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진보 깨는 정치적 혁신 한 일 없어…기술보다 진성성 문제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공동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남겼다는 묘비명이 떠올랐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가 6일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겠다”며 혁신전당대회를 거부한 문재인 대표에게 재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보고 든 생각이다.

기존의 낡은 정치체제를 혁파하고 국민의 마음을 담아내는 희망의 큰 그릇을 표방했던 새정연은 창당의 한 축이었던 안 전 대표가 이렇게 최후통첩을 날리면서 1년 8개월만에 쪼개질 위기에 놓였다. 새정치라는 지분을 가진 안 전 의원이 탈당한다면 지금의 새정연은 완벽한 친문·운동권 정당으로 남게 된다. 안철수에 지긋지긋해하던 친노 주류도 초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안 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것은 자신이 새정치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노력했는지였다. 그런데 필자의 머릿속에 우선 든 생각은 그가 그렇게 비판하는 당의 낡은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노력했는지 ‘잘 모르겠다’였다.

당을 위해 헌신하지 못한 안철수의 공허한 문재인 비판

안 전 대표가 보여준 건 세간의 비판처럼 고비 고비마다 철수하는 정치였다. 그것이 무슨 커다란 희생과 명분 때문에 내린 담대한 결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안 전 대표는 자신이 서울시장 후보직, 대통령 후보직을 양보했으며, 창당도 포기하고 ‘김한길 민주당’과 통합했다고 자랑스레 거론했다. 또 그는 "저는 이제까지 늘 야당의 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한 선택을 해 왔다.

고통스럽고 힘든 선택이었지만 단 한차례도 분열의 길을 걸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양보가 과연 야당의 통합과 미래를 위한 고심의 결단이었나. 안 전 대표 멘토 역할을 하던 윤여준 전 장관이 2011년 12월 시사인과 한 인터뷰가 있다. 윤 전 장관은 안철수의 서울시장 도전 포기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장 나가겠다고 한 건 8월29일 밤이고, 기사가 나온 건 9월1일, 못 하겠다고 한 건 9월2일인가 그렇다. 아침에 통화로 그랬다.”

“전략... 안 교수가 시장직 안 나가기로 한 걸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길래 이렇게 얘기했다. “이렇게 발칵 엎어놓고 안 하겠다고 하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빠지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박 변호사가 정당 후보가 아니라 시민 후보라는 전제에서 그 사람에게 양보하고 빠지면 그래도 명분이 서는데 그냥 나 안 한다고 하면 장난이고 시민의 비난이 온다”라고.” 윤여준 전 장관의 이런 증언에 더 이상 덧붙일 게 없어 보인다.

‘서울시장 한번 해볼까’ 했다가 마는 수준, 이걸 야당의 미래를 생각한 헌신과 고통의 결단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대선후보직 포기는 야당 미래를 위한 헌신이었나. 2012년 11월 여론이 불리해지면서 안철수는 단일화 협상을 중단하고 11월 말 대선후보를 사퇴했다. 이후 선거유세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문재인 후보 측이나 당 안팎의 불만이 높아지자 선거 12일전 처음 유세장에 얼굴을 보였다. 그리곤 투표 당일엔 미국으로 가버렸다. 이 역시 야당의 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한 대승적 처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 안철수 의원을 보면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남겼다는 묘비명이 떠올랐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안철수의원이 6일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겠다”며 혁신전당대회를 거부한 문재인 대표에게 재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안철수 정치의 진짜 문제는 기술이 아닌 진정성이다

유감스럽지만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1월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를 책임질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이 열리는 날 그 시각, 언론보도에 의하면 안 전 대표는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당 내에서마저 혀를 차는 반응이 언론을 통해 나왔다. 당의 낡은 운동권 체질을 바꿔 정치 혁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이의 모습이라고 보기 힘든 것 아닌가. 5월 당 쇄신을 이끌 혁신기구 위원장을 문 대표가 제안했을 때 거절한 것도 마찬가지다.

안 전 대표는 혁신전대를 거부한 문 대표에 이렇게 얘기했다. “전당대회는 오히려 분열과 대결의 장이 될 거라고,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긋지긋한 대결 상황을 끝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건 문 대표 책임 하에 끌고 가겠다는 각오도 밝히셨습니다. 말씀대로 지긋지긋한 상황을 이제 끝내야 합니다. 그런데 문 대표께 묻습니다. 그 각오와 결기로, 전당대회에서 국민과 당원께 재신임을 묻겠다는 선택은 왜 하지 못하십니까?”

필자는 거꾸로 안 전 대표에게 무척 궁금하다. 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줄곧 새정치를 외쳐온 자신은 왜 당의 혁신을 위해 몸을 던지지 못했나. 문 대표를 비판하는 그 올곧음으로, 그 각오와 결기로 왜 새정연을 바꾸기는커녕 잔잔한 물결한번 일으키지 못했나. 낡은 진보청산과 새정치가 절실했다면 당을 바꾸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면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해도, 설령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무모함이라고 해도 혁신위원장을 맡아 몸부림이라도 치는 것이 상식적인 모습 아닌가.

설령 그 칼에 자신이 베어도 안 전 대표가 강조한 당을 위한 헌신이 중요했다면 그랬어야 했다. 거기에 무슨 계산이 있고 세력을 따질 수 있겠나. 하지만 안 전 대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새정치가 무엇이라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없다. 언제나 친노 패권주의 비판을 위한 근거로써 새정치 논리만 앞세우기 급급했다. 안 전 대표의 진짜 문제는 정치에 서툰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진정성 그 자체의 문제다.

문재인식 신물 나는 정치 청산이 안철수가 가야할 길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는 이제 다시 거론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이 아프도록 지적하듯 문 대표와 친노운동권 주류세력의 시대착오적 이분법 정치는 야당을 망치고 국민을 몹시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문 대표와 친노가 믿는 건 새누리당을 2번 연속 밀어준 국민이 다음엔 반드시 야당을 선택하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그런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겠다는 배짱 좋은 기득권 수호 뿐이다.

안철수의 새정치가 설령 방법과 목적이 구체적이라도 이런 주류의 망상적 착각을 깨고 당을 혁신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안 전 대표는 여전히 막연하고 모호한 새정치 구호의 비판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그러니 당 안팎에서도 안 전 대표의 행보를 그저 주류에 대한 발목잡기 정도로만 치부하고 짜증스런 반응부터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안 전 대표가 마지막 최후통첩을 하면서 당 분열이 가시화되자 친노 패권주의 주류 진영은 분열을 우려한다는 반응부터 보이고 있다. 어떻게든 두 초선 전현직 대표가 화합해야 한다고 다독인다. 두 사람이 양보 없이 가다가 당이 파탄에 이른다면 내년 총선과 이후 대선도 볼 것도 없이 참패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발상이야말로 새정연이 망하는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곪고 썩었는데 덮는다고 해법이 아니다.

특히 안 전 의원은 지금까지 외쳐온 새정치를 이제 증명해보여야 한다. 스스로 완전히 부숴질 것을 각오하고 투쟁을 해나가던가, 친노 패권주의 청산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과감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계산하고 몸을 사리는 정치가 아니라 서툴러도 부딪히며 스스로 깨져야 한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던져 깨질 때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담대한 결단이 필요한 것은 문 대표 뿐 만이 아니다. 많은 국민은 야당의 친노패권주의는 물론이거니와 안철수의 구호정치에도 이제 신물을 내고 있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