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94)-직접민주주의의 이상과 한계
루소(1712~1778), 『사회계약론』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사람이 태어나 사람을 최초로 인식하게 되는 대상은 대개 부모와 형제 등 가족이다. 인간은 자라면서 가족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배우는 게 된다. 가족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사회이자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가족의 성원은 눈을 넓혀 어느덧 자신이 숱한 가족들이 존재하는 사회, 즉 국가 속의 일원임을 알아가게 된다.

그런데 가족처럼 혈연에 의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아닌 인위적 사회인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또 어떻게 형성되며, 그 형성의 논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동양에서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자신의 관계를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했다. 가정을 지배하는 어버이가 있듯,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와 왕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므로 천명(天命)에 의해 당연히 지배권을 갖고, 백성은 이에 응당 복종해야 하는 신민(臣民)으로 여겨졌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19세기 말까지 동양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2800여 년 전에 이미 개인의 자유(eleutheria)의 개념을 발견하고 이를 정치제도에 구현하려 애썼다. 인류 역사상 기적적인 일이다. 누구나 평등한 자유로운 개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는 대중을 지배하는 왕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아테네인들은 정치지도자가 왕이나 참주가 되려는 야심을 보이면 가차 없이 추방했다. 이른바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 ostracism)가 그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 고대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를 꽃 피운 아테네가 민주주의를 창안할 수 있었던 토대는 바로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의 관념을 사회의 근본가치로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중주권의 관념에서 탄생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주권자들의 방종과 나태로 스스로 무너졌다. 민주주의의 황금기는 50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 이후 서양에서도 이천년 가까이 왕정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암흑의 중세 역사에서 자유와 인본주의 관념은 사라졌다. 그나마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왕의 전제에 대항하여 국민의 자유 권리를 재확인해 주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관념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권리를 재인식하고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근대적 사고는 16세기부터 태동했다. 근대사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사상으로 자연법사상이 주창된 것이다. 그로티우스,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등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생래적인 존엄한 권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개인과 사회, 국가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전개했다.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정치 담론은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이다.

사회계약론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지배자에게 당연하게 복종을 강요당하는 상황은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과 배치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는 천명과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군주가 지배하던 당시 사회에 충격적이고 반동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년)의 첫 문장이 이를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매여 있다. ․․․․․․사회 질서는 다른 모든 권리의 기초가 되는 신성한 권리이다. 그렇다고 이 권리가 자연히 생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약속에 근거한다.”

루소가 주장하는 사회계약의 양태는, 인간이 타고난 권리로서의 신체의 자유와 재산, 가족을 방어하고 보존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결합하여 그들의 모든 능력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의 최고 지도 아래 맡기는 형태로 개념화 된다.

개인들의 결합에 따라 형성된 공적인 인격체는 양도할 수 없고, 분할할 수 없는 주권을 가진다. 이러한 철학에 기초한 체계를 우리는 ‘공화국’ 또는 ‘정치체’, ‘국가’로 부른다. 홉스는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이름 짓기도 했다. 이 계약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민(nation)’ 또는 ‘시민(citizen)'으로 불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천명의 지배권과 복종의 의무를 갖는 군주와 백성(신민)의 관계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루소는 인간을 억압하는 군주와 그 어떤 절대 권력체도 아닌, 사회 공동체의 공동의 보편의지인 ‘일반의지’에만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관통하는 핵심적 용어인 이 ‘일반의지’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그가 사회계약론에서 전개하는 인민론, 입법 및 집행 체계, 정부 형태의 구성 원리 등에 적용하는 그의 사상체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의지’의 개념은 루소가 최초로 창안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의 철학적 전유물도 아니다.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는 자연법 전통에 따른 국제법을 의미하는 ‘인류의 일반의지(general will of human species)’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루소는 이를 ‘공동체를 지도하는 최고 원리’라는 의미로 전환하여 정치·도덕철학의 중심적인 개념으로써 ‘일반의지’를 탄생시켰다.

루소는 일반의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전체의지(la volonté de tous)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때때로 큰 차이가 있다. 일반의지가 공동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인데 반하여 전체의지는 개인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개별의지들의 총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개별의지들로부터 지나친 것과 모자란 것을 제거해 나가면 그 차이의 합계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

그의 주장처럼 ‘일반의지’가 개인을 초월하여 오로지 공동체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숭고한 의지라면 언제나 올바르며 당연히 복종해야 한다. 그런데 루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계약이 유명무실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단체에 의해 일반의지를 따르도록 강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은 정치학자들이 루소를 전체주의와 독재의 옹호자로 비판하는 근거가 되고, 실제로 공산주의자들에게 많이 악용되기도 했다.

