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양산과 빈곤퇴치…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이미 인간중심의 사회

좌익의 멘탈리티를 비판한다

몇 주 전 도서관에서 새로운 국방부 추천도서목록을 훑어보던 중 책 한 권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작은 책. 작은 크기와 독특한 이름,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신주라는 이름이 나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예전에 우연히 보게 된 EBS의 한 강연방송에서 강신주라는 철학교수가 "자본주의는 언젠가는 반드시 전복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라며 지극히 반체제적인 발언으로 청중을 선동하고 있어서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사회주의/반자본주의 이념의 허구성과 역사적 폐해를 잘 알고있으며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절대수호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그가 인문학 강연을 가장하여 사회주의 혁명 프로파갠다를 펼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류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비참한 북한 공산주의 체제와 대적하고 있는 분단국가의 공중파 방송에서 이런 내용을 버젓이 내보내다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참 씁쓸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쓴 책이 무려 국방부 추천도서목록에 올랐다니 섬뜩한 기분이 들면서 한번 읽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며 나는 충격과 답답함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첫째로 이런 공산주의 이념교육서적과 다름없는 내용의 책이 국방부가 국군장병들에게 읽기를 권유하는 추천도서 목록에 있다는 것이 너무 이해가 안 되고 한탄스러웠다.

저자 강신주는 첫 장부터 '냉장고가 존재하기 때문에 재래시장이 붕괴하고 있고 소비자들은 대기업에게 무의식 중에 이용당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노예로 전락한다. 따라서 냉장고를 파괴하자.'는 내용의 칼럼을 자신이 쓴 적이 있다고 밝힌다. 과연 그가 시장질서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라도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며 그 급진적인 발상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19세기 영국에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기계를 파괴하던 '러다이트 운동가들'의 사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중요한 사실은 강신주와 비슷한 이념성을 지닌 사람들이 분명히 우리 사회에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좌익세력의 대중적인 활동이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이나 북한과의 체제경쟁에 있어서 적잖이 해가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해줘야 하는 게 맞지만 다른 건 다른 거고 틀린 건 틀린 것이다. 그들은 대개 사회를 자기네들 편의에 맞게 이분법적으로 해석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강신주가 언급하는 칼럼의 내용처럼 '대기업 대 재래시장' 혹은 '재벌 대 서민'의 프레임을 들이대면서 그것이 마치 선과 악의 대결구도인 것처럼 선동하는 것이다. 그런 비합리적인 프레임에 세뇌를 당하면 '대기업=절대강자=억압자=악'을 처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선한 행동이기에 그들을 처치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도 정당화 된다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도 모른 채. 그것이 '나는 누구인가'의 저자 강신주가 주장하는 '냉장고 파괴하기'의 진실이다. 대기업과 재벌은 자본의 힘을 이용하여 서민들의 삶을 지배하면서 영향력을 점점 확대하고 결국 서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는 식의 민중선동전술은 19세기부터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이 구사해 온 것인데 이는 정말 자기함몰적이고 현실을 왜곡하는 주장이다.

시장에 존재하는 수 천만가지 이상의 다양한 재화와 서비즈 중에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자기 돈으로 구입하는 소비자와 그런 소비자의 자율적인 구매행태를 단순히 '대기업과 자본의 힘에 굴복한 노예적 행위' 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명예훼손을 넘어서 인류문명 자체를 우롱하는 발언이다.

   
▲ 20세기만 보더라도 자본주의의 발전이 견인한 각종 혁신과 발명, 대량생산, 글로벌유통 등으로 인해서 전세계적으로 중산층이 양산되고 빈곤퇴치가 진행되었다. 우리의 삶은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로워지고 윤택하며 편리해졌다. 그 기반은 기업의 중흥과 성장이었다./사진=미디어펜

냉장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우선 경제적인 영향만 생각해 보더라도 냉장고가 없어지면 냉장고를 제조하는 기업에 고용된 사람들, 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 냉장고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냉장고 기업의 광고를 맡은 기업 등 엄청나게 거대한 고용효과와 자산가치가 순식간에 증발하고 마는 것이다.

또한 본질적으로 냉장고가 제공하는 편리성과 위생 등의 혜택이 사라지게 된다. 시장경제에서 냉장고 혹은 대형마트가 선택받고 재래시장이 도태되었다면 그것은 냉장고를 제조하는 대기업이 횡포를 부린다거나 자본의 힘이 서민의 삶을 종식해가는 현상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냉장고나 대형마트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자신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고 좋아서 선택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특정 분야에서의 혁신이나 새로운 발명은 기존의 재화와 서비스를 도태시킬 수 있다. 그것이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고 우리의 삶의 질이 과거보다 나아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스마트폰이 발명됨으로서 2G폰이나 공중전화 등의 산업은 필연적으로 쇠퇴했다. 소비자들이 더이상 그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자본가에게 이용을 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자기들 입맛에 맞는 선택을 하는 자율적인 주체로서 존재한다.

