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87)- 진퇴양남에 빠진 타이거 우즈

12월30일이 타이거 우즈의 40번째 생일이다. 한국나이로 치면 41세가 된다.
공자의 어법으로 말하면 불혹(不惑)의 나이다.
공자는 『논어』‘위정편’에서 지난 일생을 회고하며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三十而立).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 60세에는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六十而耳順)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며 흔들리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불혹의 경지에 있어야 할 타이거 우즈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였다.
유소년 시절부터 천부의 골프천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설적인 대선배들의 대기록을 갈아치우는 새로운 골프역사를 써온 골프영웅 타이거 우즈가 농익은 골프기량으로 전성기의 후반을 장식해야 할 시점에 골프채를 잡는 것 자체가 불투명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해외언론이 전하는 우즈 관련 뉴스를 종합해보면 그에게는 이제 떠나는 시간만 남았다는 느낌이 다가온다.

이달 초 자신이 주최하는 히어로 월드챌린지에서 언제 경기에 나설 것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활훈련은 엄두도 못 내고 이제 겨우 걷는 상태”라고 털어놓은 그는 "아직은 복귀시점을 알 수 없다. 부활이 여의치 않다면 자선재단 일과 골프장 설계 같은 일을 하겠다."고 밝혀 이미 마음은 현역선수로서의 꿈을 접고 있음을 비쳤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집에서 골프 중계방송을 즐겨 시청하고 아이들과 비디오게임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혀 골프선수가 아닌 아이들의 아빠로 돌아갔음을 짐작케 했다.
특히 어린 시절 살아있는 전설인 잭 니클라우스(75)의 나이대별 기록을 방 벽에 붙여놓고 그 기록들을 깨겠다는 마음으로 골프에 매달려 왔음을 털어놓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즈는 잭 니클라우스의 나이대별 기록을 거의 경신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메이저 최다승 기록(잭 니클라우스의 18승)에는 4승 모자란 14승에서 멈췄고 PGA투어 통산 승수에서는 79승으로 샘 스니드의 82승에 3승이 모자라다.

   
▲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며 흔들리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불혹의 경지에 있어야 할 타이거 우즈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였다. /삽화=방민준
수년 전만해도 이 두 위대한 기록도 우즈에 의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소문 무성한 여성편력과 잦은 수술(무릎수술 4회, 허리수술 3회)로 공식 대회 참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먼 길을 가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에만 눈을 주기 마련인데 우즈가 잭 니클라우스의 나이대별 기록을 깨는데 몰두했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것을 보면 이제 더 이상 프로골퍼로서의 길을 갈 수 없게 되었음을 스스로 깨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선수생활을 하려면 몸 상태가 100%는 아니더라도 거기에 근접해야 한다. 나이가 있으니 어느 정도 통증을 감내해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더 이상 수술 받기 싫다.”는 그의 실토는 아픈 몸을 끌고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런 우즈를 보며 ‘안수정등(岸樹井藤)’이란 불가(佛家)의 화두가 떠오른다.
‘언덕에 선 나무와 우물의 나무뿌리’란 뜻의 안수정등은 인간사를 매우 압축적으로 비유해 들려준다.

‘옛날 어떤 사람이 광야를 헤매고 있었다. 그 때 크고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 쫓기게 되었으나 피할 곳이 없었다. 마침 언덕 위 나무 옆에 있는 우물을 발견하고는 나무뿌리를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의 윗부분을 흰 쥐와 검은 쥐가 갉고 있었고 우물 벽에는 네 마리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우물 바닥에는 큰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는 곧 뽑힐 듯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때 나무에 달린 벌집에서 꿀물이 입속으로 떨어졌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꿀물에 정신이 팔린 사이 벌집이 떨어져 벌들이 그에게 달려들었고 어디선가 불이 나 그 나무마저 태워버렸다.’

잭 니클라우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기록을 쫓아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황제 같은 명성과 영광에 매달리다 때 이르게 선수생활을 접고 실패한 황제로 물러나야 하는 우즈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나라한 비유가 또 있을까.
내 발 밑은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다 스스로 무너져 내린 우즈가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언론으로부터 비아냥거림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서글플 수 없다.

이런 우즈를 보며 50대에 접어들어서도 자신을 철저히 관리하며 선수로 활동하는 챔피언스투어의 선수들이나, 40고개를 지나서도 여전히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는 프레드 커플스(54), 필 미켈슨(46), 짐 퓨릭(45), 데이비스 러브3세(51), 비제이 싱(52), 어니 엘스(44) 같은 선수가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쳐다보게 된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