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내수 소비 침체가 길어지면서 국내 패션업계가 '글로벌 영토 확장'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주목할 점은 방식의 변화다. 과거 해외 바이어에게 완제품을 납품하던 1차원적 방식에서 벗어나 검증된 '브랜드 라이선스(IP)' 사업을 현지에 이식하거나 토종 '플랫폼'이 직접 유통망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포화 상태인 내수 시장의 한계를 'K-패션 시스템 수출'이라는 고부가가치 전략으로 극복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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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신사는 중국 시장 진출 100일(9월19일~12월27일)만에 온·오프라인 통합 누적 거래액(출고 기준)이 약 100억 원을 돌파했으며, 12월 31일 기준으로 110억 원을 기록했다고 9일 밝혔다./사진=무신사 제공 |
13일 패션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패션부문, 한섬 등 주요 패션 기업들의 내수 실적은 성장 정체에 직면했다. 고물가와 경기 부진으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탓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형적인 수익 구조에 있다.
백화점 등 오프라인 채널 의존도가 높은 국내 패션 환경상 판매가의 30~40%에 달하는 수수료와 매년 상승하는 인건비·임대료는 기업의 이익률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한정된 파이를 놓고 출혈 경쟁을 벌이는 '제로섬(Zero-sum)' 게임 상태"라며 "비용 부담이 큰 내수 중심 구조를 탈피해 확장성이 무한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생존을 위한 구조적 필연"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한계를 뚫기 위해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라이선스(IP) 전략'을 택했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로고를 빌려오되 기획과 디자인은 한국 기업이 주도해 제3국으로 역수출하는 방식이다.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F&F다. F&F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라이선스를 패션 브랜드로 재해석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초대박'을 터뜨렸다. 최근에는 중동과 인도 시장 진출까지 타진하며 '글로벌 IP 하우스'로 도약 중이다. 더네이쳐홀딩스 역시 '내셔널지오그래픽' 브랜드를 앞세워 중화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전략을 고도의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로 평가한다. 직접 제조 공장을 운영하거나 재고를 떠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통해 로열티 수익과 판매 수익을 동시에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패션 기업 특유의 '트렌드 해석 능력'과 '고품질 생산 관리' 능력이 글로벌 IP와 결합해 시너지를 낸 사례"라며 "내수 경기에 구애받지 않는 안정적인 '캐시카우(현금창출원)'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기업 가치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력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중소 및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플랫폼'을 타고 국경을 넘고 있다. 무신사는 '무신사 글로벌 스토어'와 일본 법인을 통해 K-패션의 해외 진출을 돕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자처했다.
무신사는 개별 브랜드가 감당하기 힘든 해외 물류, 통관, 현지 마케팅, CS(고객 서비스) 등의 장벽을 플랫폼 차원에서 해결해 주는 '선단형 진출' 모델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마르디 메크르디, 마뗑킴 등 토종 브랜드들이 일본 도쿄 하라주쿠와 시부야 등 핵심 상권에 진출할 수 있었다. 특히 마뗑킴은 팝업스토어 오픈 때마다 수천 명의 대기 줄을 세우며 인기를 증명했다.
이는 패션 수출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동대문 옷'으로 불리며 저가 공세에 치중했던 K-패션이, 플랫폼의 브랜딩 지원을 통해 '트렌드를 선도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무신사 글로벌 스토어의 거래액은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일본을 넘어 미국, 태국 등 13개국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결국 패션업계의 이러한 움직임은 '내수 기업'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이다. 증권가에서도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에 더 높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을 부여하는 추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인구 감소로 내수 시장의 축소가 예견된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 진출 여부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척도"라며 "라이선스 사업과 플랫폼 확장은 고비용·저효율의 내수 구조를 극복하고, K-패션의 영토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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