과거에 강신주 같이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는 인문학자들이 세상을 음모론적으로 바라보고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했기 때문에 곳곳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결국 수십 년 동안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이른바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피해자가 되어 지독한 가난과 폭정 속에서 고통 받았다.

문제적인 발언은 '유괴 같은 범죄는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한다(p. 14)',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다(p. 18)', '우리는 상품일 뿐이다(p. 24)', '모두가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이다(p. 25)',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방법..(p. 32~33)' 등 그의 글 전반에 걸쳐 존재했다. 그덕에 구역질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지적자극이 되어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진 것도 사실이다.

나는 저자의 너무나도 편협하고 비현실적이며 근시안적인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혐오감을 느꼈다. 우리 사회에는 북한의 체제와 지도이념을 추종하는 종북세력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민족적 정통성을 부정하며 현 체제를 비판하고 전복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30년 전부터 NL(민족해방노선)과 PD(민중민주주의노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늘 존재해왔다.

그들의 최종목표가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대한민국이 북괴에게 흡수통일 되는 것이든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체제를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전복하고 단독 프롤리테리아 독재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든 간에 그런 정파의 사람들은 일단 공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지금의 부와 번영, 국력을 가능케 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저자 강신주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책에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 국군이 수호하는 체제이자 그 대안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류역사가 증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맹렬히 공격하고 그 전복을 의도적으로 운운하며 마치 자본주의만 없어지면 우리가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근거없는 선동을 일삼는 모습이 전형적인 종북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이 글은 본래 서평이기에 강신주의 글에 대해서 정치학적, 경제학적으로 깊이 있게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지양하겠으나 몇가지 기초적인 것만은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문제는 국가안보에 심히 해가 되는 종북세력의 사상 및 투쟁과도 필연적으로 그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강신주를 비롯한 좌익사상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본가=주인, 비자본가=노예'의 구도가 성립할 수 없다. 자본가가 아니라 소비자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주인이 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거래방식이 시장경제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비와 생산의 관계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변화무쌍한 것이다. 누구나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라는 말이다. 시장경제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것을 제공했을 때 부를 획득할 수 있으므로 가장 이타적이고 정의로운 거래방식이기도 하다. 애덤 스미스가 얘기했듯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타적인 행위를 해야만 부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 강신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인간보다 돈이 먼저인 삶을 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시장경제 안에서 인간중심의 사회를 이루었다./사진=연합뉴스

둘째로 강신주가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자본가 및 권력자들이 체제유지를 위해 만들어낸 사회구조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특정 가치관을 주입시켜서 인위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이자 자연상태 그 자체이며 원래는 그런 시장경제의 거래방식과 질서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기에 자본주의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자본주의(capitalism)이라는 단어는 과거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체제를 비판하고 시스템을 전복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단어일 뿐이다. 사유재산과 부의 축적에 대한 욕망,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타인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경쟁심, 경쟁보다 협동이 유리할 때는 협동을 선택하는 집단주의적 행동 등은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닌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행태인 것이다.

셋째로 강신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인간보다 돈이 먼저인 삶을 살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나는 시장경제 안에서 우리는 이미 인간중심의 사회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20세기만 보더라도 자본주의의 발전이 견인한 각종 혁신과 발명, 대량생산, 글로벌유통 등으로 인해서 전세계적으로 중산층이 양산되고 빈곤퇴치가 진행되었다. 우리의 삶은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로워지고 윤택하며 편리해졌다.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려면 우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먹고 살 권리, 생존권보다 중요한 인권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나라도 과거 보릿고개 시절의 지독한 가난을 박정희 대통령의 평생소원이었다는 '우리도 남들과 같이 잘 살아보자'는 강력한 신념과 자본주의적 산업화 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정치적/사회적 민주화는 그 다음에서야 진행될 수 있었다. 또한 강신주를 비롯한 좌익세력이 자주 사용하는 '인간중심사회', '인간성 회복' 등의 단어나 문재인이 사용했던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는 마치 '인간이 모든 변혁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어서 섬뜩한 기분이 든다.

저자 강신주는 대놓고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거나 공산주의 사회의 당위성을 설파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가 강연에 나와서 떠들거나 이 책을 통해서 말하는 자본주의 비판과 파괴에 대한 내용은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의 사상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그가 의도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 그는 독자가 '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의 노예입니다. 나는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삶을 살았기에 이를 반성합니다.'라고 고백하기를 바란 것 같다. 반면 나는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보장하는 각종 혜택과 풍요로움에 감사하며 타인의 강요가 아닌 내 판단에 의거한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이준구 토론토대 정치학과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 맑시즘에 경도된 좌파 지식인들은 자기네들 편의에 맞게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해석한다. '대기업 대 재래시장' 혹은 '재벌 대 서민'의 프레임을 들이대면서 그것이 마치 선과 악의 대결구도인 것처럼 선동한다./사진=미디어펜