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조갑제 대표가 1990년대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매달 엄청난 화제를 만들던 당시 ‘조갑제 편집장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라는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단 한 3일 정도 무단결근을 한 다음에, 4일째에 술 먹고 슬리퍼 신은 채로 출근을 해서, 책상 위에 다리 올려놓고 껌 씹고 앉아있는 정도쯤은 해줘야 화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적고 화내는 일은 더더욱 없는 것이 인간 조갑제의 면모라는 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가 급진적인 글을 쓴다고 알려져 있는 것은 그의 문장이 격앙돼 있어서가 아니라 요점만 간단히 직언을 하기 때문이다. 극우가 아니라 극사실주의다.

그런 그가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일베(일간베스트) 회원을 고소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40년 넘게 글을 써온 그가 누군가를 고소한 적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 보기 드문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인 박주신 씨의 병역기피 논란에 대해 조갑제닷컴 조갑제 대표는 지난 9월 한 종편 채널에 출연해 “만약 박주신 씨가 와서 (다시 MRI를) 찍으면 2012년과 똑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현재로서 높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를 확신하고 있던 보수 진영 대다수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배신감이 느껴질 만한 한 마디였다.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조 대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표면화됐다. 보수 성향 커뮤니티로 분류되는 일베에서 ‘현숙***’라는 닉네임을 쓰는 회원은 조 대표가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4억500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을 담아 비난글을 쓰기도 했다. 이에 조 대표 측은 허위사실 유포를 사유로 현숙***을 고발, 현재 사건은 서울동부지검으로 넘어간 상태다.

조 대표가 일베 회원을 고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보수 진영이 보여준 반응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구석이 있다. 고초를 겪게 한 가해자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의심 받을 만한 일을 했다’는 취지로 되려 조 대표를 비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박주신 건에 대해서만큼은 조갑제 대표가 100% 다 틀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에 대한 현재와 같은 매도와 비난, 인신공격의 길을 터주는 건 아니다. 발언하고 있는 토론 상대방을 조소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며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사진=TV조선 캡쳐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을 해야 하므로 현숙***를 성급하게 비난할 수 없다는 고상한 이유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보수 진영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어떤 논객은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꽤 많은 보수 인사들 조갑제 대표와 박원순과의 관계를 다들 의심한다’고 쓰기도 했다. 4억5000만 원이 허위사실이라면 현숙***가 처벌 받아야겠지만 조 대표가 의심스러운 건 맞지 않느냐는, 전형적인 ‘피해자 비난’ 논리다.

박주신 병역비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 조갑제 대표의 판단은 매우 심플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었다. 2012년 2월 22일 박주신의 공개 MRI 촬영 현장에 참관했던 기자들, 세브란스 병원, 병무청을 동시에 매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현재 보수 진영 내부에는 박원순 시장이 저들 각각을 어떻게 컨트롤했는지에 대한 논리가 이미 다 나와 있는 상태지만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요하는 부분도 많다. 그러다 보니 모든 논리의 귀결점은 ‘MRI 한 번 더 찍자’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박주신 병역 비리에 대한 판단까지 하진 않겠다. 다만 말하고 싶은 건 논쟁에 임하는 자세의 문제다. 조갑제 기자가 아무리 전설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인물이라 한들 2015년에 와서 틀릴 수 있다. 그는 신이 아니니까. 그의 발언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몇 가지 부분이 있었던 것도 맞다. 그렇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 비판하고 교정을 하면 된다.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조갑제 기자를 한순간에 ‘빨갱이’로 만들어버리고, 누구누구와 유착한 관계라는 의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마는 현재 보수우파의 태도는 어느 각도에서도 합리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홀로 설 용기는 없기에 패거리를 만들어야만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우중(愚衆)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선량해 보이는 진보 좌파가 알고 보면 더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말들을 많이 하지만, 좌파에서 우파로 아예 공식 전향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비난이 쏟아지지는 않는다는 게 다수 전향자들의 지적이다. 조갑제에 대해 원색적인 인신공격을 한다고 해서 안 찍을 MRI를 다시 찍게 되진 않는다는 걸 상기할 정도의 인내심도 현재의 보수에는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박주신 병역비리가 사실이라 한들 이런 수준으로 대한민국 보수가 과연 자생력을 갖출 수 있을까?

박주신 건에 대해서만큼은 조갑제 대표가 100% 다 틀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에 대한 현재와 같은 매도와 비난, 인신공격의 길을 터주는 건 아니다. 발언하고 있는 토론 상대방을 조소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며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보수의 미덕인 품위와 신중함, 사려깊음(prudence)까지 전부 내던지고 집단 속에 몸을 숨긴 채 음모론을 퍼다 나르고 있는 이들에게 정치란 대체 무엇인가. 선거가 없었던 2015년은 결집의 매개체가 없을 때 대한민국 보수의 민낯이 어떠한지를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