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식당인 줄 알았어요.”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독수리는 왜 이곳을 찾을까요?”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시 장산리 36번지에 있는 ‘독수리 식당’을 찾은 탐조객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아침 일찍, 독수리 식당 탐조대 맞은편 논두렁과 전봇대에는 요일별로 정해진 급식 시간(화·목·토)을 기다리는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이미 모여 있었다. 마치 급식실 앞에서 줄을 서는 학생들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기한 장면이다.
윤도영 임진강생태보존회 회장은 “이곳을 찾는 독수리들 대부분이 5살 이하의 어린 개체로, 몽골의 혹한 (영하 40도)를 피해 해마다 10월 중순쯤 약 3,000km를 날아와 이듬해 3월 중순까지 머무른다”고 설명했다.
오전 10시경, 생태교육이 끝난 뒤 윤 회장과 보존회 회원, 탐조 참가자들이 논에 먹이를 나눠주면, 독수리들이 바로 달려들지 못하도록 잠시 대기를 건다. 윤 회장은 “돼지고기,소고기,닭고기 등 약 150kg을 제공하면 식사 시간은 10분 이내에 끝난다”며 “탐조 참가자들이 충분히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했다.
기다림이 끝나고 대기가 해제되자, 대장 독수리가 먼저 움직임자 일제히 먹이 쪽으로 날아든다. 이때 아이들의 감탄사와 사진작가들의 셔터 소리가 이어진다. 생각보다 먹이 쟁탈전은 치열하지 않다. 독수리들은 먹이 앞에서 껑충껑충 다가가 머리를 들이밀며 먹이를 먹는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몸싸움이나 눈치 싸움이 있긴 하지만, 심한 경쟁은 보이지 않는다. 틈새를 노린 까치와 까마귀도 슬쩍 먹이에 다가가 먹이를 먹는다.
이날 현장에는 사냥 실력이 뛰어난 흰꼬리수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흰꼬리수리들은 독수리와는 달리 먹이를 물고 하늘로 날아오른 뒤, 공중에서 동족끼리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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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상에 남아 있는 독수리는 약 2만 마리로 추정되며, 해마다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 한국의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이다. 영상은 암컷에 대한 구애에 앞서 수컷 독수리들이 서열을 가리기 위해 벌이는 기싸움.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한국의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독수리는 전 세계적으로 약 2만 마리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해마다 그 숫자가 줄고 있다. 알을 한 개만 낳는 데다 성체가 되어 번식에 성공하는 비율도 약 20%에 그친다. 서식지 파괴, 먹이 부족, 혹독한 환경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윤 회장은 파주 독수리 식당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독수리가 겪는 위기는 결국 인간이 만든 결과이고, 이를 바로잡는 건 우리 책임이자 자연에 대한 약속”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날씨와 상관없이 한 번도 빠짐없이 먹이를 급여해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루 배식량에 대해 윤 회장은 “사냥이 불가능한 독수리는 동물 사체에 의존해 겨울을 버틴다. 하지만 겨울엔 땅이 얼고 눈이 쌓여 먹이를 찾지 못해 굶거나 탈진해 죽는 경우가 많다”며 “몽골로 돌아가는 5개월 동안 하루 150kg의 먹이를 약 60회 가량 제공하고 있는데, 비용으로 환산하면 건당 40만~50만 원이 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양은 독수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먹이일 뿐, 일부에서 말하는 ‘야생성 훼손’ 주장은 오해”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육가공업체의 지원이 있냐는 질문에 윤 회장은 “지원은 없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독수리 식당이 단순한 급식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독수리가 공생하는 의미 있는 공간, 그리고 인간 활동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독수리에게 소중한 쉼터가 되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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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년 겨울이면 몽골의 혹한을 피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어린 독수리들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월동한다. 이들의 생존을 돕기 위한 ‘독수리 식당’은 현재 파주를 비롯해 전국 13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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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회장은 작년에 ‘사회적법인 임진강생태보존회’를 설립했다. 국가가 맡아야 할 일을 시민이 먼저 실천하자는 취지로,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입장료 대신 ‘보호활동 참여금’ 명목으로 1인당 1만 원을 받기 시작했지만, 논 임대료와 먹이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으로 독수리 식당 후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7년 전 100마리 남짓에서 시작한 독수리 식당은 지금 300~350마리, 많게는 800마리까지 찾아오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독수리들이 이곳을 ‘안전하고 꾸준히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하게 된 덕분이다. 참고로 독수리의 아이큐는 7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조류독감과 관련해 윤 회장은 “지금까지 우리 지역에서는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몽골에서 흩어져 살던 독수리들이 이곳에 집단으로 모이기 때문에, 전염병이 확산될 가능성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윤 회장은 또 “독수리 식당에 모여든 독수리들은 말없이 인간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다”며, “이들이 이곳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인간의 선택과 책임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생태 환경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잘 보존된 자연은 미래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우리가 이미 많은 것을 잃었으니, 이제는 남아 있는 것이라도 지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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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림 끝에 대기가 해제되자 독수리 떼가 일제히 먹이를 향해 날아든다. 그 순간 현장에는 아이들의 탄성과 사진작가들의 셔터 소리가 이어진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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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준한 보호 활동과 안정적인 먹이 공급으로 독수리 개체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영상은 독수리의 날개 끝을 물고 장난을 치던 까마귀로 결국 독수리의 한방에 혼줄이 난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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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 환경이 안정되면서 예민한 성향으로 알려진 재두루미 가족이 탐조대 앞에서 경계심을 풀고 한가로이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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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수리 관계자들은 탐조객과 사진가들의 성숙한 관람 태도가 보호 활동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화려한 복장이나 향수, 과도한 촬영은 독수리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오픈런 모습.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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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 독수리 식당에는 독수리 외에 흰꼬리수리, 참새,까치, 재두루미 등 다양한 조류들이 서식한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미디어펜=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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