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슬립테크 시장 선점 경쟁…가구·렌털·헬스케어 '3파전'
단순 제조 넘어 '플랫폼'으로…밸류체인·이해관계자 역학 재편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침대가 단순히 잠만 자는 가구였던 시대는 끝났다. 100조 원 규모로 성장한 글로벌 슬립테크(Sleep-tech)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통 가구 기업과 렌털·헬스케어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른바 슬립테크 삼국지다. 이는 단순한 점유율 경쟁을 넘어 침대를 '안락한 가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능형 헬스케어 디바이스'로 정의할 것인가를 둔 산업 패러다임 쟁탈전으로 분석된다.

   
▲ 챗GPT 생성 이미지./사진=미디어펜 김동하 기자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에이스·시몬스로 대표되는 전통 침대 시장에 코웨이 등 렌털 가전 업계와 바디프랜드·세라젬 등 헬스케어 기업들이 각기 다른 기술 무기를 앞세워 파상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들은 스프링, 공기, 로봇이라는 3가지 기술 키워드를 중심으로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기술의 지향점이다. 코웨이 등 렌털 업계와 바디프랜드·세라젬 등 헬스케어 업계는 기존 침대의 심장인 '스프링'을 제거하는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정수기·공기청정기로 기술력을 쌓은 코웨이는 스프링 대신 공기 주머니인 '스마트 슬립셀'을 매트리스에 심었다. 핵심은 '가변성(Flexibility)'이다. 사용자의 컨디션이나 체형 변화를 센서가 감지해, 매트리스의 단단함을 실시간으로 조절한다. "침대에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침대가 몸에 맞춰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안마의자 기술을 보유한 바디프랜드와 세라젬은 한 발 더 나아가 침대를 '의료기기'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침대에 로보틱스 기술을 접목해, 수면 중 다리를 들어 올려 부기를 빼거나 척추를 스트레칭해 주는 기능을 탑재했다. 이는 고령화 시대, 단순 휴식을 넘어 적극적인 '치료와 회복'을 원하는 소비자 니즈를 정조준했다.

기술 공세에 맞서 에이스침대와 시몬스 등 전통 강자들은 '하이퍼 아날로그(Hyper-Analog)' 전략으로 수성에 나섰다.

이들은 과도한 기계 장치가 오히려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본다. 대신 수십 년간 축적된 스프링 조립 노하우와 소재의 고급화로 승부수를 띄웠다. 시몬스가 최근 동물성 소재를 배제한 '비건 매트리스'나 불에 타지 않는 '난연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복잡한 디지털 기능 대신, 소비자가 침대에서 기대하는 근원적 가치인 '완벽한 편안함'과 '안전성'을 강조하며 프리미엄 시장을 사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경쟁 속에 산업의 근간인 밸류체인(가치사슬) 지형도 급변하고 있다. 과거 침대 산업은 목재와 스프링 등 원자재를 조달해 제품을 만들고, 이를 대리점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원자재→제조→판매'의 단순 선형(Linear) 구조였다. 제조사의 생산 능력이 곧 시장 지배력이 되는 시기였다.

미래 슬립테크 시장은 양상이 다르다. 하드웨어 제조사를 중심으로 고도화된 센서 및 AI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그리고 수면 데이터를 분석·관리하는 헬스케어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초융합 생태계'로 재편되고 있다. 단순 제조 역량을 넘어, 이종(異種) 기업 간의 기술 제휴와 데이터 연결성이 경쟁력의 핵심 척도로 떠오른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이제 침대를 단순한 가구가 아닌 '수면 건강을 관리해 주는 디바이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의 경쟁은 하드웨어의 품질을 넘어, 수집된 수면 데이터를 얼마나 정교하게 분석해 개인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느냐(데이터 패권)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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