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기업 정서’ 죽이고 자본주의적 현대식 기업 키워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파키스탄의 ‘경제민주화’ 결과를 보라

필자는 자본주의 경제가 ‘시장경제’라기보다 ‘기업 경제’라고 해야 옳다고 주장한다. 시장 교환경제가 유사 이후 인류의 삶의 현장에서 항상 함께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시장경제라는 이름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왜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대만이 1만 년도 넘는 오랜 농경사회의 맬서스 함정을 탈출해 지난 200여 년 동안 인류 역사상 최초의 경제 발전 현상을 창출해 낼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도 어려워진다. 모두 다 시장 교환경제 하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시장이 경제 발전이라는 변화의 열쇠가 아닐 수 있다는 강력한 시사점을 읽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농경사회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전자는 대장간 기업이 경제를 이끌었지만 후자는 현대식 주식회사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식 주식회사 제도의 기원은 16세기 말 스페인 이사벨 여왕과 탐험가 콜럼버스의 계약에서 유래한다. 콜럼버스는 파격적으로 유리한 신세계 약탈 거래 수익의 공유 계약을 여왕과 맺었다. 탐험가인 동시에 탁월한 기업가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초부터 인기가 있었던 유럽의 식민 개척 회사인 국영 동인도회사들이나 17세기 후반에 왕성하게 등장한 민간 주식회사들도 주식회사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이 경제 발전의 견인차

18세기 초에는 주식거래 과열로 증권시장에 대혼란이 온 후 ‘버블 금지법’이 제정돼 1세기 동안 민간 주식회사 제도가 금지됐다. 19세기 초 들어 전면적으로 자유화되고 법제화된 주식회사 제도는 자본주의 경제의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주식회사는 개인이나 가족기업 형태인 대장간 기업에서 그 자본 규모를 무한대로 확장시켜 창발한 복잡계 조직이다. 현대식 기업은 ‘신상필벌’이라는 시장의 원리를 내부화해 무에서 유를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필수불가결한 성장과 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성장하는 기업이 바로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견인차인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발전 경험을 보면 강한 기업이 많은 경제가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고 성장하는 나라일수록 기업의 성장이 두드러진 것을 알 수 있다. 경제 발전은 기업의 성장 과정에 다름 아니다. 포천 500대 기업이나 파이낸셜타임스 500대 기업의 나라별 순위를 보면 기업의 성장이 경제성장 발전을 이끈다는 자본주의 경제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 한국은 1980년대 후반 들어 말로는 선진 경제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기업의 성장 유인을 차단하는 반성장 정책을 추진해 왔다. 대기업 성장을 규제하는 소위 경제민주화를 위해 파키스탄의 반대기업 정책을 쫓아간 셈이다. 결국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성장하는 강한 기업이 소위 ‘반(反)대기업 정서’ 속에 크게 환영 받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는 ‘대기업이 계급투쟁의 장으로서 자본주의 경제 불평등의 원천’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념이나 ‘대기업 국유화를 통한 사회주의화 이론’ 등 슘페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반대기업 정서의 강도에 따라 경제성장 발전의 명암이 갈린 흥미로운 사례가 많다.

대기업 육성으로 대박을 터뜨린 나라는 바로 지난 30여 년간의 중국이며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도 그러하다. 19세기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 19세기 말부터 영국을 추월한 미국이 또한 그러했다. 스웨덴도 기업 육성 정책으로 세계 제일의 복지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스웨덴이 1인당 우수 기업 수로 세계 유수의 나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비교 사례는 한국과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1947년 독립 이후 한국에 경제 발전 계획의 구상 등 많은 노하우를 가르쳐 준 나라다. 1961년 박정희 정부가 제1차 5개년 개발 계획 작성 당시 파키스탄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로, 파키스탄의 지식인들 역시 이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1950년대 이후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한국 못지않은 성장을 구가했지만 1970년대부터 엄청난 성장의 성과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많은 파키스탄 경제학자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너희를 가르쳐 줬는데, 이렇게 격차가 생긴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놀라운 반전은 바로 두 나라가 택한 현격하게 다른 기업 정책에서 연유한다.

국유화 정책이 기업 성장 막아

파키스탄은 1970년대부터 대기업 국유화의 길을 걸었지만 한국은 1960년대부터 수출 기업 육성에 이은 중화학 공업화에 나섰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국가 차원의 계획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로, 이를 통해 기업 육성 정책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 냈다.

파키스탄 경제의 실패는 아버지 부토(파키스탄인민당, 1972~1977년 집권)와 딸 부토(1988~1990년, 1993~ 1996년 집권)의 연이은 대기업 국유화 정책으로 초래됐다. 아버지 부토 총리는 “나는 포도주를 마시지만 대기업 사주와 경영자들은 인민의 피를 마신다”고 선언하고 경제력 집중 억제, 중소기업 보호,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5년간 국유화를 강행했다.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는 경제민주화를 1972년에 핵심 정책으로 내걸고 22개의 가족기업 집단을 포함해 31개 대기업 집단을 국유화했다. 1973년엔 헌법 개정을 통해 국유화를 천명했고 이듬해에는 13개 은행을 국유화했다. 1976년에는 심지어 농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농산물 산지 값과 도시 소맷값의 마진을 없애 2000개가 넘는 중소 농산물 중개상까지 국유화했다.

   
▲ 나와즈 샤리프 현 파키스탄 정부는 자유 시장 경제, 민간 기업 육성 정책을 내걸고 있지만 국유화 정책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국유기업 민영화도 추진해야 하는 등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진은 파키스탄 Millenium university college에서 특강을 마치고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좌승희 영남대 석좌교수./사진=미디어펜

딸 부토 총리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 집권 기간에 공기업 민영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경제는 악화하는 상황에서 지도층의 부패도 만연했다. 부녀 부토 시절 동안 성장 기업에 대한 역차별적 기업 경영 환경으로 자본의 해외 탈출이 급증했다. 성장 회피와 기업 분할로 많은 기업들이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피했다. 국유화 정책이 기업의 성장 유인을 차단하면서 파키스탄 경제를 실패로 몰아간 셈이다.

자본주의적 현대식 기업이 사라진 파키스탄 경제는 유사한 사회주의 경제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농경사회로 전락했다. 나와즈 샤리프 현 정부는 자유 시장 경제, 민간 기업 육성 정책을 내걸고 있지만 국유화 정책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국유기업의 민영화도 추진해야 하는 등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한편 오늘날 파키스탄은 4% 가까운 성장을 보이고 있는데, 지난 30년간 선진국을 지향해 온 한국은 이제 겨우 비슷하거나 이보다 못한 2~3%의 성장을 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재반전은 또 어디서 오는가. 한국은 1980년대 후반 들어 말로는 선진 경제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기업의 성장 유인을 차단하는 반성장 정책을 추진해 왔다. 대기업 성장을 규제하는 소위 경제민주화를 위해 파키스탄의 반대기업 정책을 쫓아간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육성 정책마저도 성장의 동기를 죽이는 획일적 지원으로 중견·대기업으로의 성장 유인을 차단해 왔다.

한국도 파키스탄도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핵심 기관차인 기업의 성장 유인을 살려내지 않고선 동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양국 모두 이제 반대기업 정서가 온 나라를 지배하면서 경제성장 정체와 양극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위 글은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가 12월 24일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