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86)- 골프는 인내심의 스포츠

골프는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운동이다. 골프만큼 곳곳에 분노의 도화선과 지뢰가 깔려 있는 운동도 드물다. 앞 조가 지나치게 느리게 플레이한다든가, 뒷조가 때린 볼이 근처에 떨어졌다든가 하는 등에서 생기는 사소한 화로부터, 동료의 부주의나 잘못으로도 노여움을 얻게 된다. 때로는 캐디로부터도 노여움의 전염병을 얻기도 한다.

골프장에서 겪는 분노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으로부터 생기는 분노다. 좋은 컨디션인데도 연속적으로 OB를 낸다거나, 맞는 소리는 좋았는데 공이 벙커나 러프로 날아가버리거나, 눈감고 쳐도 될 아주 가까운 거리의 퍼팅을 놓쳤거나, 파5홀에서 투온 할 수 있는 거리에 드라이브 샷을 날려놓고 뒷 땅을 쳐 겨우 4온에 머문다거나, 버디찬스를 놓침은 물론 3퍼트를 해서 보기를 하는 등 분노가 일어날 여지는 수없이 많다.

골프를 쳐보면 개개인의 진면목이 숨김없이 드러나듯이 인내의 깊이도 금방 알 수 있다. 평소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도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삭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흔치 않다. 잘 참아 나가다가도 끝내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처럼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 골프를 쳐보면 개개인의 진면목이 숨김없이 드러나듯이 인내의 깊이도 금방 알 수 있다. 평소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도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삭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흔치 않다. 잘 참아 나가다가도 끝내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처럼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삽화=방민준
미국의 프로 래리 스텍하우스는 기묘한 습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스 샷을 한 후 분노를 못 삭여 자기 손이나 팔을 나무둥치에 거칠게 내리치든가 자기 주먹으로 자기 턱을 쳐 그 자리에서 실신한 적도 있을 정도다. 캠퍼오픈 때는 3퍼트를 한 뒤 퍼터로 자기 다리를 강타, 다리뼈에 금이 가 병원으로 실려 간 적도 있다.

1972년 한 경기에서는 자기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스코어를 기록하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골프장을 빠져 나온 그는 근처의 한 장미원에 이르자 장미원 안으로 들어가 가시 돋친 장미나무로 다리를 후려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분을 못 이겨 장미가시를 바닥에 깐 뒤 그 위에 마구 뒹굴어 온몸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렸다. 이 바람에 그는 두 달 동안 경기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어떤 대회에서 홀컵 1m 거리에서 5퍼트를 하고 난 뒤 분을 이기지 못해 자신이 아끼던 포드승용차의 앞 유리를 박살내고 문짝과 시트를 뜯어 내버렸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그는 보닛을 열고 엔진까지 분해하고서야 겨우 화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1960년대에 명프로로 활약한 미국의 데이브 힐은 그의 자서전에서 “나는 참을성이 없다. 화나면 샤프트를 무릎에 대고 꺾었다. 그때마다 나는 벌금을 물어야 했다. 1961년 한해 나는 퍼터를 14개나 꺾어 개당 100달러씩 모두 1400달러를 벌금으로 물었다”고 쓰고 있을 정도다.

거의 모든 골프교습서에 Control(통제) Confidence(확신) Concentration(정신집중)을 골프의 필수 3요소(3Con)로 들면서 유독 컨트롤을 앞세운 것은 그만큼 골프장에서 불같이 솟구치는 분노나 노여움을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윈스턴 처칠의 골프정의를 들어보면 골프는 분노의 도가니가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골프란 컨트롤 불능의 구체(球體)를, 그 목적에 맞지 않게 만들어진 도구를 써서, 접근 곤란한 구멍 속에 넣으려고 하는, 헛된 노력의 게임이다”라고 정의했다.
다분히 적의에 찬 말이긴 한데 대영제국의 재상을 지낸 그도 골프장에서 컨트롤 불능의 상태에 여러 번 빠져본 뒤 분노를 이기지 못한 경험을 했었기에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호주의 백상어 그렉 노먼은 도전적인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이 강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도 성급한 기질을 숨길 수 없었다.
1986년 US오픈이 벌어진 뉴욕 근교의 시네코크 힐즈에서의 일이다. 이 골프장은 여느 미국풍의 골프장과는 달리 기복도 심하고 바람도 거세며 러프는 사람 키를 넘을 정도였다. 특히 메마른 그린에서 선수들은 골탕을 먹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파를 잡는데 급급한 가운데 오직 그렉 노먼은 언더파를 늘려갔다. 경기 전부터 우승후보에 올랐던 그가 버디를 잡으면 미국의 관중들은 “우- ”하며 야유를 보내고 발을 구르는 등 노골적인 시샘을 표현했다. 그래도 노먼은 냉정하게 플레이했다. 우승을 향하여 자기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침내 한계가 오고 말았다. 붉은 얼굴의 술 취한 중년의 사내가 노먼을 따라다니며 한타 한타에 야유를 보냈고 다른 사람들도 이에 가세했다. 노먼은 취한과 말싸움을 하다 “끝나고 보자, 가만 두지 않겠다”고 화를 냈다.

이후 노먼의 스코어는 엉망이 됐다. 분노의 불길에 휩싸인 것이다. 그는 메이저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치더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붙지 않는 인내심을 기른 후인 1992년에야 브리티시오픈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법구경은 「분노의 장」에서 인내의 중요성을 이렇게 갈파하고 있다.
‘마구 달리는 마차를 몰듯 불같이 일어나는 노여움을 억제하는 사람을 나는 진짜 마부라고 부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고삐만 쥐고 있는데.’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