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대기업 총수일가의 책임 경영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가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더라도 등기 임원을 맡지 않으면 법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3일 발표한 '2015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40개 대기업 계열사 가운데 총수일가가 1명 이상 등기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21.7%(294개사)였다.

공정위가 삼성·현대차·SK 등 총수가 있는 40개 대기업 계열사 1천365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대기업 계열사 비율은 지난해보다 1.1%포인트 낮아진 것은 물론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비율은 2012년 27.2%에서 2013년 26.2%, 지난해 22.8% 등 꾸준히 떨어졌다.

2013년 8월부터 등기임원 보수 공개가 의무화되면서 등기임원을 내려놓는 총수일가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23개 계열사를 거느린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계열사 어느 곳에도 이사로 등재되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녀 가운데 등기이사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다. 이건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사업부문장 사장은 등기임원을 맡고 있지 않다.

SK와 한화그룹은 2개 계열사, 신세계그룹은 1개 계열사에만 총수일가가 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올해 조사에서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가 가장 많이 감소한 곳은 한진그룹으로 6개사가 줄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 사건 이후 3개 계열사의 등재이사에서 자진 사임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그룹을 책임지는 총수가 계열사 이사로 전혀 등재돼 있지 않은 대기업은 삼성, SK, 현대중공업, 한화, 두산, 신세계, LS, 대림, 미래에셋, 태광, 이랜드 등 13곳이었다.

이번 현황조사 결과에 대해 공정위는 총수일가의 책임경영 측면에서 미흡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사외이사의 권한 행사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사외이사가 회사 안건에 반대한 비율은 작년보다 더 낮아져 의사결정의 투명성 또한 뒷걸음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들이 여전히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은 49.5%로 작년(49.8%)보다 0.3%포인트 줄었다.

이랜드(25.0%), OCI(32.3%), 한솔(33.9%)의 사외이사 비율이 낮았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도 92.6%로 작년 92.1%보다 0.5%포인트 하락했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중과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참석률은 작년까지 계속해서 높아졌지만, 올해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최근 1년간(2014년 5월∼2015년 4월) 대기업 계열사의 이사회 안건 5448개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부결되거나 수정된 안건은 단 13건(0.24%)에 그쳤다.

이는 1년 전의 이사회 안건 부결 또는 수정 비율인 0.26%보다 더 낮은 수치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를 설치한 48개 대기업(총수 없는 대기업 8개 포함) 소속 상장사는 124개로 작년보다 3개사 줄었다.

등기이사의 보수를 심의·결정하는 보상위원회를 설치한 대기업 상장사는 1년 새 40개에서 54개로 35% 증가했다.

이는 등기임원의 보수 공개 의무화에 따른 현상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