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지난 3일 미국 국방부장관 애슈턴 카터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채용 공고’를 냈다. 미군 내의 모든 전투병과를 여성에게도 개방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제 여군도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Green Beret), 해군의 엘리트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을 포함한 모든 부대 및 병과에 입대할 수 있는 시대가 비로소 열렸다.

비슷한 시기 바다 건너 한국에선 조금 이상한 채용 공고가 화제다. 자그마한 신생 마케팅 업체가 인턴 채용공고를 내면서 자격요건으로 ‘C컵 이상’ ‘지성과 미모를 겸비’라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이들은 배우 유인나의 사진을 함께 게재하며 ‘우리가 바라는 인재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고는 7일 올라왔다가 8일 삭제됐지만 인터넷 여론은 이미 불을 지른 것처럼 달아오른 상태였다.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한 업체 대표의 인터뷰는 이 상황에 기름을 더 들이부었다. “(C컵이라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성적인 매력이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끌리게 되지 않겠나”라며 “개인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사회적인 시선이 부정적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켜 죄송하다”고 밝힌 것.

반성이 없어 보이는 업체 대표의 태도는 수치심에 대한 세스 고딘의 지적을 상기시킨다.

“수치심에서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강조해도 좋다. 수치심은 강요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다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이카루스 이야기’ 中)

채용과 관련된 부조리나 ‘장난’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될 시도 중 하나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 어딜 가나 한숨소리가 들리고, 합격 경쟁률이 수백 단위로 올라가는 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하는 이 시대 가장 고약한 ‘갑질’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사소한 장난으로 생각했을 이 채용공고 사건이 엄청난 뭇매를 맞는 데에는 그런 사정이 숨어 있다.

   
▲ 한쪽은 사람이 없어서 난감하고 한쪽은 일할 곳이 없어서 애처롭다. 서로의 빈 곳을 메우기 위한 제스처는 소개팅에서 던진 부적절한 농담처럼 어색하게 떠돌 뿐이다. /사진=문제가 된 '채용공고' 캡쳐 화면

흥미로운 것은 문제가 된 업체 역시 구직난 때문에 관심을 끌기 위해 위와 같은 공고를 냈다는 사실이다. 해당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 올린 채용 공고에서 ‘프리하고 자유롭게 노는 분위기’라는 식으로 올렸는데 지원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대표가 이런 방법까지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결국, 쉽게 용서받긴 힘들 것 같지만 시사하는 바는 있는 해프닝이다. 한쪽은 사람이 없어서 난감하고 한쪽은 일할 곳이 없어서 애처롭다. 서로의 빈 곳을 메우기 위한 제스처는 소개팅에서 던진 부적절한 농담처럼 어색하게 떠돌 뿐이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헬조선’의 히읗만 들어도 ‘그렇게 싫으면 북한 가서 살라’며 날카롭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건 아닐 것이다. 한번쯤은 이 불균형의 양상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현재에 대한 무관심은 미래에 대한 직무유기인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최고 정점에 살고 있는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르며, 갈 길은 내리막뿐인지도 모른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