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외법권지역 아닌 조계사가 형사피의자를 은닉하는 것은 법치 도전 행위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조계사에서 20여일째 은신 중인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당초의 약속의 뒤집고 "당장은 조계사를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조계사에 눌러앉아 12월 16일과 19일로 예정된 총파업과 ‘3차 민중총궐기’를 지휘하고 노동관계법 입법 저지 투쟁에 나서겠다는 뜻인 듯하다. 그는 노동관계법 입법이 중단되면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과 함께 경찰에 출두하겠다고도 했다.

경찰청장이 한 위원장 검거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힌 다음날인 오늘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조계사를 찾아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을 면담하려 했으나 조계종 측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한 위원장은 "공권력의 무도한 압박으로 신도들의 불편이 너무 크다…… 경찰 병력을 철수하라"며 신도들의 불편과 불만을 경찰 탓으로 돌리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불교계 안팎에서 한 위원장을 은닉하고 정부·경찰과의 중재에 나선 도법 스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비난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에 맞서면서 한 위원장 문제의 중재에 나선 도법 스님의 속 뜻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불교에서 위(上)로는 진리를 깨치고 도(道)를 이루어 부처가 되려고 정진하는 동시에 아래(下)로는 고해(苦海)에서 헤매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제도(濟度)하여 행복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한다. 이는 불교의 생명이자 대승불교의 근본정신이라 할 수 있다.

‘하화중생’의 ‘아래(下)’란 지혜를 얻지 못하고 괴로움에 빠진 중생계를 뜻하고, 중생을 교화(敎化)한다는 것은 고뇌하는 중생을 버리지 않고 법시(法施: 교법을 베풀어 깨닫게 하는 일), 재시(財施: 절이나 가난한 자에게 재물, 먹을 것, 입을 것으로 보시하는 일), 무외시(無畏施: 중생에게 두려움을 제거하여 평화로움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최상의 보시) 등을 베풀어 회향(回向: 자기가 닦은 공덕을 중생에게 널리 베풀어 중생이 깨닫도록 하는 일)하는 일을 말한다.

   
▲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8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한 조계사를 찾아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를 요청했다. 구 청장은 조계사를 찾아 한 위원장의 도피 행위를 더는 좌시할 수 없다며, 스스로 나가지 않을 경우 법적 절차에 따라 영장 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사진=YTN
그렇다면 조계종 화쟁위가 수배 중인 형사 피의자를 은닉하고 공권력에 맞서는 행위를 ‘하화중생’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화중생’은 속세(俗世)를 떠나 삼보(三寶: 佛寶·法寶·僧寶)에 귀의(歸依)한 불자가 고해 속의 중생이 깨달음을 얻도록 제도(濟度)하는 것이지, 스님이 속세의 일에 직접 나서서 중생의 죄를 덮어주거나 감면에 나서는 것은 불법(佛法)에도 벗어나는 행(行)이지 않은가?

지난 11월 19일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화쟁위가 종단의 기구이지만 자율적이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라며 회의 결과가 조계종 전체 의견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조계종도 “화쟁위가 어떠한 결정을 해도 이는 종단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치외법권지역이 아닌 조계사가 수배 중인 형사피의자를 은닉하고 공권력 행사를 막는 것은 국민과 국법을 우습게 여기고 법치에 정면도전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도법 스님의 과거 행적들을 들춰보면서 그의 의중에 의문을 갖는다.

2011년 12월호 신동아는 도법 스님의 캐릭터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도법 스님은 평범한 중이 아니다. 절에 앉아 시줏돈 세거나 참선한다고 골방에 처박혀 있는 중이 아니다. 그는 사회운동을 하는 중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생명평화운동이다. 1999년부터 그가 이끄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불교계의 대표적인 사회운동조직이다……”

도법스님은 1949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8살이 되던 해인 1966년에 출가했다. 1995년부터 실상사 주지를 맡았고, 1998년 실상사 소유의 땅 3만 평을 내놓고 귀농전문학교를 설립했다. 1999년엔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창립하여 귀농운동 차원을 넘어 생활협동조합, 대안교육, 환경연대 운동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1998년 말 조계종이 기존의 총무원과 정화개혁회의로 나뉘어 조계사에서 극심한 폭력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도법 스님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장'이자 화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런 경력을 가진 도법 스님은 지난 34대 총무원장 선거 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처럼 도법 스님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며 1988년 봉은사 폭력사태, 1998년조계사 폭력사태, 2004년 국보법폐지 기자회견, 2012년 제주해군기지 반대 참여, 2014 이석기 무죄석방 탄원과 통진당 해산 반대 등에 참여했다.

이와 같은 도법 스님의 진보적 행적 때문에 이번 사태와 관련한 그의 행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화쟁위의 결정이 조계종 종단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면 화쟁위원장이 사찰이 종교시설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막을 명분은 더더욱 없다. 조계종이 수배자를 은닉하고 계속 경찰의 법 집행을 막고 버틸 것이 아니라 은신 중인 수배자가 법에 따른 재판을 받도록 교화(敎化)하는 것이 참다운 ‘하화중생’을 실천하는 것 아닌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