   
▲ 장 자크 루소 초상

루소가 주장하는 ‘일반의지’는 이상적인 만큼 애매한 점도 많다. 당연히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기적 인간이 모든 사안에서 자신이 추종하는 파당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추상적인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일반의지’를 모아낼 수 있을까? 법이 ‘일반의지’를 대변할 때에만 주권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반의지’인지 누가 판별할 수 있을까? 또 모두가 수용하는 보편성을 갖는 ‘일반의지’를 어떻게 도출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일반의지’를 빙자한 우중(愚衆)의 의사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언제든지 침해당할 가능성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일반의지에 위임되는 절대적 힘이 사적소유권을 포기시키거나 제약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개인의 자유권이 온전하게 확보될 수 있을까?

물론 루소도 이런 의문에 부분적으로 응답하려 애쓰기는 했다. 그도 일반의지는 언제나 올바르지만, 그것을 인도하는 판단은 언제나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인정한다. “일반의지가 충분히 표명되려면 국가 안에 부분적인(파당적인) 사회가 존재하지 않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견만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각종 이해관계로 묶여진 부분적(파당적) 사회는 개개인의 사적 욕망과 파벌의 이익이 혼합되어 일반의지의 형성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대의정치에서 늘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루소는 일반의지의 구현인 사회 규칙, 즉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신들과 같은 지성을 지닌 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 도시국가와 이탈리아 공화국들이 외국인에게 입법을 맡기던 관습을 그 예로 든다. 특히 일반의지를 구현할 인민은 고대 그리스 인민의 견실함과 근대 인민의 유순함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반의지를 반영시켜 줄 이런 숭고하고 명철한 이성을 가진 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루소의 이상성(理想性)은 두드러진다. 만약 ‘신들과 같은 지성을 지닌 자’ 들이 있다면 일반의지가 반영된 최상의 법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러한 현인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결국 일반의지는 민중 의사의 총화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중이 그 사회의 진정한 공통의 이익과 공공선, 나아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 근본적 제약으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루소는 이런 제약적인 상황을 외면한다. 그는 그저 입법권이 인민에 속하며, 주권자인 통치자의 지배적인 의지는 일반의지 또는 법에 근거해야 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통치의 집행자인 행정관이 자신의 특수한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인민의 일반의지에 따라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인민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곧 직접민주주의의 구현만이 일반의지의 실현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루소는 의사결정에 참여한 인민이 동시에 행정관이 되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인민집회를 일반의지가 정당하게 기능하게 했던 좋은 예로 칭송한다. 루소는 대의제가 일반의지를 왜곡할 수 있다고 보고, 이런 방식의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한 것이다.

루소가 황제와 귀족, 평민의 권력이 평등하게 참여하여 독재를 견제할 수 있었던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로마 민회와 호민관 제도를 바람직한 모델로 보고, 나아가 통치자 및 행정관의 선출 방식도 선거보다 추첨이 민주 정치의 본질에 맞는다고 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루소가 희구한 직접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를 맹신하는 우중정치(愚衆政治)의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루소가 전제적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 ‘일반의지’의 모호성이 그 가능성을 더욱 크게 만든다.

여하튼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년)은 국민이 원천적인 주권자요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다만 국가는 국민의 일반의지를 이행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는 국민주권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해 주었다. 특히 이 책은 그의 이전의 저서 『인간불평등기원론』(1755)과 함께 프랑스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의 근본적 한계를 재인식하게 해주었다. 나아가 인민주권의 각성을 불러와 자유·평등·박애의 가치를 내건 프랑스 혁명(1789년)을 부르는 전주곡이 되었고, 혁명 중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책은 당대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보고자 한 루소의 치열한 투쟁과 사색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당시 『에밀』과 함께 금서목록에 오른데 이어 분서(焚書) 처분을 당하고, 자신도 기나긴 도피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사회계약론』은 해석자에 따라 루소를 극단적 개인주의자 또는 극단적인 전체주의자로 평가하게 만드는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엇갈린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저작이기도 하다.

루소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선함, 양심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일반의지’의 무오류성을 주장했다. 나아가 일반의지에 기초한 법의 정당성과 시민적 복종의 당위성을 역설하고자 했다. 아울러 이에 근거한 입법의 방법과 ‘좋은 정부’로서의 국가운용 체계를 설계하고자 했다.

『사회계약론』은 주권재민(主權在民), 평등사상, 민주주의를 논한 또 하나의 이상국가론이기도 하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덕을 조화시키려 했다. 특히 직접민주주의의 구현을 이상적으로 추구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달성되기 어려운 과제를 제시한 근대민주정치사상의 탁월한 고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루소는 주권재민 원칙과 대의정치제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이를 철저히 배격했다. 더구나 일반의지를 통한 우중의 전제 정치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점이 이 책의 결정적인 한계이다. 또 오늘날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정치제(representative system)의 정치이론을 정초한 존 로크와 뚜렷하게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박경귀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저, 이환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1999), 2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