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시오노 나나미는 “인간은 모두가 평등한 것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차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했다.

우리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이 온갖 불공평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법 앞에서만큼은 평등을 강조하는 그 작지만 큰 차이가 인간(人間)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발상이다.

법이 사람에 따라 불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의혹이 현실로 확인되는 순간, 그 현실 앞에서 사람들이 절망과 분노를 느끼는 건 그렇기 때문에 타당하다. 최근 발생한 의학전문대학원생의 ‘몰카’ 사건을 보자.

27세 의전원생 김 씨는 작년 1월부터 8개월 동안 서울의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면서 스마트폰으로 몰래카메라를 촬영했다. 여성 행인들의 치마 속을 촬영하고, 계속 그 여성을 쫓아가 얼굴과 뒷모습까지 몰래 사진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당한 피해자가 무려 183명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친여동생까지 포함돼 있다.

김 씨가 과학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대통령 장학금을 받았으며 의학전문대학원에까지 진학한 수재라는 사실보다 더욱 놀라운 건 검찰이 김 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다는 현실이다.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우발적인 범죄라는 게 이유였다. 여론이 불붙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또 얼마 전엔 여자친구를 4시간 반 동안 감금한 뒤 폭행을 했는데도 의전원생이란 이유로 벌금형에 그친 사건, 환자 130여 명의 몸을 몰래 찍다가 적발됐는데도 의사라는 이유로 신상공개를 면한 경우도 있었다.

   
▲ 김 씨가 과학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대통령 장학금을 받았으며 의학전문대학원에까지 진학한 수재라는 사실보다 더욱 놀라운 건 검찰이 김 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다는 현실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의전원생들의 경우 그들의 변호인들은 ‘처벌을 받으면 의료인의 꿈이 좌절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의 ‘꿈’을 위해 본인의 존엄을 희생해야 한다는 게 최근 몇몇 판결들의 결론인 셈이다.

변호인들의 관점은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의사를 다른 직업들에 비해 특별한 지위에 올려주던 분위기는 이미 빠르게 바뀌고 있음에도 여전히 과거의 관점에 머물러 ‘의료인의 꿈’ 따위를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나 사법부가 이 견해에 동조하는 순간 '법 앞의 평등'은 간단히 뒤틀려 버린다.

“아는 변호사에게 물어봤더니 재판관은 술을 마시러 가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혼자서 몇 십 건이나 되는 소송을 다루니까 집에까지 일을 갖고 갈 때도 많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소설을 읽을 시간도 없다고 한다. 그래선 안 된다. 치한이 득실대는 만원 지하철도 타 보고, 바로 옆자리에서 누군가 난동을 부리는 술집에서 술을 마셔보기도 해야 한다. 세상사를 모르면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살의를 품는지, 죄를 저지르는지, 그런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기타노 다케시 ‘독설의 기술’ 中)

기타노 다케시의 독설은 2015년의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세상이 얼마나 빨리 바뀌고 있는지를 모른 채 수십 년 전에 형성되었을 스스로의 편견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법을 집행하고 있으니 세대 간의 몰이해와 갈등은 계속 깊어질 수밖에 없다.

법의 효용은 인간의 본성인 복수심을 그나마 적절한 방식으로 해소해 준다는 지점에도 존재한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 처리되지 않은 복수심은 허공을 맴돌다 분노의 형태로 질량을 불려간다.

마지막 보루인 ‘법 앞의 평등’이 흔들리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까지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지옥불에 익숙해져 지옥이 얼마나 뜨거운지조차 잊어버린 ‘헬조선의 변호인’일 것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