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악수 3년만에…생각없는 '안철수의 생각'이 문제
   
▲ 이원우 기자

세상인심이 표변하는 건 정말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2012년 12월 3일 오후 3시로 돌려보자.

이날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진심캠프’ 현장에는 슬픔과 설렘의 에너지가 미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대선 출마선언 66일 만에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사퇴를 결정하고 캠프 해단식을 열었기 때문이다.

몰려든 인파는 무려 1,200명(캠프 추산). 안철수의 ‘팬’들은 자체 제작한 영상을 통해 “The And”라는 메시지를 선포하며 안철수의 해단식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딱 3년이 지난 2015년 12월. 많은 것이 변해있다.

2012년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과 함께 정계진출 의사를 밝혔던 안철수라는 이름의 정치인은 2013년 4월 24일 실시된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드디어 금배지를 달았다. 이때의 득표율은 무려 60.5%. 아직까진 모든 게 순조로워보였다.

안철수 의원이 2013년 11월 하순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새정추)를 출범시킨 시점부터 ‘새 정치’라는 그의 슬로건이 조금씩 누렇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새로움이란 말이 아닌 행동이어야 하는데, 말로만 ‘새 정치’를 강조할 뿐 별다른 신념도 철학도 보여준 일이 없는 안철수 또한 기존 정치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무렵부터 그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이었던 대학생들 사이에서 “안철수의 새 정치가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1기 공동대표에 취임했지만, 먼 길을 돌아 결국 ‘민주당 입당’을 선택한 안철수가 국민들에게 별로 보여줄 게 없는 것 같다는 인식은 이 무렵 기정사실이 돼 있었다. 이 시기가 바로 하늘에서 강림한 안철수 의원이 ‘평범한 야당 정치인’으로 지상에 안착한 순간이었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2011~2012년이 무색하게도 2014년 7월 재보선 참패 이후의 안철수는 대중들에게 별다른 존재감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크고 작은 악수를 거듭하고 때로는 파워게임에 속절없이 휘말리는 와중에 상당수 야당 지지자들은 그에 대한 실망감과 적개심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 세상을 올려다보는 것보다는 내려다보는 것에 익숙한 이 남자는 어디까지, 언제까지, 무엇까지 해낼 수 있을까. /사진=연합뉴스TV 캡쳐

급기야 지난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기로 한 그의 결정에 대해서는 ‘앓던 이를 뽑았다’는 익숙한 비유부터 ‘바이러스가 치료됐다’는 참신한 비유까지 온갖 성토가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오늘의유머, 클리앙 등에서 나오고 있는 안철수 의원에 대한 성토 중에는 인신공격 레벨인 것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속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안철수야말로 ‘안철수 신드롬’의 가장 큰 피해자인 게 아닐까. 2012년 겨울, 대선후보 복귀를 요구하는 자살소동이 있었을 정도로 맹목적이었던 자신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빨리 식어버릴 줄은 아마 몰랐을 거라는 점에서 말이다.

탈당을 결행한 안철수에게 “The And”라고 말해줄 사람의 숫자는 이제 놀랍도록 줄어들어 있다. 그는 이제 평범한 정치인 ‘이하’의 레벨에서 모든 걸 시작해야만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세상을 올려다보는 것보다는 내려다보는 것에 익숙한 이 남자는 어디까지, 언제까지, 무엇까지 해낼 수 있을까.

3년 새 그의 얼굴에는 많은 주름이 패어져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