로 전락한다. 최근 관객 4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하고 있는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처럼 “적당히 짖다가 알아서 조용해지는” 짐승의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1975년 12월 4일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순간까지 원고를 집필하고 있었던 한나 아렌트가 마무리 짓고자 했던 얘기도 결국 우중으로 전락하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2015년 12월 4일은 그런 날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