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200조 부채에 산단 요금 파격 인하 '난망'
초고압 24시간 쓰는 석화업계에는 실효성 한계
㎾h당 182원 전기료에 1~2원 인하 혜택 '역부족'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정부가 올해 본격 도입을 추진 중인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를 두고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속내가 복잡하다. 발전소 밀집 지역 전기요금을 깎아주겠다는 취지인만큼 장밋빛 전망이 나왔지만 현장에서는 24시간 전력을 소비하는 장치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실효성 없는 차등제 논의에 매몰되기 보다 당장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직접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20일 에너지 및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력 자급률이 높은 발전소 인근 지역의 전기요금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지역별 차등 요금제 설계를 막바지 조율 중이다. 이에 따라 전남 여수, 충남 대산 등에 위치한 석유화학 단지의 동력비 부담이 다소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됐다.

당초 업계 안팎에서는 이 제도가 가동률 저하와 조 단위 적자에 신음하는 석화업계의 동력비 부담을 덜어줄 구명줄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 기업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석화업계의 근본적 위기는 전기료 하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비싼 원료와 비싼 가공비가 맞물린 구조적 이중고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공비 폭등의 이면에는 정부의 기형적인 전기요금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연료비가 폭등하며 한국전력은 2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누적 부채를 떠안았다. 정상적이라면 원가 상승분을 전체 전기요금에 고루 반영해야 하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과 여론 악화를 의식해 가정용과 일반용(소상공인) 요금 인상은 철저히 억제했다.

대신 그 막대한 적자 청구서를 전력 소비가 많고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기업, 즉 '산업용 전기요금'에 집중적으로 떠넘겼다. 그 결과 2021년 이후 대용량 산업용 전기 단가는 70% 이상 폭등하며 ㎾h당 182.7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120원대인 최대 경쟁국 중국과 비교해 50% 이상 비싸다.

이런 값비싼 전기요금을 내며 공장을 돌려야 하는데 석유화학 공정의 시작점인 원재료 조달마저 막혀버렸다. 정제 설비(CDU)가 없는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순수 석유화학 기업들은 무조건 정유사가 만든 '나프타 완제품'을 사 와서 납사분해설비(NCC)에 넣어야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말 정부 주도로 시행되던 '수입 나프타 완제품'에 대한 할당관세 면제 조치가 종료됐다. 무관세 원유를 들여와 자체적으로 나프타를 뽑아 쓰는 정유사들과 달리 순수 석화사들은 관세가 붙어 훌쩍 뛰어오른 수입 나프타를 들여오거나, 수입가에 연동돼 비싸진 국내 정유사의 나프타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 와야 하는 불리함을 떠안았다.

결국 비싸게 사 온 원료를 24시간 초고압(154kV 이상) 전력이 필요한 압축기와 냉동기에 넣고 끓여야 하는데, 제품을 만들수록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용 전기료 폭탄을 고스란히 맞게 되는 완벽한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별 차등제로 인해 요금이 1~2원 인하된다 해도 구조적 누적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한전의 200조 원 부채를 감안하면 산단 인근이라고 해서 파격적인 요금 인하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따라 주요 석화단지 입주사들은 최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전기요금을 10%가량 인하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으나, 정부는 타 산업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지역 차등제라는 정책적 착시 효과에 매몰되기보다, 벼랑 끝에 몰린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다이렉트 처방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대안이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의 한시적 면제다.

현재 모든 전기요금에는 2.7%의 전력기금이 준조세 성격으로 강제 부과된다. 단가 자체를 깎아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정부가 시행령 개정만으로 즉각 실행할 수 있는 전력기금 감면 카드라도 꺼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된 여수, 대산 등 핵심 산단에 핀셋 지원을 적용할 경우, 업계 전체적으로 연간 수천억 원의 원가를 즉각 절감해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역 차등제는 본질적으로 수도권의 신규 전력 수요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장기 정책일 뿐, 수출을 책임져 온 중후장대 산업의 단기 경쟁력을 회복시켜 줄 만능키가 아니다"라며 "전기료 인하가 어렵다면 전력기금이라도 면제해, 관세 부활과 덤핑 공세에 치이는 K-석화에 최소한의 생존 체력은 남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