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로 추락하는 등 저유가 추세가 고착화되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함께 커지고 있다. 내수와 함께 한국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전선에는 저유가가 악재로 작용해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한때 저유가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주요 에너지원인 원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경제에 '호재'로 여겨졌다. 싼 기름 값 덕에 기업들은 생산을, 개인은 소비를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저유가 추세는 세계 경제가 침체하면서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심화한 것이라 오히려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수출 단가 하락으로 무역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와 중동의 경기 불황으로 건설 수주에도 큰 차질이 예상된다.

◇저유가의 덫…내년 성장률 3%대 회복 어려울 수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 감축에 합의하지 못한 여파로 국제유가의 날개 없는 추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016년 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보다 2.32달러(5.8%) 떨어진 배럴당 37.65달러에 마감했다.

원유를 전량 수입해 사용하는 우리나라에는 국제유가 하락이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제유가 하락세는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낸다.

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급속하게 진행되면 저유가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저유가가 우리나라의 수입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수출 규모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 들어 금액 기준으로 한국 수출은 11개월째 감소했는데, 여기에는 저유가 영향이 컸다.

유가와 매출이 연동되는 석유화학의 수출 단가가 떨어지고 저유가로 산유국의 조선, 건설, 철강 수요가 감소해 이들 업종의 수출이 부진했던 것이다.

 

수출 감소는 더 나아가 경제성장률을 갉아먹는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1.0%포인트였다. 내수와 더불어 경제성장의 쌍두마차 역할을 했던 수출이 이제는 성장을 억제하는 걸림돌로 돌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유가 흐름이 지속될 경우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에 이어 2%대에서 탈출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장기간의 저유가에 따른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저유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올 들어 산유 중심지 '중동' 수출 51% 급감

유가 하락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산업은 석유·화학 등 원유 생산 및 유통 관련 업종과 조선·건설 등 중동지역 건설 관련 업종이다.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급감하고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24% 줄어드는 등 저유가 여파는 수출전선에 깊은 주름살을 만들어 놓고 있다.

같은 기간 해외 건설 수주액은 406억 달러로 지난해 11월(570억 달러)의 70% 수준에 머물렀다. 중동과 러시아 등 산유국 경기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꺾였기 때문이다. 저유가가 신흥국의 경기 둔화를 심화시키면서 수요 둔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유가 하락 이후 수출 물가가 30% 이상 급락했는데도 수출 물량 개선세는 미약하다"며 "이는 세계 수요부진이 심각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세계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는 저유가가 이어져도 수출 물량이 개선되는 효과는 떨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 반등에도 원자재 수출국을 중심으로 한 경기 둔화 압력이 강해지면서 당장 신흥국을 대상으로 한 수출이 신통치 않다.

신흥국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58.2%를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다. 특히 올 들어 11월까지 중동지역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2% 줄었다. 러시아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 수출은 50.9% 급감했다.

◇디플레 우려 다시 증폭시킬 수도

국제유가 하락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증폭시킬 수 있다.

디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에 걸쳐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다. 이런 경제 환경에선 주가와 부동산 값이 함께 떨어지고 채무액의 실질가치는 늘기 때문에 기업, 가계 등 주요 경제주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1월에 1.0%를 기록해 12개월 만에 1%대를 회복했다. 그동안 0%대 성장률과 0%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

지난 3분기 성장률이 1.3%로 1%대를 회복한 데 이어 소비자물가 상승률까지 1%대로 올라서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완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국제유가의 하락세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 국제유가는 소비자물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직접적으로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떨어뜨린다. 간접적으로는 국제항공요금, 도시가스요금 등 석유제품 원가 비중이 높은 품목의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직·간접적인 1차 파급효과 이외에 2차 파급효과도 있다. 국제유가의 하락기간이 길어지면 기대인플레이션과 근로자 임금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확산되고 근로자 임금 상승률이 둔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물가가 하락하면 기업의 매출은 줄고 소비자는 소비를 더 미루게 된다. 결국, 기업의 투자도 줄고 임금도 떨어져 경제의 활력이 둔화될 수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은 글로벌 경제의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며 "이로 인해 국내 석유·조선·철강·기계 등 관련 수출 경기 회복 시점도 지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