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담 칼럼니스트

이성녀 정소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외도 한번 없이 십년 넘게 스타벅스만 찾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매장 음악. 12월도 되기 전부터 연말이라고 우기고 싶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기특하게도 이곳엔 벌써 캐럴이 들린다.

싸늘해진 공기에 한 번 놀라고 들리는 캐럴에 한 번 놀라고. 스타벅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래 어느덧 연말이다. 한해 중 가장 춥고 가장 따뜻한 때.

징글맞은 한 해를 보냈을 때도 그럭저럭 괜찮은 해를 보냈을 때에도 그저 술만 먹다 한 살 더 먹게 되었을 때에도 연말은 늘 좋다. 들뜨고 설렌다. 어쩌면 참 이상한 일인 게, 연말이야말로 ‘이별’ 그 자체가 아닌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이. 열두 달을 가득 채운 수많은 이야기들과 우리는 곧 이별해야 한다. 그런데 왜 좋지?

너무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는 반드시 온다는 걸. 12월이 지나면 1월이 온다는 걸 우린 몇 살 때 깨닫게 되었을까. 다섯 살? 여섯 살? 어쨌든 그걸 알게 된 후 한해가 지나면 새해가 온다는 약속은 단 한 번도 어겨진 적이 없다.

그러니 그 어떤 이별에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해주려고 이 글을 쓴다. 연인과의 이별을 앞둔 당신에게.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떠나간 걸 알게 된 당신에게. 가까이 지내던 친구와의 관계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달은 당신에게. 부모님으로부터 하루하루 멀어지는 일이 마치 죄를 짓는 듯 느껴져 괴로운 당신에게.

당신의 맘을 아리게만 하는 무심한 그 사람은 당신의 인연이 아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당신 생각에 눈물이 핑 돌고 마는 애틋한 연인이 저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당신은 지금 그 사람과 이별해야 한다.

십년 후 당신 곁엔 가족보다 가깝고 연인보다 애틋한, 가장 오랜 한명의 친구만이 남아 있다. 세월의 부침에도 늘 같은 자리에서 당신의 곁을 지켜준 한 명의 친구. 그 소중한 한명이 곁에 남기까지 당신은 앞으로도 여러 명의 친구와 멀어져야 한다.

부모님과 멀어지는 건 어른이 되는 0번째 단계다. 나이만 성인일 뿐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못 이룬 상태의 삶은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의 보태짐에 지나지 않는다. 아빠의 딸, 엄마의 아들이 아닌 그저 독립된 한 명의 인간이 되어야 비로소 당신의 진짜 인생은 시작된다. 부모자식간의 홀로서기는 늦어질수록 서로 불행만 더해질 뿐이다.

   
▲ 일러스트=유한을 서울여대 시각디자인3

캐럴이 흐르는 스타벅스에 앉아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원고 쓰러 스타벅스 가는 길이라고 문자했더니 어느새 건너편에 와 앉아있는 남자친구. 속 썩이던 그 엑스놈이랑 안 헤어졌으면 못 만났다. 술 먹자고 아까부터 계속 카톡하는 친구놈. 15년 전엔 친한 친구가 한 반에 열 두 명이었는데 ‘15년산’ 한 놈이 남기까지 나는 매년 한명 이상의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멀어졌다. 마음먹으면 오늘밤에라도 당장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10시 통금’을 외치던 엄마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나는 대학시절 네 번의 가출을 했고 엄마와의 절연을 선언한 건 공식적으로 세 번 쯤 된다.

그 어떤 이별도 실은 그리 슬퍼할 일이 못된다. 단지 깨달으면 된다. 12월이 지나면 반드시 1월이 온다는 걸. 가장 좋은 것은 반드시 이전의 덜 좋은 것과 결별해야만 당신을 찾아온다는 걸.

   
▲ 이원우 기자

감성남 이원우
2016년, 기웃거리는 원숭이가 되어줘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웃어본 기억이 있는가? 나는 있다. 때는 1998년, 나는 중학생이었고 한문 시간이었다.

12간지에 대해 수업하시던 선생님은 별안간 당신이 병신년(丙申年) 출생이라는 말로 나를 폭소의 지옥으로 몰아세웠던 것이다. 환갑을 맞으려면 18년 남았다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은 올해 예순이셨을 것이고 내년이면 드디어 대망의 환갑을 맞으실 것이다. 정말이지 병신년 환갑 맞는 얘기가 아닌가?

탈장을 할 기세로 웃는 와중에도 나는 생각했었다. 병신년이라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KBS 연기대상 클로징 멘트에서 “시청자 여러분 병신년 한 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는 거야? 월간 잡지의 칼럼 코너도 “병신년 한 해도 파이팅”으로 마무리 되겠네? 그런 식이라면 병신년에는 일본 사람들이 초밥을 먹지 않게 되고 태국에선 코끼리가 멸종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멀쩡하게 시간은 흘러 2015년의 12월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은 2016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캐럴은 거리를 물들이고 산타 할아버지는 어디선가 선물 목록을 체크하고 있을 듯한, 예의 똑같은 겨울이다.

지금은 병신년이라는 그로테스크한 명칭조차 그다지 우습지 않다. 지난 18년 동안 병신년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우습고 놀랍고 기이한 사건들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대 중반 이유미 초대 편집장의 꼬임에 넘어가 창간 작업에 참여했던 바이트는 어느덧 창간 10년을 맞았고,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이곳에서 대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고 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꼰대 같은 소리를 이어 보자면,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삶이 내 의도대로 진행된 순간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세 권의 책을 출간하고 기어이 글쟁이의 궤도로 진입한 나지만 책을 내게 된 것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게 된 것도 절반 이상은 우연의 힘이었다.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내 마음대로 된 것은 없었다. 집착하고 붙잡아도 떠나갈 것들은 떠나갔다. 설마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욕심조차 내지 못했던 것들 중에서도 기어이 내 것이 될 것들은 내 옆에 남아 주었다.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지금은 절반쯤 체념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최대한 많이 ‘기웃거리는’ 것이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면 도전해 보는 거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해도 본전이라는 그 산뜻한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면서. 그렇게 조그마한 주사위를 던져보는 삶의 작은 스릴을 즐기다 보면 어느 틈에 당신의 삶은 놀라울 정도의 총천연색으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2016년은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한다. 어쩐지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원숭이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그런 이미지 하나를 붙잡고 2016년 한 해를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해 보면 어떨까 싶다. 병신년 한 해도 파이팅. /이원우 기자, 정소담 칼럼니스트

* 이 글은 대학생신문 '바이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