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Ⅴ. 아산시대 한국경제의 제도적·정책적 환경

1. 박정희 시대의 경제제도와 정책환경

1) 신상필벌의 경제적 차별화 원리의 제도화와 정책으로 모두를 일어서게 만들다.

한국의 개발연대에는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스스로 돕는 자를 우대하는 인센티브가 차별화된 지원제도”를 구축함으로써 스스로 돕는 자를 양산하고, 이를 통해 흥하는 문화유전자인 “하면 된다”는 유전자를 퍼뜨림으로써 더욱 더 많은 흥하는 이웃들을 양산하였다. ‘하면 된다’는 자조정신으로 남보다 더 노력하여 성공하는 국민들을 앞장세움으로써 게으르고 희망이 없다던 한국 국민들을 모두 자조하는 국민들로 바꾸어 놓았다. 신상필벌의 정책들로는 1) 혁명공약에 위배되는, 세칭 부도덕한 탈세 기업가들에게 불구속과 세금추징유예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모두를 경제개발에 앞세운 실용적 발전정책, 2) 수출 우수 기업만 지원한 수출 육성정책, 3) 수출성과 우수 기업만 지원한 중소기업 육성정책, 4) 자금조달 능력 있는 기업만 참여시킨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5) 성공하는 마을만 지원한 새마을 운동, 6) 잘하는 공장만 지원한 새마을공장 육성정책 등을 들 수 있다.

2) 기업성장을 통한 경제발전전략으로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육성시켰다.

성과를 내는 기업에 차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성장의 유인을 극대화함으로써 모든 기업을 성공하는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시장에서 예컨대, 수출성과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열렸지만 정부는 항상 수출성과우수기업에 추가적인 사업기회 등, 차별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성공을 향한 동기를 극대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성과 있는 중소, 중견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박정희시대는 대기업 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차별적 중소기업육성정책을 통해50-60년대 중소·중견기업들을 80년대 대기업으로 육성시킨 중소기업 육성정책의 성공시대였다.

▲ 대한민국 건국이후 최대의 외화를 벌어들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현장. 사진은 현장을 방문한 (사진왼쪽)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3) 산업화 전략에 부응하는 성공 기업의 재산권을 지켜준 발전국가정부

신상필벌의 정책기조는 흥하는 기업의 성공을 지원함으로써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도 성공기업의 재산권을 지켜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신상필벌정책은 일단 정부의 경제발전 전략에 부응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한 심각한 재산권 침해 가능성은 없다는 재산권 보장효과를 수반하였다.

2. 1980년대 5공 정부 이후의 경제제도와 정책적 환경

1) 80년대 이후 경제평등주의 정책으로 박정희의 신상필벌 정책기조 대체

1980년대 들어서면서 박정희 정책 패러다임을 청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박정희 정책이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과 경제 불균형을 초래했기 때문에 보다 평등하고 균형된 경제를 지향한다고 각종의 규제와 지원정책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경제평등주의 정책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구체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대기업이 되면 무조건 규제하고, 중소기업이면 성과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지원하여 모두 작은 중소기업으로 주저앉게 만드는 기업정책, 2) 가난한 농민만을 우대하여 농민을 가난한 농민으로 주저앉게 만드는 농업지원 정책, 3) 노조를 약자라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키워온 경영민주화 정책, 4) 수도권을 역차별하는 수도권 규제와 획일적 지방육성 정책으로 전국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해온 국토 균형발전 정책, 5) 획일적 지원정책으로 우수한 연구자와 학교를 역차별하여 연구 수월성을 훼손해 온 대학지원 정책과 과학기술지원 정책, 6) 우수학생 역차별로 실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고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의 발호를 조장함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고착시켜온 교육 평준화 정책 등을 들 수 있다.3)

이러한 흥하는 국민들을 폄하하는 경제사회 제도들은 국민들의 자조와 발전정신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 이후 남 탓하고, 대기업, 부자, 수도권 등을 탓하는 국민들이 양산되고 이제 내 실패는 사회 탓이며 정부가 책임지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더욱 커지면서 정치는 지속적으로 포퓰리즘 민주정치로 전락해 왔다. 개발연대 자조정신으로 충만했던 국민들이 이제 ‘남 탓, 정부 탓’하는 국민들로 바뀐 것이다.

2) 대기업의 생존과 대기업의 재산권은 반(反)재벌정책과 정서 속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5공 정부에서 시작된 반(反)재벌정책이 법제화되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재벌 청산을 내건 포퓰리즘 정치가 만개하게 되었다. 이제 소위 재벌은 정경유착의 화신으로, 문어발의 대명사로, 불투명한 가족경영의 대명사로, 선진화를 위해 청산되어야할 대상으로 동내 북이 되었다. 박정희 개발연대의 총아였던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기업들이 이젠 청산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박정희 시대에 비해 재산권 침해 위험은 사실상 더 심화되었다.

▲ 아시아 2번째, 세계적으로 16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에 이름을 올린 포니 개발성공이후 1985년 첫 전륜구동 자동차인 포니엑셀의 신차발표회장에 참석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Ⅵ. 한국 기업가 정신의 특질: 사업보국 이념

개발연대 1세대 기업가들은 국민경제 건설이 그 사명이라는 “기업 혹은 산업보국” 이념이 강하였다. 이 이념의 원천은 무엇인가?

일본의 명치유신 이후의 기업가들도 그러하였는데, 일본의 경우에는 명치유신 이후 중앙집권화로 지방 영주들에 종속되었던 사무라이들이 해체되고 이들이 새로운 자본주의식 기업제도 하에서 사업가들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사농공상의 계급사회의 최상층 계급이 이제 최하층 계급의 일을 수행함에 따른 이념상의 공황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경제번영을 위한 사업가로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위하여 일한다는 정신적 위안을 얻기 위해 소위 “주판을 든 사무라이(Samurai with abacus)”라는 신계급이념을 창출하면서 기업보국이념이 자리잡게 되었다.4)

한국 또한 마찬가지로 사농공상의 계급사회에서 유학(儒學)을 익힌 기업가들이 자신들이 사익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즉 기업은 하지만 보국하는 선비의 길을 간다는 이념을 통해 나름의 자존적 클래스 이념을 정립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기에는 일제시대를 통해 받은 일본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5.16후의 전경련의 초기 이념도 산업부흥을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한다는 산업보국이념을 내걸었었는데, 여기에는 박정희장군이 5.16후 15인의 탈세기업인들을 구금했다 경제건설 참여조건으로 석방하여 경제개발에 참여시킨 사건으로 인해 더 적극적으로 산업보국의 이념을 내걸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 지난 11월 1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한 관객이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