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해양플랜트 '쇼크'…중국산 저가 철강 '공습'

[미디어펜=고이란 기자] 올해도 조선과 철강업계를 관통한 것은 ‘불황’이다. 혹자는 “땅을 파고 들어간다”고 표현했다. 바닥을 치면 올라가기 마련인데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조선업계는 유가 하락으로 해양플랜트 발주는 미미한 수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위축된 선박금융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선박 발주량도 지난해와 비교해 반토막 났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모습. /사진=현대중공업 홈페이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지난 2004년 이후 최저치인 배럴당 31.98달러를 기록했다.

해양프로젝트의 손익분기점은 통상 배럴당 60~70달러다. 발주사들은 이를 기준으로 개발과 투자를 결정하는데 현재 유가로는 계획된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중단시킬 상황이다.

유가하락으로 인한 발주사의 일방적인 해양플랜트 계약 취소와 인도 지연은 국내 대형 조선 3사의 3분기 매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삼성중공업은 공시를 통해 올해 3분기 영업이익 846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지만 사흘만에 1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게 됐다고 정정하기도 했다. 시추업체 퍼시픽드릴링(PDC)이 드릴십 건조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했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는 올해도 한바탕 조선업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이 조 단위 해양플랜트 손실을 털어낸데 이어 대우조선해양까지 합세해 올해 약 4조원의 영업 손실을 발표했다.

조선 3사의 3분기 적자규모는 총 7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 첫 조 단위 동반 적자로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해양플랜트의 대규모 손실사태의 원인은 유가하락과 더불어 설계부터 시공까지 일괄하는 턴키방식의 계약이 크게 작용했다.

국제 표준가격과 조선3사가 오랜 경험으로 설계·시공능력까지 보유한 선박시장과는 달리 해양플랜트는 발주사인 오일메이져와 세계 1,2,3위를 자랑하는 국내 조선업체 모두 첫 도전이었다.

도전은 실패로 돌아왔다. 수주금액보다 더 많은 돈과 인력을 해양플랜트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대규모 손실로 이어졌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직원이 작업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철강업계는 중국 때문에 골치다. 철강수출 시장의 큰 손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7%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25년만에 최저 수준이다.

경기 위축으로 철강 소비는 줄었지만 여기저기 생겨난 중국의 철강업체들은 경쟁적으로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저가 철강재를 쏟아냈고 세계 철강시장을 과잉상태로 몰아넣었다.

그 중 최대 피해국인 한국은 중국산 저가 수입재에 내수시장을 40%나 내주었다. 그 결과 빚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은 증가했고 국내 철강업체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줄이고 합치고 월급까지 반납

현대제철은 지난해 1월 현대하이스코의 냉연사업 부문을 합병한 데 이어 올해 7월 해외 스틸서비스센터(SSC)와 강관 부문까지 흡수하면서 철강 제조 전 공정을 아우르는 종합 일관제철소 체제로 탈바꿈했다.

현대제철은 합병을 통해 현대·기아차의 해외 자동차 생산 증가로 인한 자동차용 냉연강판 등의 공급 효율성을 높이고 수익성과 경쟁력 강화에 돌입했다.

내부 비리 문제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던 포스코는 신뢰회복과 위기극복을 위해 지난 5월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세웠다. 이후 임원들이 일괄 사표까지 제출하며 ‘사즉필생’ 각오로 고강도 경영쇄신 방안을 내놨다.

포스코는 철강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계열사는 단계적으로 과감히 정리해 오는 2017년까지 현재의 50% 수준으로 축소하고 해외사업도 30% 과감하게 정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동국제강은 올해 초 원가경쟁력 확보와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자회사 유니온스틸과 합병했다. 철근, 형강, 후판 등 기존 열연 제품 포트폴리오에 냉연강판, 아연도금강판, 컬러강판 등 냉연 제품을 확장한 것이다.

또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서울 수하동 본사 사옥인 '페럼타워(Ferrum Tower)'를 삼성생명에 42000억원에 매각했다. 개인 비리 혐의로 기소된 장세주 회장과 남윤영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장세욱 부회장의 1인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조선업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경영위기로 채권단으로부터 4조2000억원의 지원금을 받는 대우조선해양은 조선해양과 관련 없는 자회사, 비핵심 자산, 부동산 등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 8월 이후 본사 임원을 30% 줄이고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등을 통해 부장급 이상 고직급자 300명을 감축했다. 삼성중공업도 임원수를 30% 줄였으며 상시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그룹 계열사 전 사장단이 급여 전액을 반납하고 임원들도 직급에 따라 최대 50%까지 급여를 반납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등 조선관련 계열사에서는 부서장까지도 급여의 10%를 반납한다.

돌파구는 역시 고부가가치 제품

허리띠를 졸라매는 경영위기에 고부가가치 제품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포스코가 자랑하는 월드 프리미엄 제품들은 미국 자동차 부품사에 독점공급 계약을 맺는 등 판매 실적을 이끌고 있다. 포스코는 오는 2020년까지 월드 프리미엄 제품들의 판매비율을 6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6년 연속으로 세계적인 철강 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로 선정된 바있다.

13개월 연속 세계 수주잔량 1위를 지키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최초로 천연가스 추진 엔진(ME-GI 엔진)이 탑재된 LNG운반선의 시운전까지 성공리에 마치며 전 세계 LNG선 선주들의 관심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LNG선은 연료공급시스템(FGSS)과 천연가스 재액화장치(PRS) 등 대우조선해양이 자체 개발한 천연가스 관련 신기술이 대거 적용돼 기존 LNG선보다 연료 효율이 30% 가량 높고 이산화탄소, 질소화합물(NOx), 황화합물(SOx) 등 오염물질 배출량도 30% 이상 낮췄다.

업계관계자는 “국가 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조선·철강의 한국 기술력은 여전히 경쟁국보다 한수 위지만 중국 경제의 침체, 일본의 엔저공세로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조선·철강업계가 절체절명의 각오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